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까던 남자
민 혜
언젠가부터 마늘을 까는 일은 그 남자의 몫이 되었다. 퇴직하고 하릴없이 늙어가는 터수에 아내를 도와 마늘 좀 깠기로서니 유난 떨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 이변이요 사건이었다. 왕년의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스스로 밥 한 끼 챙겨먹지 못했으며 자기 마누라가 허리 다쳐 누워 있을 때도 설거지 한 번 도와주지 못했던 남자였으니 말이다. 퇴직하고 하루 세끼 꼬박꼬박 집 밥 먹는 남자를 '삼식이'라 한다는데 그는 정말 집 밖을 모르는 원조 삼식이었다. 착실한 삼식이 생활로 접어든지 어언 6년, 까칠해진 마누라의 눈치를 의식한 거였을까. 어느 날 그는 아내인 내가 바가지에 수북 담아 놓은 마늘을 보더니 까주겠노라고 자청했다.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몇 해 전만 해도 김장철에 마늘 좀 까달라고 부탁을 하면 기가 펄펄해 끄떡도 않던 남편 아닌가.
처음엔 마늘 한두 톨 까다말고 손톱 밑이 아리다고 엄살을 피우더니 한 두 번 횟수를 거듭하며 그의 솜씨는 제법 숙련되어 갔다. 마늘을 깔 때면 남편은 늘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구서렁거렸다.
"집에 있어 보니 여자들 하는 일이 장난이 아니네. 앉아서 까는 데도 허리가 아프잖아."
그럴 때면 나는 집안 일이 여태 장난인 줄 알았냐며 히죽이 웃곤 했다. 남편은 햇마늘을 깔 때는 수월하게 해냈지만 마늘의 물기가 걷혀 껍질이 말라붙으면 혼자 짜증을 내기도 했다. 잘 마른 마늘 껍질은 밀착력이 좋아 물에 불려도 잘 벗겨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는 팥알만큼 달려 있는 쪽마늘도 버리지 않고 깠다. 버리라 해도 기어이 까내곤 결과에 대해 혼자 흡족해 하였다. 씨알만한 마늘까지 까느라 손톱이 쓰라렸던지 굵게 팬 그의 이마 주름과 미간은 가로 세로로 볼썽사납게 찌푸려들곤 했다. 남편은 이렇게 좀스런 일에 집착하는 적이 많아 종종 나의 빈축을 사곤 하였다.
요즘은 전업주부로 들어앉은 남자도 있다지만 자고로 남자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 와야 대접을 받는다. 금슬 좋은 부부라 해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 적당한 공복감이 식욕을 돋게 하듯 인간관계 역시도 거리과 접촉을 번갈아 유지할 때 탄력을 얻는 때문이리라. 하지만 남편은 주로 집안에 있는 걸 좋아했다. 사교도 즐기지 않고 운동도 싫어하며 몸도 여기 저기 아프다 보니 집에 머무는 게 가장 편한 모양이었다. 그런 가장을 지켜봐야 하는 아내의 입장 같은 건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잠자는 시간도 다르고 밥 먹는 시간도 다른 완벽한 엇박자 인생. 내 눈 꼬리가 쳐지며 잠자리에 들 무렵이 그에겐 물오르는 시간이다. 티브이 보랴, 화장실 들락거리랴, 냉장고 뒤져 먹을거리 챙기랴, 밤 잠 없는 그로 인해 잠귀 밝은 나는 종종 선잠을 자야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날 무렵에야 그는 비로소 잠자리로 기어든다. 단 두 식구 살면서도 밥 차리는 횟수는 하루에 대여섯 번. 그것도 모자라 남편의 잔소리는 해마다 늘어만 갔다. 눈 밝던 시절에는 이젤을 펼쳐 놓고 나의 초상화를 그리는 낭만적 광경도 보여주더니 노안이 되면서 티브이 시청을 주된 일과로 삼았다.
그는 티브이를 보면서도 입을 가만 두질 못했다. 뉴스를 볼 때는 정치 사회에 대한 정견을 쏟느라 내 귀에 못을 박고, 연예 프로나 드라마를 볼 때면 인물 타박으로 못질을 해대었다. 나이 탓인지 이미 했던 불평을 까맣게 잊고 처음하는 말처럼 정색하고 힘을 주며 다시 해댄다. 그만 좀 하라고 한 마디 던지면 그는 열 마디. 나는 숫제 입을 다물곤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래서 황혼 이혼을 하는 거야, 황혼 이혼을."
나는 때로 얼마나 간절히 황혼 이혼을 꿈꾸었던가. 퇴직 후 아내 곁에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 남자를 빗대어 '비에 젖은 낙엽'이라 하는 우수갯말도 있다지만 그는 도무지 내 곁을 떨어질 줄 모르는 바싹 말라붙은 마늘 껍질이었다.
열무를 절여 놓았는데 깐 마늘이 한 톨도 안 보인다. 손녀가 생기고부터 아들집을 자주 들락거리는 통에 마늘 떨어진 걸 몰랐다. 풀 쑤랴, 파 다듬으랴, 생강 찧으랴, 나는 혼자 동동거린다. 항공사 승무원인 며느리가 해외로 나가는 날이라 얼른 일을 마쳐야 할 텐데 마늘 까주던 남자는 저 세상으로 가고 없다. 그가 위암으로 세상을 뜬지 어느 덧 1년이 넘었다.
나는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베란다에 나가 마늘 두어 통을 담아온다. 남편이 있었다면 팥쥐 어멈 콩쥐 부리듯 서너 줌은 안겨주었을 게다. 그는 언젠가부터 내 안색이 수상쩍게 보이면 계면쩍은 표정으로 마늘 깔 거 없느냐며 선수를 치곤했다.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눈치나 보는 가장의 신세가 처량해 되레 짜증이 치밀 때도 있었다. 내 최선의 선택은 입을 닫는 것. 하고픈 말을 다 쏟았다간 나는 필경 뿔이 아홉은 달린 마녀로나 변할 것이다. 쓸 일도 없건만 남편은 소파에 앉아 마늘이나 까고 있고, 나는 저만치서 그가 하는 양이나 지켜본다. 마늘에 열중하고 있는 그의 얼굴 위에 웬일로 예닐곱 살이나 되었음직한 동안(童顔)이 슬며서 포개진다. 이상도 해라, 피부는 늘어지고 머리엔 무서리가 허연데 저 아이는 누구란 말인가. 아이는 제법 귀티 어려 보이나 표정만은 엄마에게 야단맞고 시무룩해 있는 듯 자못 쓸쓸하다. 그 아이는 번번이 남편 곁을 맴돌며 내 시선을 붙들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만 가슴이 저릿해져 저 아이가 있는 한 도저히 떠날 수 없을 거란 체념과 함께 눈빛으로 아이를 가만히 보듬었다. 남편은 내가 이렇듯 안쓰럽게 지켜보았던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나는 지금 남편이 늘 앉던 그 자리에 앉아 혼자서 마늘을 까고 있다. 아릿한 마늘향이 코끝에 머문다. 가슴 한 구석에 덜 자란 아이가 웅크리고 있었던 때문일까 그는 세상살이에 능하지 못해 종종 대열에서 벗어났고, 가장의 역할을 보란 듯 해낸 적이 드물었다. 이런 남편이고 보면 그의 삶은 왕왕 마늘 맛처럼 맵고 아렸을 터. 면도날 같은 자존심과 여린 감성으로 뭉쳐 있던 그에게 아내란 존재는 생마늘과도 같았을 터. 아니, 내 견고한 침묵의 껍질 속에 도사리고 있던 독하고 매운맛을 어찌 생마늘 정도에 견줄 것인가.
"바빠 죽겠는데 마늘은 안 까주고 당신 지금 어디 가 있는 거야?"
이젠 그가 입을 다문 대신 내가 열마디 스무 마디를 내쏟는다. 생전에 그를 더 품어주지 못한 게 마늘 즙으로 상처 문질러 대는 듯하다. 고운 정만이 정은 아니라고 하였나. 기실 미운 정이 있어야 그 정은 더 깊어진다고 했다. 미운 정이야말로 인내와 관용으로 다져진 훨씬 품 너른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 마늘이나 까고, 마늘이나 까고….
지난 1년간 나 혼자 남편에게 중얼거린 말이 살아생전 몇 년간 했던 말보다 더 많았던 것 같다. 생전엔 거슬리는 것만 보였는데 가고 나니 그의 살뜰했던 잔상만 뼈대처럼 또렷하다. 장례 날 왔던 남편의 친구들은 살아생전 그가 내 자랑을 그렇게 하고 다녔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전했다. 신은 삶에선 도무지 보여지지 않는 걸 보여주기 위해 죽음이란 비장의 장치를 마련해둔 것일까. 시간은 저만치 흘러갔는데 추억은 아직 이만치서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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