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 한 점/김윤재
꼭 그 모습이다. 사십 년 전 그때처럼 집안으로 선듯 들어서지 못하고 망설이신다.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어린 시절 당신이 뛰놀던 앞마당이 나오고 오른편엔 외할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배어 있는 사랑채가 있는데, 대문 앞에서 지루하게 서성거릴 뿐이다.
나는 차 안에서 마른 침을 삼켰다.
"어서 들어가요 엄마. 괜찮아요. 어서."
그러나 어머니는 꼭 그때처럼 끝내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느티나무 아래로 천천히 걸어가셨다. 작고 마른 그림자가 주인을 따라 나섰다. 동네 어귀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릴없이 바라보는 무심하고도 나른한 노인의 모습이다.
느티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땅 위로 드러난 뿌리는 각질이 벗겨졌고 몸통엔 군데군데 옹이가 박혔다. 한쪽으로 기운 가지엔 벌레 먹은 나뭇잎이 매달려 있다. 세월은 사람만 곰삭이는 것이 아니다. 고통과 기쁨으로 덧칠된 어머니의 유화 같은 삶처럼 나무도 세월에 부대껴 기형이 되었다. 나이가 든 것은 서로 닮는다.
사십 줄의 어머니는 강인했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족을 위해 숨이 가빴다. 아버지 대신 하숙생을 들여 가정을 꾸려가셨다. 과수원을 장만하기까지 아버지는 실패를 거듭했다. 늦은 밤 외투 가득 추위를 담아오는 가장을 위해 어머니는 해장국을 끓이며 형형색색 물감을 풀어냈다. 남편이 진 빚을 갚기 위해 금쪽같은 암소를 팔아야했고 툭하면 처가에 도움을 청하는 남편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셨다.
그 당시 부모님은 고향 공주를 떠나 연기군에 정착하며 심한 어려움에 처했다. 꿈에 부풀어 이주를 했지만 고향에서 정리한 농지의 값은 새로운 농지를 구입하는 데 턱없이 부족했다. 아버지는 아내와 의논 끝에 처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어린 동생을 들쳐 업고 집을 나섰다. 한 시간 버스를 타고, 버스에서 내려 산길을 걸었다. 어머니의 걸음은 무거웠다. 온갖 해찰을 다하는 내 걸음보다 느렸다. 어머니는 찔레순을 꺾어 내게 주었고, 길에 나뒹구는 돌멩이를 고무신코로 툭툭 차기도 했다. 그러다가 산그늘에 앉아 동생에게 젖을 물렸다. 나는 신이 났다. 찔레순을 먹으며 망아지처럼 흙길을 뛰어다녔다. 엄마가 만들어준 '간땅꼬'를 입고 나선 나들이길, 엄마와 함께 있다는 충만감으로 찔레꽃에 파묻혀 마냥 행복한 어린 딸, 산그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엄마, 그 곁에 보퉁이 하나, 이 모습은 어린 내 가슴에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졌다.
세월은 나를 여자의 한숨소리를 이해할 나이로 옮겨다 놓았다. 어느 날 뜬금없이 잔금 없는 통장을 보며 그때 어머니가 지었던 한숨소리를 기억해냈고, 내 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그림이 실은 삶에 지친 이 땅의 아낙이 그려낸 슬픈 그림이었던 것을 알게 됐다. 왜 찔레순을 꺾으며 시간을 끌었는지, 외가에 당도해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느티나무 아래로 걸어 갔었는지, 동생에게 젖을 물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는지……
딸에게 있어 어머니는 그리움이다. 장독에서 꺼내주는 홍시의 달콤한 맛이고, 젖비린내고, 햅쌀밤에서 나는 쪼득함이다.
"내 새끼 왔구나 아침부터 까치가 울더니만."
어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다. 밤새 마주 앉아 웃는 모습을 보여줘도 어머니는 딸의 내면을 읽어낸다. 딸의 입꼬리만 봐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드러내지 않아도 그 속이 까만지 하얀지 뜨거운지 차가운지 느낀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딸이 걸어야 한다는 것을 어미는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딸은 어머니의 실핏줄 속에 뿌리 내리고 가슴에서 자라는 애물단지다. 그때 어머니는, 그런 당신의 어머니 앞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까만 속을, 쩍쩍 갈라진 손등을 차마 보일 수 없었으리라. 떳떳한 친정 나들이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양 손에 푸짐한 선물이 들려졌더라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도착했을 친정. 그러나 궁색한 모습이었다.
내가 외할머니를 부르고, 할머니가 뛰어 나올 때까지 느티나무 아래 서성이던 어머니.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소박맞은 여인처럼 안으로 들어가던 유화 한 점.
그때 어머니께서 필요한 만큼 외가의 도움을 받으셨는지 알 수 없지만 달구지에 쌀가마를 싣는 동안 할머니와 어머니는 한마디의 말씀도 나누지 않았다. 두 분 사이에선 산허리에 부는 솔바람소리가 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달구지에 탔고 달구지가 외가 마당을 지나 산길을 빠져나올 때까지 어머니는 동생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그림을 보았다. 슬프고 정겹고 아름다운 그림을 찾아 인사동거리를 헤매고 다녔지만 느티나무 아래서 서성이던 한 여인을 그린 그림보다 깊은 울림을 준 그림을 만나지 못했다. 덜커덩거리는 달구지에 앉아 젖을 물리던 등 시린 여인의 모습보다 더 깊은 삶의 내력을 담고 있는 그림을 보지 못했다.
팔십이 넘은 어머니는 외가엘 다녀오고 싶어 하셨다. 지금은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을 왜 다녀오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함께 동행한 것이다. 사십여 년 전 모녀가 걸었던 그 길을 차로 씽하니 달려와 다시 그 집 앞에 섰다. 그리고 사십여 년 전 그림의 장면이 눈앞에서 똑 같이 재현된 것이다.
친정으로의 여행은 가부장적인 사회로부터 모계사회로 돌아가는 세월여행이다.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잃어버렸던 옛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 어머니는 그곳에서 무엇을 찾고 싶어 하셨던 것일까. 삶의 무게보다도 아버지의 자존심을 세워드리기 위해 참았던 세월의 덧없음이었을까. 채마밭 입구에 남아 있는 산문 같은 정겨움을 느끼기 위함이었을까. 헌데도 끝내 들어서기를 망설이셨던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내 아름다운 그림에서 빠진 것이 있었다. 비록 처가의 도움을 받고 살아온 아버지이지만 어머니에겐 그 남편이 큰 기둥이셨던 것이다. 나는 황금빛 물감으로 산 하나를 그려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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