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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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명태/ 우남정

에세이향기 2023. 9. 15. 09:44

명태/ 우남정


불길을 줄이며 생각해 본다
온 힘을 다하여 끓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이들은 어떻게 대관령 덕장까지 흘러왔을까
휑한 옆구리를 여밀 틈도 없이
명태는 흰 눈을 뒤집어쓰고 얼었다 녹았다 녹았다 얼었다
샛바람에 속없이 말라갔을까

뻣뻣해진 몸 흠씬 두들겨 맞으며
거죽 벗겨진 살집 으스러지며
참기름에 달달 볶이며
우러나고 또 우러나야 할까

육수가 유리 뚜껑을 치받고 뚝뚝 떨어질 때까지
시원한 것과 뜨거운 것이 분간이 안 갈 때까지
끓고 또 끓어야 할까

뼛속까지 들락거리며 울고 있는 기포들처럼
자작자작 잦아들며 뭉그러져야 할까

헛헛한 속 다독이는 뜨끈한 국 한 사발의 힘이여
북엇국을 끓이다 돌아다본다

유유히 헤엄쳐 회향하는 명태 한 마리

 

 

- 언젠가 한번 스토리에 썼던 말이 생각난다. 찌개를 끓이며...
요리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한 번쯤은 보글보글 흘러넘치도록 들끓는 순간이 있어야 하고. 그제야 냄비에 든 재료들은 자기 가진 맛을 남김없이 토해내고 각기 놀던 맛들이 서로에게 어우러져 그 요리만의 독특한 맛을 완성하는 거라고, 그것도 끓어넘치는 과정이 충분할수록 맛이 제대로 우러나고 숙성되는 거라고.  
그래, 우리 인생도 평생에 한번은 끓어넘치기를 企圖해야 한다.
일이든 도전이든 공부든 연애든.. 한번쯤은....     
 
- 설된 김치에선 배추맛 고추맛 마늘맛이 따로 놀지만, 자기들끼리 어떤 사생결단을 내지 않을 수 없는 춥고 어두운 밀실에 갇혀 며칠을 지내고 나면 쓴맛 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 각자 가진 모든 맛과 진액을 다 토해내고 효모의 중재속에 나름의 하모니를 이루어 제 각각의 맛 주장은 사라지고 오로지 김치 맛 하나의 전체로 완성된다. 필히 본받을 바다.  
 
- 참된 詩라는 건 무엇인가. 이제쯤 나의 詩에선 도드라진 어휘와 수사가 따로 놀지 않고, 주제와 표현이 어긋나지 않고, 무엇보다 글과 실제 삶이 괴리되지 않아 숙성된 맛과 향이 나오기 시작했을까. 아직도 한참 모자란 것일까.
마침내 詩香 숙성된 成魚가 되어, 왔던 곳으로 회향할 수 있을까.      (丁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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