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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그날이 오면 / 피귀자

에세이향기 2024. 1. 9. 03:17

 

 

남북통일 그날이 오면 / 피귀자


 
  나는 지금 눈물 없이 우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겨드랑이가 가려워 몸이 뒤틀린다. 몸속을 달리는 혈관들의 반란도 잠재우기 힘들다. 주인은 나의 존재를 잊은 건지 밀폐된 박스에 나를 쳐 박은 채 몇 달째 방치하고 있다.
  이슬에 젖은 풋풋한 흙과 풀냄새를 맡고 싶다. 아니, 자갈밭에라도 맨발을 묻고 싶은 심정이다. 파란 하늘이 보고 싶고, 바람의 향기를 맡으며 흔들리고 싶다. 어느 집 창고인지 부엌인지 알 수 없는 이곳이 너무나 답답하다. 어서 빨리 이 고통을 이기고 땅 속으로 파고들고 싶다. 사람들은 터져 나오는 내 신체의 일부를 '감자 싹'이라고 부른다.
  작은 상처는 오래 기억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리는 것이 사람인가. 여름의 초입부터 삶아먹고 지져먹고 볶아서 입맛을 돋우며 허기를 채우는데 최고라더니 찬바람 불고 햇곡식 나왔다고 이리 냉대하다니. 운명이란 때로는 사소한 사건이나 우연한 만남에 의해 결정되는 미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주인에게 선택되어진 나의 운명 말이다.
  우리도 사랑을 원하고 좋은 사람에겐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을 행복의 으뜸으로 생각한다. 둥그런 씨앗 하나도 혼자 영글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땡볕과 바람과 달빛 몇 날, 빗물과 벌 나비가 도와주었으며 거센 바람도 그냥 가지 않은 덕이다. 무엇보다 농부와의 인연은 고마웠으나 다시 맺은 인연이 문제가 되고 말았다.
아직은 밖으로 나갈 때가 아닌 것 같아 터져 나오려는 싹을 틀어쥐고 있자니 등줄기가 새파랗게 젖고 절망으로 파란 독이 오른다. '솔라닌', 우리가 내뿜는 독에 붙여진 이름이다. 세상에는 위협을 느낄 때 독을 뿜는 것이 어디 한 둘인가. 굳이 우리에게만 이름까지 붙일 건 또 뭐란 말인가. 우리는 너무 억울하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독을 피우는 건 아니다.
   일찍 싹이 돋는 것 또한 우리의 뜻이 아니다. 빛에 오래 방치하거나 싹을 틔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때문이 아닌가. 몸이 파랗게 변하고 싹이 나는 것도 우리 책임이 아니다. 보관을 잘못하는 인연을 만나 봄이 온 줄 알고 고개를 내밀기만 해도 복어와 맞먹는 독이라는 둥, 식중독을 일으키고 면역력을 저하시키니 도려내 버리라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야속할 뿐이다.
  씨앗 하나가 모든 것의 시작 아닌가. 종족을 퍼뜨리고 영역을 확장하려는 욕심이 누군들 없을까. 오직 자연의 순리에 동화할 뿐, 사람들을 해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사과 한 알쯤 우리와 같이 보관해주는 재치만 있어도 이리 괴롭지 않고 욕도 먹지 않을 것을. 어찌 아무 이유 없이 이 일이 일어날까. 봄 오기 직전이 가장 춥다는데 어쩌다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이 그리 차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은 겨울의 시작쯤이 아닐까 싶은데 벌써부터 몸이 이리 근질거리니 이 노릇을 어찌할꼬.
  어쩌랴. 사랑의 눈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지 않은가. 비록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고 욕을 먹을지언정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다려야하리. 무너지는 것은 절벽 때문이 아니라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기 때문일지니 슬기롭게 참고 기다리면 길은 반드시 열릴 것이며 탓하기에 앞서 인내하고 용서하고 나면 내 마음은 편해지리라.
  호기심에 자꾸 고개 내밀다가 웃자라 꺾어지기라도 하면 정말 봄이 와도 쓸모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까지 다시 나를 인정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감사하면서 기다리리라. 시련 속에서 속살은 더욱 깊어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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