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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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 수필 모음

에세이향기 2024. 1. 12. 04:18

안개에 깃들다

안개 범벅에 사방이 희다. 낙동강이 휘감은 사문의 마을에 닿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십여 분을 걷는다. 이쯤에 돌돔과 광어가 유영하는 수족관이 있는 자리. 저쯤에 치킨 가게와 열쇠가게, 여기 목련과 산수유나무가 있는 자리. 가늠한다는 거. 모름지기 이곳 원주민만의 오랜 관찰과 사유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어디든 사람 들어 묵고 있을 아파트 불빛들. 먼 바다로 나간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으로 너울거린다. 얼금얼금한 불빛을 등지고 걸어오는 한 무더기의 발걸음. 식당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종소리. 사물의 형체는 묻고서 걸음과 종소리가 먼저 도착하는 저녁. 칼날이란 날은 죄다 뭉텅뭉텅 잘라먹고 이도 저도 아닌 흐물거림만 둥둥 떠다니는 섬들 지천이다.

문득 가슴이 저미어 오는 건 왜일까. 궁색한 변명 같지만 봄이 오는 동안 난 갓 튀겨낸 튀밥이었다. 잠시겠지만 오늘 밤이 주는 고요함에 깃들고 싶은 욕망이 인다. 후문 근처 벤치에 축축한 물기를 닦고 앉았다. 흙내음 훅 끼친다. 눈이 뚫어지게 보아도 강 건너 비슬산 자락은 온데간데 없다. 휴대폰 불빛을 켜니 영상 13도다. 그제야 옆 벤치 노인이 눈에 들었다. 혹여 저 속인의 노인마저 잠시 인간세계를 다녀가는 선령은 아닐까 하는. 하긴 이 능청스러운 생각을 맑은 날에 하겠는가.

느닷없이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중 화면에 갑자기 비슷한 연령대가 많이 찾은 쇼핑 목록이 떴다.

'매스틱/해남고구마/글루타치온/스프링 아우터/지압슬리퍼/오차드토이즈/알타핏리커버리슬리퍼/차량용방향제/z플립4 케이스/홍게/냉이'

아는 거라고는 서너 가지뿐. 낯선 이름들은 도대체 어디에다 사용하는 물건인지. 충격에 검색해 볼 기운조차 없었다. 세상을 등진 은둔자도 아니건만. 글로벌한 쇼핑문화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죄일까. 비슷한 연령대에서 한참을 밀려나 변방의 아웃사이더가 되어 버린 지금. 그 생각을 하자 다시 혼란스럽다.

지척에 앉은 노인이 일어섰다. 자박자박 신발 끄는 소리를 남기고 사라졌다. 가만가만 안개 냄새가 났다. 이내 걷잡을 수 없이 여기저기서.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에 너나 할 것 없이 물밑작업에 여념 없다. 판세는 어떻게 돌아갈지. 여야 강경대치 속에 할 일은 산재해 있건만 진척 없기는 마찬가지. 얼키설키 뒤얽힌 국제정세는 어떻고. 전략을 뒤춤에 감춘 채 한사코 두 얼굴로 들이밀고 있으니. 정치에 부박한 무속인이 등장한다는 둥, 질적 성장을 위한 정책 방향도, 포용과 다양성을 담은 건강한 정치는 어디에 묻혔는지. 이래저래 죄다 동굴뿐이라고 일컫는 것은 나의 기우의 소산들인 거지 뭐.

삼경을 지난다. 안개에 발목을 적신 밤새가 강변으로 후둑후둑 날아올랐다. 고층 아파트에서 들려오는 애완견 짖는 소리. 산 아랫마을에서 천겁의 물방울을 가로질러 오는 닭 울음. 나는 더듬이를 만들어 벌초하듯 길을 내며 집으로 돌아간다.

'가을 안개는 천석을 올리고 봄 안개는 천석을 내린다'는데 지금까지 길이 보이지 않는 안개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밤. 어쩌자고 이 보리곰팡내를 풀풀 풍기며 봄밤에 덮쳐왔는지 말 좀 해보게.

달마가 경비실 앞으로 간 까닭은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아아…. 어젯밤 자정 무렵 무단으로 달마도 액자를 버린 분은 자진신고 바랍니다."

CCTV를 조사하면 바로 찾을 수 있다는 둥, 양심을 버리지 말라는 둥. 연거푸 경비 아저씨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렀다. 한때는 개업선물이나 집들이 선물로 꽤 인기가 좋았던 달마도. 누가 버렸을까. 느닷없이 슬리퍼를 끌고 경비실 앞으로 갔다. 족히 1m는 되는 액자 안에 맨발의 달마대사가 지팡이를 들고 눈썹을 휘날리며 섰다.

p는 오래전부터 금장으로 그려진 자그마한 달마도 한 장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 더군다나 속설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했다. 가령 13일은 불행, 7은 행운을 준다는 믿음. 보름달이 뜨면 범죄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런 미신의 전형적인 헛소리에 유독 귀를 기울였으니. 그것으로도 부족했을까. 뭐 눈에 뭐만 보인다더니. 어느 날 그와 한적한 야외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던 참이었다. 인적 드문 공터에 남자가 문짝만 한 족자를 팔고 있었다. 눈꺼풀 없는 달마대사가 용의 등에 올라타 세상을 관조하는 듯한 표정.

관심을 두는 p의 눈빛을 읽어서인가. 콧잔등 푹 내려앉은 사내는 입에 거품을 무며 떠든다. 작가 경력이 꽤 있는 고명하신 네팔 스님께서 직접 그린 작품이라고. 그러니 시중의 복사품이나 인쇄본과 비교하지 말란다. 수행할 때 수마를 쫓기 위해 눈꺼풀까지 잘라 버린 달마대사의 정신과 재테크를 운운한다. 무병장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돈의 팔촌 집안까지 액운을 제화하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인다는 말에 p의 눈이 요동쳤다.

결국, 거금을 들여 산 족자는 그녀의 침실 머리맡에 내걸렸다. 부모 모시듯 섬기고 다니는 걸 보노라니 말문이 막혔지만 나는 p가 아니었다. 콧잔등 푹 퍼진 사내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던지 돈깨나 만지며 여기저기 땅도 좀 사고 건물도 사들였다. 그럴수록 나는 p의 가없는 물욕이 가련해 보였고 p는 숫제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 취급을 했다. 이내 달마의 에너지로도 모자랐는지 불교 계열의 신흥종교 단체인 000 사이비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를 서너 해.

나는 어차피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것은 자신뿐이라 말했고 p는 자신이 믿는 신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준다고 막무가내로 주장했다. 인간은 궁할수록 어딘가에 매달린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7년 대흉이 들어도 무당은 굶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믿으면 그대로 현실이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이들. 종교와 사이비 종교, 관습과 미신, 그 두 축이 추구하는 기착지는 절대 합일될 수 없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누구에겐 바위가, 원숭이가, 바오바브나무가 신일 수도 있다. 그렇게 서로의 관점에선 이중생활이고 분열이지만 각각에게는 오르지 하나뿐인 신.

생각보다 사는 일은 질기고 독했다. 기껏 몇천 원의 스티커값조차 아까워 그 영험하다던 달마가 한밤중에 내팽개쳐지는 걸 보면. 용의 등에 올라타 만물을 다스리며 무병장수 운까지 관장한다더니 젊디젊은 p를 하늘로 데려가 버린 걸 보면 나에게 여전히 신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어딘가에선 신을 찾고 어딘가에선 신에게 배신당한 사람들이 떨고 있는 실상. 무릇 지금 신은 어디에 있는가.

있고 없음에 대한 단상

당신과 가끔 왔던 카페. 그 자리에 앉았어요.

'윤영 님! 2020년 11. 28' 그녀가 죽기 두 달 전에 쓴 내 이름자. 2년이 지났지만, 혹여 온기라도 남았을까 싶어 쓰다듬어 봅니다. 투병 중인 작가에게 사인본을 예약하고 우편으로 받은 마지막 시집인 거지요.

'잊어버린 건지 기억하는 건지 비가 내린다' '입김' 전문을 읽는데 거짓말처럼 봄비가 내립니다. 잎눈에 꽃눈에 닿자마자 부서지는 비의 몸뚱어리. 곧장 '비'가 아닌 물.

시만 남고 '죽은 시인' 묵직하지만, 보편적인 주제일 수도 있는 죽음. '있다는 것과 없다'에 대한 목소리가 맞을 듯합니다. 대관절 생사를 가름하는 기준은 뭘까요.

'한 생명체의 모든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어 원형대로 회복될 수 없는 상태'를 대개의 학자는 죽음이라고 하잖아요. 나는 과학적 판정법이 아닌, 예컨대 뭉게구름이 흩어지는 속도? 만두피를 접고 펼치는 두께? 들 찔레 서너 송이의 부피? 아기가 달고 있는 속눈썹 무게? 이런 부드러운 죽음의 단위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당신도 일흔까지만 살고 인생을 끝낼 거라는 둥 그런 엉뚱한 생각은 내팽개치세요. 그대만의 독단을 서슴없이 개입시키며 기필코 진행할 거라던 말. 그리 달가워 보이진 않더군요. 천하의 명의였던 편작(扁鵲)도 죽음을 관장하지는 못해요.

사실 근자에 들어 죽음과 이별, 죽은 자와 산 자를 두고 혼돈이 잦습니다. 물론 죽음의 범주에 이별이 포함되겠지만요. 가령 오래전 아프리카로 떠난 선배의 갑작스러운 부음을 들었다면 죽음의 범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건지. 그렇다고 이별을 죽음으로 분류하진 않을 테고. 그럼 없는 사람도 이별이라 생각하면 산 자가 아닐까요. 일례로 44층의 사기꾼은 나에겐 투명인간이니 죽은 자가 맞겠죠.

또 하나. 죽음에도 농도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요. 예를 들어 50년을 마주 보며 살던 앞집 아저씨가 하늘로 갔다고 칩시다. 아무런 심경의 변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연예인이나 딱 한 번 만났던 사람의 부재가 긴 상처로 남기도 하잖아요. 이런 걸 보면 슬픔의 농도는 굳이 시간이나 잦은 만남의 비례와는 상관없나 봅니다.

이쯤에서 왜 엔트로피의 법칙이 떠올랐을까요.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오직 질서화에서 무질서화로 변화한다는 법칙. 태어나는 순간 생명은 공정하고 합당한 질서에서 무질서가 내재 된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 저승사자의 안내를 따라간다는 느낌.

그렇지마는 죽고 나면 한 사람의 생애가 끝막음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있고 없고 차이는 죽은 자와 산 자, 산 자와 산 자의 몫이니까요. 제게 죽은 시인은 산 자가 되고 살아있는 사기꾼은 죽은 자로 남아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한 끗 차이가 억겁으로 와닿습니다. '어디 가닿지 못하고 국지성 호우 속에 수십년 갇혀 있는 비'. 마지막 줄을 읽으며 성에 자욱한 유리창에 입김을 불며 없는 시인의 이름을 적습니다.

사고뭉치등거리

나의 고향에는 '사고뭉치등거리' 라는 말이 있다. 밥 먹듯 사고나 치고 넘어지면 막대기 타령이나 하며 불안감을 유발하는 사람. 구태여 덧붙이자면 어른이 되어서도 허파에 쉬슨 사람들을 말한다.

돌연 이 단어에 천착하는 이유를 되짚어 봤다. 세속적인 욕망에 눈먼 이들이 거문고 꿰차고 산중에 들앉은 작금의 세태가 고울 리 없어서다. 이참에 '아이 사고뭉치등거리'였던 나를 고백한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내 감정들은 소 치는 목동의 회초리나 다름없었다. 김홍도 흉내를 낸답시고 엄마의 광목 치맛자락을 잘라 그림을 그렸다.

피라미가 살던 웅덩이에 소금을 넣었더니 바다는커녕 물고기만 둥둥 떠올랐던 일.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단막극을 재현하느라 아버지의 막걸리 주전자에 구멍을 뚫어 바람과 빗소리를 만들고, 무지개를 찾아 몇 개의 능선을 넘었어. 밀밭골에서 잡아 온 새끼 노루한테 어쩌자고 보리밥은 먹였을까.

그리 사부작사부작 일을 질렀다. 생각해보면 소모적이거나 쓸데없는 짓들. 그 어떤 것도 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렇지마는 부모님은 내게 글러 먹었다거나 골칫덩어리라고 부르지 않았다.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아주 모범생이었고 아주 사고뭉치였으니.

사고의 부재는 왜 생길까. 아무래도 감정의 요소와 밀접하단 생각이 요즘 든다. 남미대륙 최남단에 사는 '야간족'이라는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마밀라피나타파이'라는 단어가 있다.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자신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 해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라고 한다. 핵심은 감정의 부재로 압축하면 될 것이다.

문득 그때의 나를 떠올렸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읽어주지 못한 가족이나 곁의 사람. 그들이 '쟤는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구먼' 하는 심리. 둘의 관계엔 괴리가 있을 것이다. 즉, 사고를 치는 피의자와 사고의 결과물에 선 피해자. 둘 사이에는 항시 보이지 않는 다양한 감정이 충돌하고 부딪친다. 시간이 흐르면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가며 성장하기까지는 치는 자와 받히는 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사고뭉치등거리는 적정한 선에서 멈추어야 한다.

사고와 감정의 부재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 유머러스하게 해석해보자면 사고(思考)를 하지 않아 사고가 굳어 버렸다는 표현 정도가 맞겠다. 뭉쳐 있으니 날카로운 비판은 고사하고 풍자나 해학마저 품을 줄 모르는 게지. 기득권 세력에 편승하여 권력을 지배하는 사이클에 안주하고 있으니 사유하며 성찰한다는 자체가 낯설지 않았을까. 생각 없는 이들이 워낙 생각을 좇느라 쥐구멍에서 다람쥐가 나오는 실상이고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위에서 언급한 단어의 해석은 가볍게 제쳐두고 반대의 측면에서 보자. 강변 버들개지에 코 박고 나비 따라 콧노래 부르다간 헛짓거리라 놀림 받기 일쑤다. 경쟁이라는 놈은 무리를 이끌고 저만치 앞서간다. 잔머리 굴리랴 과도한 눈치 보랴 약아빠진 사고(思考)에 제대로 박힌 생각이 나올 리 만무하잖은가. 그럼 너는 잘하고 있냐고? 맞아 여태 박우물에서 헤엄치고 앉았으니 궁리가 서겠는가. 아직 '아이 사고뭉치등거리'에서 어른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지.

행운을 훔칠 결심

푸릇하게 돋아난 감자 싹을 잘라 창가에 뒀다. 이깟 독어린 잎사귀가 무어라고 이리도 연연하는지. 내 고단함을 당신이 먼저 보고 있었던가.

"지금 우리 집 행운목은 온통 꽃망울. 100년에 한 번 핀다죠."

대학병원에서 수십 년간 환자들 마음을 치유하며 살아왔던 그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휴식에 든 당신을 위한 환대의 꽃일 거라고 답을 했다. 그 꽃이 뭐라고 외려 나를 위로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일정에 없던 특강과 월간지에 실을 인터뷰, 원고 마감에 쫓겨 머리는 뜨거운 김을 뿜어댔다. 눈을 뜨는 일은 늘 안갯속이었고 입술은 부르트기 일쑤였다. 여북하면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망망대해를 보러 갔을까.

달빛에 기대 두어 시간을 보내다 자정 무렵에 돌아오기도 해봤지만 잠시뿐.

밑져야 본전 아닌가. 생떼 쓰듯 나를 초대하라고 통보했다. 꽃이 절정이라는 날 드디어 행운을 훔칠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다. 사거리 전광판에 '미세먼지 없음' 이라 적힌 글귀에 푸른 잎사귀가 넌출거린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치맛자락에 걸렸다. 평소 같으면 피멍이라도 들었을 테지만 이토록 멀쩡할 수 있다니. 단골집에서 점심 메뉴로 먹은 낙지. 여태 본적 없던 크기에 놀랄 수밖에. 슬슬 길운의 서막이 시작된 건가. 이제 행운을 만날 시간.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꽃향이 감돈다. 천장에 닿을 듯한 고목이다. 부러 안았다. 묘한 기분이 든다. 흰 꽃이 게워 내는 향을 훔치며 나눈 대화는 향긋지면서도 서프라이즈였다.

우리나라 대학생 절반은 현금 10억원과 감옥 생활 1년은 맞바꿀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된 데는 누구의 책임일까. 참 '웃프다'는 말을 실감한다. 흔히 셋만 모여도 주제가 되는 '1억 행운 챌린지'를 잇는다. 세계여행, 명품가방, 주식투자와 아무리 생각해도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사람. 이 다양한 대답에 옳고 그름이나 지혜와 우둔함을 대입시킬 수는 없다. 이미 '행운'의 정의는 내려져 있으니 얽어 꿰차며 각자도생으로 살아가는 것도 한 방편이 아니겠는가.

그렇지마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제법 진지하게 고민이라는 걸 해봤다. 1억원이 생기면 뭘 하지. 마당 넓은 집으로 가자니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자니 부엉이 곳간으로 채울 리 만무하고. 은행에 묻어 두자니 마네킹을 보는 듯 변화 없는 거래는 싫다. 그렇다면 난 도대체 요행을 훔쳐 뭘 하려고 했을까. 공술 한 잔이면 십 리도 마다하지 않는다더니 내가 그 꼴이었다.

하긴 행운이 왔다. 그리 고민해도 나오지 않던 글감이 또굴또굴 기어 나와 이 글을 쓰고 있잖은가. 그러다가도 여행 중인 동생이 보내온 사진에 급구 마음 뒤집는다. 그래. 굴러온 일억이면 탄력 좋은 1천만원짜리 낚싯대를 살 수 있겠단 생각. 그리곤 에콰도르의 바르톨로메섬으로 곧장 떠날 수 있다는 거. 다금바리에 글라스아이나 잡으며 너끈하게 두어 달 보내야지. 김치가 그리우면 돌아와야지. 태백산 심마니가 캔 1천만 원짜리 산삼으로 입가심이나 하고 한잠 자고 나면 거뜬하지 않을까. 언뜻 미몽일지라도 이만하면 된 거다. 행운을 훔칠 결심은 성공했다며 소식 넣었더니 당신이 전하는 말. '이미 내가 나누어준 복. 그대는 도둑이 아닐세. 그러니 원 없이 더 가져가시게'라고.

동백이가 사라졌다

내가 사는 동네에 자그마한 단층 우체국이 있다. 검붉은 벽돌로 지어진 외관 안에는 이마가 동그랗고 똑 부러지게 생긴 젊은 국장과 수십 년째, 금융 파트를 맡은 영심 씨가 일한다. 볼일 때문에 일주일에 두어 번 우체국을 드나드는 나로서는 귀찮기도 하지만 동백이가 있어 좋았다. 가는 길에 만나는 반농의 평범한 삶들은 덤인 게고. 오늘도 집을 나섰다. 두 남자의 공방에 목공예품은 나날이 늘어가고 문 닫은 중앙자전거 점포엔 자개농만 늙어간다. 대낮부터 붉은 전등을 창가에 매달아 두는 돼지국밥집 주인의 심사는 뭘꼬. 모서리 약국 키 작은 약사는 늘 바쁘다. 발가락을 디밀며 무좀약을 달라는 노인, 아침부터 불콰한 얼굴로 박카스를 싣고 가는 노인. 재활용 의류 공장을 지나 능소화와 동백나무가 있는 우체국 마당에 들어선다. 일주일 전부터 보이지 않던 녀석은 오늘도 부재중이다. 내심 기대를 하고 왔건만. 지난여름인가 가을인가 동백나무가 있는 꽃밭으로 고양이 가족이 이사를 왔다. 오가며 정들다 이름까지 붙여주었거늘. 동백이라고.

우편물을 보내고 녀석들이 없는 꽃밭 모퉁이에 섰다. 희한하리만큼 이 벽에 기대고 있으면 소식 뜸한 친구, 요양원에 계신 엄마가 마구 그리워진다는 거. 뒷방 늙은이 꼬리뼈처럼 앙상한 능소화도 시푸르죽죽한 동백나무도 봄날이 그리운가. 두 나무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면 우체국 창문은 온통 꽃칠로 범벅을 이룬다. 그 유리창 아래 팔자 좋게 누운 녀석들을 볼 때면 괜스레 마음이 궁하곤 했는데.

나무를 목세권으로 끼고 태극기를 보증인으로 내세워 마련한 보금자리주택. 요즘처럼 꽁꽁 묶인 대출 걱정은 달나라 일. 사통팔달 햇살 들이치니 치솟는 가스값은 별나라 이야기. 다끼들 논자락 팔아 벼락부자가 된 이들의 돈다발 냄새는 또 어떻고. 그뿐이랴. 멀리 강이 보이는 조망권까지 가지지 않았는가. 기막힌 곳에 집 한 채 꿰차고 앉은 혜안이 몹시도 부러웠건만.

어느 한철은 능소화 꽃그늘에, 한철은 툭툭 지는 동백꽃잎에 누워 다디달게 잠들지 않았을까. 귀 밝은 통에 강변 은행잎 지는 소리, 여기저기 암자에서 흘러나온 염불에 씻었던 마음. 다산 들녘 오월은 연밭 천지 아니었던가. 발걸음 닿는 곳마다 연꽃향 즈려밟고 돌아오니 궁궐터가 따로 없다 했거늘. 궁궐터 호사도 살아 보니 별수 없었던가. 근자에 들어 자주 집을 비우긴 했지만, 아무리 원인을 생각해봐도 딱히 이유가 없다. 힘 있는 카르텔들의 집 비우라는 엄포가 두려웠을까. 무대뽀로 들이닥친 무리의 폭거에 맞서 싸우다 덜컥 입원이라도 했으려나. 수백 수천 통의 세금고지서와 독촉장을 싣고 달리는 우편집배원의 고단함이 전해져 왔던가. 이도 저도 아니면 가뭄에 콩 나듯이 훔쳐 읽던 손편지의 부재였을까. 경기 악화로 문 걸어 잠근 공장에 수런거리는 바람 소리가 절절했던가. 새끼들 짝 맞춰 떠나보내고 나니 적적해서 먼 여행이라도 떠난 건지. 동백이 없는 꽃밭엔 찬바람만 누웠다. 나는 털레털레 마당을 나와 사거리 약국에서 몸살약을 샀다. 참 혹독한 겨울이다. 곧 동백꽃이 필 게다. 사라진 동백이네 식구는 돌아올까.

각시붕어에게 쓰는 편지

장맛비가 사나흘 내리더니 무논에 미꾸라지가 살이 제법 올랐더라.

나는 이 편지를 쓰면서도 네가 읽을 수 있을까? 몇 번 생각했지만 결국 내 넋두리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버렸어.

사실은 그날 내가 많이 힘들었어. 정사각형이 되고 싶었지만 꼭짓점 하나 떨어져 나가 버리고 삼각형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은 날엔 그 강가로 훌쩍 떠나 물속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는 거 너도 알고 있었을 거야. 다층의 집을 짓고 아웅다웅 눈에 불을 켜듯 살아가는 물 위의 세상과는 다르게 수면 아래 풍경은 고요 그 자체더라. 이끼를 덮어쓴 채 바위에 붙어 있는 다슬기, 자갈 더미를 쿡쿡 쪼다가 이방인의 숨결을 느꼈는지 바위틈으로 쏜살같이 숨어버리는 꺽지,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헤엄쳐 나가던 팔뚝만 한 붕어도, 흐느적거리는 청태도 서로의 길을 인정해주더라.

하긴 아무리 유순해 보이는 곳이라도 어디엔들 남모를 속사정도 있을 테고 법칙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수면 아래 세상은 정제된 느낌이랄까. 하나같이 참하게 자기의 삶을 살아가더구나. 그러니 농축된 고요가 아닐까 싶더라.

내가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지 뭐. 그렇게 얼마나 물속에서 놀았는지 모를 만큼 온몸이 추웠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흥건하게 젖은 몸을 말리려고 햇빛을 찾아 나왔지. 강의 양쪽으로 쪽빛 지천인 풀숲을 지나는 중 꿈을 꾼 듯 금빛가루가 눈이 부시더라.

바로 너희들이 떼로 몰려 나왔지 뭐니.

나는 재빠르게 돌로 성을 쌓았던 거야. 성문을 넘거나 틈새로 빠져나가는 무리 속에서 차마 빠져나가지 못한 너희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기 인간세상까지 데려왔구나. 넌들 반짝이는 강물 위로 튀어 오르던 대가천의 고향이 그립지 않겠니. 조만간 고향으로 돌려보내 줄게. 보름 전만 해도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몸으로 왔는데 그사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더니 몸매가 제법 물고기다워졌네. 당분간만 어설픈 어느 아낙의 잔소리와 한탄 섞인 푸념이 잦더라도 인간 세상에 대한 보시라고 생각하게.

오늘 조간신문을 읽다가 시답잖은 소식만 도배된 것 같아 확 집어 던져버리고 너희 곁에 앉아 있어. 세간이 떠들썩한 s 작가의 표절문제로 난리도 그런 난리는 없네. 입안이 얼얼하도록 그녀에게 욕을 퍼붓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문학에만 표절이 있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이 조금씩 표절에 물들어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아니라 남의 인생을 빌려오거나 이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볼 때마다 짜증이 확 밀려오더라. 영혼은 다른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달라붙고 탈의 된 내 허울은 허방을 향하여 목표도 없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종종 들더라. 쓸쓸하군.

휴가 나온 아들 녀석이 메르스와 상관없이 돌아다니건만 잔소리를 참고 있거나, 고3인 딸아이의 정신상태를 보면서 한방 쥐어박고 싶지만 자상한 척한 나는 표절 엄마였다. 그저께 막창 구이집 대로변에 술 먹고 구역질하며 누워있는 한 여자를 일으켜 온갖 고민 다 들어주거나, 어느 카페에서 천정이 무너져라 울어대는 아기를 달랠 생각은커녕 친구들과 수다에 빠진 아기엄마에게 한 소리 퍼붓고 싶었지만 걱정하는 눈빛을 보내며 착한 척하는 나는 표절로 점철된 사람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음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늘 평가 속에서 살아가면서 표면만 추구하고 견제만 바라보고 있었나 싶기도 해. 도대체 내 인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어제는 어느 지인이 올린 대한민국 중산층의 기준을 보다가 깜짝 놀랐지 뭐냐. 결혼한지 수십 년이 지났건만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도 안 되고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도 아니 되며, 해외여행을 수시로 가지도 못하니 나는 대한민국에서 하류층인 게 틀림없었던 거야. 내게 해당되는 게 왜 그리도 없는지 갑자기 욕이 나오더군. 딴에는 돈이 주가 되어서는 아니 되며 마음엔 몇만 평의 자연을 정원으로 들여앉혀 가며 자존감 높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살짝 속이 뒤틀리는 꼴이라는 게 우스웠다. 물론 며칠 지나면 또 잊고 살 테지만 말이다.

외려 다른 나라의 중산층 기준을 보면서 내가 기댈 곳이 차라리 미국이나 영국의 중산층에 근접하더라. 영국에서는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하며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때 중산층에 들 수 있다고 하더라. 미국에선 말이야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이며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 있으며 중산층에 들 수 있다고 하더라. 잠시 이민이라도 가고 싶어진 이유는 뭘까. 이곳에서의 잠시 뒤틀린 기분을 저곳에서 힐링한 기분이랄까.

내가 왜 한국의 중산층에 포함되지 못함을 자책하고 있는지 그런 내가 역겨워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는 내내 기분이 쓴맛이었어. 그렇다면 굳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면 그렇게 살아오면 되지 왜 한국의 중산층 기준에 미달치 못했다고 우울할 필요가 없을진대 말이야. 나는 분명 나를 위한 나는 없었고 남을 위한 삶과 남의 눈을 위한 평가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 그렇다고 마음에서 솟아나는 거룩한 희생정신도 아니고 애민도 아니고 태초부터 우러나온 사랑의 본능도 아니니 더 가관인 게지.

어쩌면 나의 삶, 내가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나마 남의 인생을 사는 준비 단계이니 그리 오래된 고질의 표절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지만 이렇게 가다보면 인생이 백 년이라 치자 난 절반을 살았는데 내 인생은 언제 살아볼까 걱정도 되고 그렇다네.

각시붕어야! 아무래도 이렇게 내 넋두리는 7월이 저물 때까지 계속될 거야. 왜냐면 너는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징크스 같은 게 있더라. 지금껏 7월만 되면 이육사 시인의 싯구절처럼 청포도가 익는 게 아니라 한 여자의 넋두리가 제법 익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겠더라.

여우숲

아이가 울고 있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허수아비들이 쓰러진다. 쓰고 있던 투명한 우산이 아까시나무에 걸려 찢겼다. 신발은 어디로 도망가버렸나. 맨발에 닿는 감촉이 좋지 않다. 단추가 우둑우둑 떨어져 나가면서 발가벗겨진 아이는 절뚝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보지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빨이 떨리고 온몸이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검은숲이었다. 색깔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온통 검은나무와 검은 흙과 검은새가 지저귀고 검은 도랑물뿐이다. 이따금 ‘호르르 호루호루...’라고 울고 가는 새의 울음만 들려올 뿐이었다.

집을 나섰을 때 같이 떠나왔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이는 친구들의 이름을 불렀지만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음성언어들만 웅성거린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찔리며, 엎어지며, 울며 한 걸음씩 나아가자 오복성이 보였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오복성 꼭대기에 있는 진달래가 꽃을 피운다. 마을 사람들은 희망의 성이라 불렀다. 눈만 뜨면 성의 꼭대기만 쳐다봤던 곳이다. 비가 그쳤다.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찾아 들어가니 휘황찬란한 색들로 덮였다.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빨간 미로의 성이었다.

아이들은 비밀의 동굴이라고 불렀던 곳이었다. 길을 떠났던 동무들이 그곳에 모여앉아 소꿉놀이하고 있었다. 몽수리한 시계풀로 머리띠를 만든 옥이와 아까시아 꽃송이를 넣고 디딜방아를 빻아주던 영희가 보이고 상수리 나뭇잎으로 움막을 짓고 바닥을 까느라 정신없이 바쁜 호야가 보였다. 구불구불한 동굴에서 미끄럼도 탔다.

아이가 잃어버린 옷가지와 신발을 찾아 동굴 밖을 나서자 친구들도 따라나섰다. 아름드리 상수리나무로 우거진 숲을 만났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다람쥐들과 도토리 전쟁을 벌이자고 했다. 다람쥐가 던진 도토리에 맞아 눈가가 벌건 옥이나 이마에 혹이 난 영희나 아랫도리를 감싸 쥐고 아픈 표정을 짓던 호야는 뭐가 신났는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순식간이었다. 도토리를 집어 던지며 전쟁을 벌인 것은 다람쥐가 아닌 긴팔원숭이로 변해 있었다. 찢기고 두들겨 맞은 원숭이가 흰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복수에 차오른 눈빛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반대편에서는 코뿔소 수천 마리가 에워싼다. 아이들은 힘껏 도망치다가 서로의 암호를 주고받으며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넣어 둔 도토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실컷 날아가다 오복성의 꼭대기에 걸려 땅으로 추락했다. 그곳은 마을이 훤히 보이는 갈림길이 있는 숲길이었다. 우린 신나게 웃으며 무서움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벌렁 누워 콧구멍을 후비며 잃어버린 도토리 생각을 했다. 그때였다. 오복창고 꼭대기에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진달래꽃이 환하게 피었다. 성의 꼭대기로 획 날아간 원숭이가 진달래꽃을 한 아름 안은 채 성큼성큼 걸어오며 한마디 던지고 숲으로 사라졌다.

“우리 같이 놀래”

새벽 추위에 몸을 이불 속에 맡기며 눈을 떴다. 밤새도록 꿈을 꿨다. 아이 같은 꿈을 꿀 나이는 훨씬 지났건만 여전히 나는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슨 이런 꿈을 다 꾼다 말인가. 아무래도 휴일에 현대미술제에서 봤던 ‘코뿔소는 왜 밀림에서 쫓겨났을까’라는 설치 미술의 작품과 오늘 아침에 텔레비전에서 봤던 긴팔원숭이의 눈빛을 잊지 못해서 이리라.

엄마의 품속에 있어야 할 새끼원숭이가 밀림이 아닌 우리나라 도로 한복판까지 나타났다. 무분별한 밀수 탓이었다. 밀림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횡포와 잔인함은 도를 넘었다. 새끼 원숭이가 보는 앞에서 그들의 가족을 죽이고 비로소 새끼 원숭이들이 겁을 먹고 방황할 때 잡아들였다. 녹슨 쇠창살에 갇혀 낯선 길과 먼 길을 돌고돌아 도시의 한복판까지 오게 되는 사연들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게 부끄러워졌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멸종위기 동물이든 아니든 개의치 않는다. 뼈가 부러지고 눈두덩이가 부푼 원숭이의 학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통째로 삶아 한약재로 쓰거나 원숭이의 팔뼈로 만든 젓가락이 고액에 팔려 나가기도 한다.

코뿔소도, 호랑이도 고향을 잃은 지 오래다. 밀림은 문명의 발전과 이기에 사라져 가고 집을 잃은 동물들은 사라지는 숲의 바깥에서 방황하고 아파하다가 천천히 죽어가는 현실이다. 숲이 사라지고 생태계가 무너지고 다음은 누가 무너질까. 언젠가는 인간에 대한 조롱으로 되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숨 쉬고 먹고 자는 것만이 우선이 아니다. 가장 완벽한 자연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오랜 이기는 어디까지 갈까. 우리는 욕망을 꿈꾸고 그들은 공존을 꿈꾼다. 그들의 신전을 뺏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인간은 착각해도 단단히 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의 영역에서 탄생한 거로, 무슨 특권을 부여받은 권위자로 말이다. 하지만 그들과 풀과 숲에서 공존하며 먹고 먹히는 사슬의 관계에 놓인 자연 일부일 뿐이다.

아직 동이 트려면 멀다. ‘딩동 메일이 왔습니다.’메일에도 색깔이 있음을 처음으로 봤다. 가을이 저물어가는 시월 마지막 하룻밤을 숲에서 보내자며 ‘여우숲’으로 초대하겠다는 편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온 밤 내 검은 숲에서 영역을 침범당한 그들에게 쫓기는 꿈을 꾸고 난 새벽에 받은 편지인지라 몹시 위안이 된다고 할까.

여우가 되살아오는 날을 기다린다는 염원을 담아 지은 이름 ‘여우숲’에서 숲에 길을 물으면 찾아주려나. 아무래도 오늘 새벽 먼동은 초록으로 푸르게 번져오는 게 아닐까.

나도 더러는 질펀하게 무너지고 싶다

동해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건 오전 10시쯤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벼르던 여행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구룡포로 가는 옛길을 따라 조개를 잡고 볼락회에 소주 한잔 마시다 죽은 듯 자야겠다고 먹은 마음이 포기하기에는 마음한테 미안해졌다. 남들이 보면 시답잖은 여행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간절한 염원이었다. 이판사판으로 가보는 데까지 가보자며 나는 도시락을 싸고 남편은 텐트와 침낭을 챙겼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는 일이잖은가. 호미곶을 지나 구룡포항에 닿을 즈음이면 파도가 지쳐있을 거라는 희망은 출발할 때부터 가지지 말았어야 했다. 일기예보는 빗나가지 않았다. 파도는 천년 묵은 한을 토해 해안반도 둘레길을 덮쳤다. 긴 목덜미를 자랑하듯 제철소 수십만 개의 불빛만 바다에 녹아 있었다. 다시 찾아간 곳은 어촌의 그만그만한 포구였다. 사는 일이 눅진하여 역마살이 낄 때 드나들던 곳이다.

길과 바다의 경계가 지워졌다. 식당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아걸었다. 유월 밤바다는 괴괴하다.

마지막으로 양포와 구룡포 사이에 있는 바다낚시 공원으로 차를 돌렸다. 역시나 마찬가지다. 으르렁거린 파도는 겁도 없이 바다를 삼키고 내뱉으며 산산조각을 낸다. 어쩌란 말이냐.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기엔 억울함마저 들었다. 오기가 생겼다. 무슨 통쾌한 일이 없을까를 고민하다 포항에 사시는 형님 내외를 불렀다. 통쾌하고 가슴 뛰는 일이래야, 고작 태풍의 눈에서 놀아보자는 정도였다. 이윽고 우린 해안가에 텐트를 쳤다. 조개잡이야 멀찍이 달아났지만 모처럼 한 지붕 아래에서 저녁을 먹고 등을 맞대며 넷이 누우니 나름 재미가 쏠쏠하다.

밤은 익을 대로 익어가건만 태풍은 잦아들 기미가 없다. 형님은 어느새 적응되었는지 얕은 코까지 골며 단잠에 빠져들었다.

나도 설핏 잠이 들 찰나 아주버님과 남편이 나누는 대화가 나분나분 들린다.

“오늘 같은 날 농어낚시가 제격인데 말이죠. 채비라도 있으면 시도해 볼 텐데.”

나는 혼미한 잠결이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이런 날씨에 농어가 왜 잡기 좋아요?”

“농어는 바다가 고요한 날에는 잡기 힘들지. 경계심이 워낙 많아 입질을 안 하니까. 아주 영리한 놈이야. 하지만 파도의 높이가 걷잡을 수 없거나 바닥이 뒤집히고 태풍이 몰아치면 스스로 경계를 풀어버리는 거야.”

어째 농어의 영리함보다 안쓰러움이 먼저 든다. 평소에 얼마나 긴장 상태로 살았을까. 나름대로는 다른 어종에 비해 똑똑한척하며 우월감마저 들었으리라. 하물며 녀석인들 풀어지고 싶지 않았을까. 혹 날씨를 핑계 삼아 일부러 경계를 풀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아무튼, 그것이 농어, 그 녀석의 본능이든 자의에 의한 방식이든 꾼들의 입질에 걸린들 어떤가. 오늘따라 녀석이 부럽다 못해 나도 잠깐 농어가 되고 싶은 저녁이다.

나는 한 달 전 ‘경계성암’이라는 진단을 확정받았다. 수술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득해졌다. 인간과 신의 사이를 연결해 주는 무당이 잠시 다녀간 듯했다. 돼지머리 앞에서 춤추던 단골무당의 희번덕이는 칼날이 악령을 삼킨 채 언제 내게 꽂힐지 두려웠다. 지리산의 성모천왕 앞에 빌고 싶었다. 진한 선팅을 한 자동차에 갇힌 기분이었다. 빛과 그늘 사이에 오래 앉아 있었다. 터지기 직전까지 불어놓은 풍선 신세였다. 가시가 두려워 장미꽃밭에 갈 수도 없었다. 도살장에서 잡아들인 붉은 살점들이 정육점 냉동고에서 급냉으로 얼어가듯 나날이 경직되어 갔다.

나는 경계에 선 여자였다. 한 끗 차이로 간당간당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누가 보면 사람 구실 하기를 포기한 줄 알았을 게다. 먹고 자고 노는 일상성마저 시시해졌다. 혹 대문밖에 기다리던 암세포가 문을 여는 동시에 들어오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오면 날밤을 새웠다. 어차피 한번 태어난 인생인데 심오할 필요가 뭐 있어. 한방의 쾌락으로 살면 되지 라는 마음과 어차피 한번 태어난 인생인데 제대로 살다 가야지 라는 마음이 하루에도 수없이 싸움질해댔다. 한 달이 백 년처럼 흘러갔다.

낚시 이야기를 하던 두 사람도 잠이 들었는지 기척이 없다. 새벽 2시. 좀체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오니 바다는 여전히 길길이 날뛴다.

해안가 난간에 등을 보인 낯선 사내가 혼자 바다를 바라본다. 이윽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지 꽤 긴 시간을 보낸 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무엇을 찍었을까. 나는 한잠이라도 자야겠다 싶어 텐트 속으로 들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눈을 떴을 때 형님은 아직 곤한 잠에 빠졌다. 이미 남편과 아주버님은 갯바위로 조황을 보러 떠났다. 아침이 뿌옇게 밝아오면서 지난밤의 바다도 서슬 푸른 장난을 멈춘듯하다.

선듯한 기운이 돈다. 셔츠를 껴입고 작은 카페가 있는 계단을 올랐다. 야트막한 언덕 아래 말굽 모양의 구룡포 항구가 저만치 보인다.

해송림을 지나 하정리 정자까지 가볼 참이다. 드문드문 쭉정이만 남은 보리밭에서 접시꽃을 보자 장난기가 발동한다. 꽃잎을 한 장 씩 떼어 보릿대에 붙였다. 어린 시절 삽작길을 붉게 물들이던 꽃이었다. 이른 아침 감포에서 들어오는 자동차들이 창문을 내리고 힐끔힐끔 내다본다. 계면쩍은 나는 왔던 길을 돌아 자갈톱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해풍에 몸 말리는 갯메꽃 군락지에서 또 한참을 앉았다. 간밤의 요동친 태풍 탓인지 더러는 상처 입은 꽃잎들이 아리다. 여남은 척의 큰 배가 해무를 흐트러뜨리며 먼바다로 나아간다. 사는 일이 참 거룩하겠다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든다. 왜 들었을까.

며칠 전 잔광이 내려앉은 오후 블라디보스톡에서 선배가 보내준 문자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아닌 병명에 자신을 가두지 말아요. 경계성암이라서 다행이고 고맙다고 생각해야지. 더 아프고 더 절박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데요. 이제부터라도 자신을 잘 챙기고 다니라는 신호일 거에요.’ 별거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일축성 문장에 불안이 눈 녹듯 사라지는 고로 봐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라도 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니면 길을 나서니 생각이 유연해진 걸까.

아무튼, 나는 지금 갈림길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아프지 않을 이유도, 건강할 이유도 된다. 여름에 겨울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모종을 뿌리면서 잎을 생각하고 꽃과 열매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극성스럽게 살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생각을 확 바꿔버릴 수 있는 단세포적인 내가 믿기지 않아 어금니에 쥐가 날 지경이다. 언제쯤이면 솔직한 나를 만날 수 있을까. 다만 나도 이 시점에서 한번쯤은 무너지고 싶었을 뿐이다. 농어 그 녀석처럼 날씨를 핑계 삼든 따뜻한 사람이 던진 입질을 핑계 삼든 덥석 물어 질펀하게 풀어지고 싶다. 더러는

노물리에서

저는 지금 노물리라는 작은 포구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7번 국도의 해안도로를 따라오다 보면 만나는 마을이지요. 어제 오후에 나와 고작 하룻밤을 유했건만 오래전 집을 떠나온 듯 몸이 축축하군요. 습기 탓이겠지요. 밤새도록 파도가 테트라포드에 부딪히고 고였다 빠져나가는 소리에 잠을 설쳤지요. 이참에 구릉진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와야겠다 싶어 일어났습니다. 엊저녁 황홀하리만치 붉던 집어등도 명멸해지는군요.

아직 시월이건만 바닷가의 새벽바람은 새초롬한 며느리같이 차갑네요. 갈매기는 자맥질도 심심한지 모래사장에 발자국 찍어놓고 변심한 애인처럼 사라집니다. 근해로 떠난 고깃배가 돌아오자 몇 명의 사람들이 익숙한 듯 뱃전으로 모여듭니다. 누군가 건네는 만 원짜리에 오징어 세 마리, 전어 두 마리, 물가자미 한 마리가 오갑니다. 그 집 아침 밥상 생각하니 배가 고픕디다. 바람은 파리한 물결을 지나 차디차게 새벽이름값을 하더이다.

차가운 바람에 자꾸 옷깃을 여몄지만 묘한 쾌감이 일더라고요. 이제 발등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고 일출을 기다리며 침낭에 들었습니다.

언뜻 든 생각이지만 봄날도 아닌 가을 저녁에 텐트에서의 숙박을 결심했다는 것이 무모한 용기였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모한 용기는 순전히 그 녀석 때문이었을 거예요.

어제 해거름이었어요. 얼룩무늬 두건을 쓴 남자가 해풍에 마른오징어를 거둬들이는데 곁에서 하염없이 포구를 응시하고 있던 고양이 한 마리를 봤지요. 사람이 아닌 고양이에게서 아득한 고독감을 봤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분명 봤습니다. 먹잇감을 두고서 노을이 스며든 바다를 미동도 없이 응시하는데 제가 아득해지더군요. 분명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것 같았어요.

문득 고양이의 뒷모습을 보는데 당신 생각이 났어요. 그대도 어딘가에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는 버릇이 있잖아요. 함께 같은 길을 걸어온 십여 년을 돌아다보았습니다. 불현듯 거두절미하고 ‘봄여름가을겨울’이라고 문자를 보내봤지요. 이윽고 ‘곧 겨울이 오겠지요.’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것 봐요 당신은 어제 고양이를 닮았다니까요. 짧고 강렬한 시어를 먹고 살지만 정작 속으로 늘 외로웠음을 보이곤 했지요. 문자를 보낸 것은 당신과 함께 지나온 계절이 열 번씩 흘러가고 있다고 보낸 암시였지요. 하긴 참 당신다운 문자지요. 그러고 보니 곧 겨울이 오겠군요.

아직 오지 않은 녀석을 기다리며 일출을 몇 컷 찍다가 식전 댓바람부터 갓 잡아 올린 벵에돔에 소주 한잔을 마셨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엊저녁부터 생수도 떨어지고 커피도 바닥인데 큰길에 있는 구멍가게는 천리 같아서 포기를 했습지요. 내가 다시 돔의 살점을 삼키는 동안 언덕에서 내려온 할아버지는 등대에 몸을 맡기고 한 시간 째 바다를 바라보네요. 이젠 별도리 없이 생성보단 소멸해가는 자신을 응원했을까요. 노인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보고서라도 작성해서 읽어주듯 주절주절 읊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아마도 이는 파도에 난파도 되었다가 지는 물결에 만선의 배로 풍어 등도 울리며 포구를 찾아 돌아오는 순례의 길이겠지요.

밖이 소란스럽습니다. 관광차가 수십 명의 사람들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내 내항의 건너편 블루로드 목책교에 단풍 같은 사람들이 띠를 만들어 아금받게 걸어갑니다. 가는 동안 닿을 듯 닿지 않는 목적지를 생각하며, 부풀어 오른 물집을 원망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이도 섞고 자리도 바꾸고 마음도 바꿔가며 가겠지요.

컬러풀한 옷차림을 보니 당신이 부탁했던 일이 불현듯 떠오르네요. 기억에 안개가 낀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달포 전인가 제가 어느 골목길 끝 집을 휘감아 오르는 꽃 분홍 나팔꽃과 둥근 유홍초 풍경 사진을 보냈더니 침묵의 고수인 당신이 감동을 한 게지요. 마당에 심어 놓고 철길을 지나가는 기차와 친구가 되게 해 줄 거라고. 그러니 잊지 말고 꼭 씨앗을 받아달라던 말이 이제야, 그것도 낯선 포구에서 생각나다니 저도 늙어가나 봅니다. 그 집 가을 꽃걷이 끝나면 씨앗 약속은 물거품이 될 텐데.

첩첩한 노물리 포구의 바람이 을씨년스럽습니다. 마을 입구에 낭창 하게 서 있는 해신당 팽나무에 오색의 헝겊 조각이 갈가리 찢겨 펄럭입니다. 바다로 들고 나는 뱃사람이 매단 상처의 흔적이겠지요. ‘상처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간다’는 김 훈 작가의 말을 주문처럼 되뇌며 저 곳은 필시 상처의 창고일 거라고 믿어요. 터전이지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바닷길로 나가면서 해신이 자신들의 안녕과 마을을 옹골차게 지켜 줄 거라는 믿음이겠지요.

나는 응당 그들의 속설을 터부시한다거나 어리석다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즘의 내가 요원하리만큼 자주 무너지고 자주 속내를 감추고 자주 아려서 자주 곤두박질치는 중이었으니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세상으로부터의 겉돌기에 익숙한 나를 파기했지요. 해무가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허무는 중입니다. 경계 없기로는 나도 왠지 한통속 같습니다. 걸핏하면 당신을 몰아세우고 닦아세웠지요. 그러고 돌아온 날이면 헛헛함에 자주 울곤 했지요.

난 저 망연한 바다를 보면서 이곳에 오래 머물고 싶지만 생각뿐입니다. 초록 목걸이를 한 고양이는 끝끝내 돌아오지 않고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깁니다. 물빛이 바뀌고 수평선 선율이 바뀌었습니다. 가히 치명적인 빛깔입니다. 처연하리만치 아름다운 빛깔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나는 애꿎은 소주를 또 들이켭니다. 숫제 이것은 살아있음의 축복이겠지요. 노물리에 다시 일몰이 오기 전 서둘러 돌아가려고요. 선홍빛 나팔꽃이 휘감은 녹슨 대문 집으로 가볼 참이에요.

놓아라

안성에 있는 미리내성지를 둘러보고 대구로 오던 길이었다. 어디쯤이었나. 잔설이 다문다문 덮인 산중턱에 흰 건물의 요양원 한 채가 보인다. 꼭대기에 적힌 큼지막한 세 글자를 보는 순간 멈추어 설 곳을 뻔히 알면서도 심하게 요동치는 나침반의 바늘처럼 가슴이 떨렸다. 싱그러웠던 생은 넘겨주고 지친 육신을 껴안고 데리고 들어간 병원에서 그네들이 극구 붙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놓아라’

이내 동승한 몇 명은 놓고 버림의 대상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한다. 누군 돈이 모든 욕망을 부채질한다고, 누군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누군 시답잖은 인연들을 정리해야 한단다. 나는 애써 모른 체했다. 아니 모른 체가 아니라 여태 놓아버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게 진실하겠다. 눈을 감았다.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다. 자꾸 캄캄해진다.

아뜩했던 마음도 잠시뿐. 현실은 생채기 보듬을 시간도 없이 팽팽하게, 내 잘난 맛에 사는 데 익숙해 있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이 왔다. 이즈음 y 시인이 ‘내가 죽으면 이런 풍경이 올까. 아무도 오지 않는 장례식장에서 오래오래 술을 마셨다.’라는 글과 텅빈 영안실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흰 비닐로 덮인 수십 개의 테이블은 몇 시간째 손님을 기다렸을까. 실끈만큼의 인연도 불러들이지 못했는지 적막만이 얹혔다. 구석진 테이블엔 쭈그러진 캔맥주 세 개 와 반쯤 마시다가만 소주 한 병과 식은 국밥과 김치 접시에 걸쳐진 나무젓가락이 가지런하다. 옆에 놓인 종이컵의 단풍잎은 저리 고운데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오지 않는 사람도 말 없긴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렇듯 전부 어딘가에 걸쳐놓은 인생 같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한 장의 사진이 천근만근 묵직하게 다시 파고든다.

내 버릇 중에 하나가 안 풀리면 꼭 꿈으로 다가온다. 지난밤에도 그랬다. 비질이 말갛게 난 초가집 마당을 돌아가니 뒤란에 작은 도랑이 있었다. 어찌나 물이 맑은지 연둣빛 개구리밥의 핏줄이 선명했다. 도랑을 건너 숲으로 드니 곧 피어날 수백 개의 눈을 매단 복숭아나무 한그루가 내게 물었다. 왜 이 젊은 나이에 도화천을 건너왔냐고 했다. 씨익 웃으며 언덕에 올라가니 <천국 가는 길>과 <잘 먹고 잘사는 길>로 안내판이 꽂혔다. 망설임 없이 푯말 두 개를 동시에 뽑아 내려오니 이웃들이 문밖에서 부러움과 찬탄을 보내왔다. 이내 찬탄은 비난과 동시에 오물로 범벅이다. 그리곤 처마 끝 그늘을 빙빙 돌며 울고 있는 내가 보인다. 일어나니 다행히도 꿈이다.

비록 꿈이었지만 자주 앓고 나니 몸과 기분이 그리 개운하진 않다. 난 그동안 말끔한 선택권 한 장 없으면서 어디에도 몸을 들이지 않으면서 어디에도 들였다. 이 한생을 내칠만한 용기는 꼬투리만큼도 없었다. 과도한 불안감이었거나 예수나 부처의 포용력을 흉내 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늘 착했으며 나의 앞날은 여전히 환해지고 채워질 거라 믿으며 주위의 인연에 불편한 너그러움을 베풀었다. 절정에 닿지 않은 발화점에 성냥을 그어대니 늘 희나리에 머물렀음에도 활활 타는 불꽃이었다고 착각했다. 명백한 건방짐이 아니던가.

어기적어기적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정처 없었으며 적적함에 안간힘을 쓰며 매달렸다. 시시때때로 내가 숨 쉬는 숨결에서 텁텁한 기운이 느껴졌으며 미래가 암울해졌다. 어둑한 문간을 넘어가니 바람이 다녀가거나 비가 다녀가거나 배고프면 우거짓국에 게걸스럽게 밥 말아서 먹는 내 모습만 보였다. 결국, 생니 앓듯 놓을 것에 대해 앓아누우면서 미루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놓을까? 마음 비우기는 내게 버거운 일이라 우선 단순한 기록물과 가벼운 것부터 찾기로 했다. 여태 정리하지 못했던 이유도 좀 더 솔직해져 보면 하나의 거래였을 것이다. 삶이 송두리째 외상 장부에 기록되거나 인간 대 인간의 교환이었거나 묵시적인 당부도 포함하고 있었으리라. 생의 기울기에서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겠다는 욕망도 내포되어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먼저 휴대전화를 열었다. 8백여 명의 당신들이 일제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내가 그토록 우상처럼 떠받들며 나도 모르게 하인으로 살았던 전화기 세상은 소우주였다. 들여다보고 있자니 무에 이리 거미줄인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십여 년이 흘러도 안부 한번 건네지 않은 사람,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사라지고 없는 식당들과 암호로 가득한 번호들이 수두룩하다. 한데 남길 사람과 버릴 사람을 구별하기도 쉽지만은 않았다. 혼자만의 기준을 만들어 실밥을 뜯어내듯 뜯어냈다. 마지막으로 개인사 생활 전부를 보여줬던 스토리에 수천 장 의 흔적이 담긴 사진을 닫았다.

조금 더 가벼워지기 위해 집안을 둘러본다. 물건마다 사연이 있어 버리지 못한 것들이 그득하다. 서랍마다 구멍마다 넓혀가며 채워가며 난리가 났다. 한번 들이면 삭는지, 터지는지도 모르고 그저 꽃밭인 양 착각하며 살았다. 이들이 한사코 제발 나를 버리지 말라는 애원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감해졌다. 이렇듯 버렸다는 것은 기억 속의 한 공간도 삭제했다는 것이다.

이 한 줌밖에 되지 않은 내 몸을 주위로 천지간 만물과 인간관계들이 과도할 만큼 왕국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잠시나마 가볍다. 세월이 몸을 데려간다는데 무얼 그리 쟁여놓고 갈 거라고, 불현듯 눈에 들어온 ‘놓아라’라는 세 글자에 놓지 못했던 나에게,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장례식 영정 사진 속 당신이 묻는다. ‘말끔하게 살다 이곳으로 올 자신이 있느냐고’말이다. 먼 길을 떠나 몸 뉘일 곳을 찾아 흘러들고 보니 그늘 한 줌 없는 사막이라면 어쩌겠는가. 날은 저물고 내려앉은 어깨 일으켜 세워 돌아오기엔 이미 늦을지도 모름을 나는 여태 왜 몰랐을까.

어떤 풍경 1

공터를 둘러싼 잡목숲에도 초겨울이 찾아들었다. 지난밤엔 비가 제법 내리더니 웅덩이마다 물이 흥건하다. 나는 익히 해 온 것처럼 베란다 창문을 열고 어떤 풍경을 훔친다. 그러니까 노인들이 야트막한 동산이었던 그 터에 간이 살림을 꾸린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얼추 세 해쯤 되었을까. 아파트 후문을 벗어나면 세 갈래 길이 나 있었다. 언덕을 내려 성당으로 가는 길과 묵정밭 사잇길을 따라 암자로 가는 길, 근린공원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어느 날 땅 주인이 암자와 성당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다. 자연스레 삼각지가 만들어지면서 공터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왜 비어있는 꼬락서니를 그대로 두지 못할까. 정원수 가지치기를 한 나뭇가지며 깨진 화분과 온갖 생활 쓰레기가 쏟아졌다. 절름발이에 빛바랜 의자. 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낡고 삐걱거리는 의자들이 나날이 늘어갔다. 농짝이 나오고 거적때기가 깔린다. 용케도 의자가 늘어가자 조그마한 공터에 불과함에도 쓰레기장을 중심으로 노인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삐걱거리는 의자는 불안을 안고 있다. 불안감을 안더라도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게다. 흔한 문짝도 가벽도 울타리도 없는 곳. 그야말로 한데가 아닌가. 딱히 정해진 시간도 법칙도 없이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와서는 시간을 보낸다. 바람도 햇살도 걸리지 않는 곳에 그들만의 기착지를 만든 셈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공터는 없다는 듯 식전 댓바람도 좋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답도 좋다.

유난히 광대뼈가 도드라진 김 노인은 웅덩이 고인 물에 흙 묻은 장화를 씻고는 한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텃밭에 다녀오던 팥죽색 조끼를 입은 할머니가 배춧잎 같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는다. 노모차에 물통을 싣고 가던 노인이 방향을 튼다. 감색 털모자를 쓴 노파의 눈길은 강 건너 은행나무숲에 머문다. 허리 굽은 이는 잡목숲에 한약 재료 찌꺼기를 쏟아붓고 돌아서다가 틈바구니에 앉았다. 공공근로를 마친 이들까지 합세했다. 앉을 자리가 부족했을까. 마른 나뭇단에 걸터앉고, 고무통을 눌러놓은 벽돌을 치우고 앉았다. 간밤에 제사를 모셨는지 떡이 오가고 막걸리 종발이 오간다. 깻단을 두들기던 백발 성성한 노인이 일을 끝내고 두리번거린다. 그러고 보니 냇가 돌 닳듯 닳은 노인은 외로 틀어 앉은 날이 잦더니 뜸하다. 초전댁은 무릎 수술을 하러 가고 덕곡댁은 치매가 심해 요양원으로 떠났다. 거창댁은 이사를 오고 산청댁은 먼 길을 떠났다.

이제 한파가 찾아오면 공터에 둥지를 틀었던 그네들도 꽤 길게 동안거에 들 것이다. 생이 길어질수록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의 가짓수가 늘어간다고 했던가. 채전밭 한 귀퉁이 살구나무 환해지는 날, 또 감자 씨눈을 따고 분꽃 늘어지는 여름이면 무성하게 뻗은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길 노인들. 솎은 열무를 다듬고 모과를 썰어 말릴 것도 안다. 절뚝거리며 뒤뚱거리며 여기까지 모인 생들.

겨울 지나 봄 지나고 여름 끝자락이면 키 작은 노인은 여전히 분꽃 씨앗을 받을 것이다. 잡목숲 싸리나무에 배춧잎 말라가고 느릅나무에 무청 말라가는 어느 하루. 어떤 풍경.

어떤 풍경 2

나는 매일매일 어떤 풍경을 본다. 그곳은 내가 사는 6층 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 내려다보면 30m도 채 떨어지지 않아 보이지만 내려가면 구불구불한 궤적을 그린다. 달리 보면 정상 궤도를 이탈해 보인다고 할까. 아파트 곳곳에 비치된 정자와 노인정을 두고 굳이 쓰레기 범벅이 된 공터의 버려진 의자에 무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 처음에는 그 모습을 보는 나의 감정이 결코, 간단치 않았다. 수시로 그 이유를 유추하다 문득 그들에겐 일종의 광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으로 터인 공간에서 서로의 마음을 달래주는 일이 익숙했을 거라는. 결국, 자연의 흐름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관찰이라는 단어에 각을 세울 필요는 없지만, 틈틈이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 나는 창가에 턱을 괴고 그들이 끊임없이 펼치는 몸짓과 표정을 주시한다. 뱉어내는 소리는 어차피 6층에 오르지 못함을 알고 있다. 귀를 쫑긋해봤자 말소리에 물을 섞어 놓은 듯 분석이 불가능하다. 차츰차츰 무언극을 본다는 느낌이랄까. 자연과 어우러져 펼치는 공연을 보는 관객은 오롯이 나 홀로다.

바람 부는 대로 돛을 달고 오다 보니 그럭저럭 여기까지 잘 왔다는 표정들. 더러는 정적과 허무가 한 바퀴 돌고 나간다. 애써 순환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뒷짐 진 그 공간은 적당히 느긋하다. 평행선을 벗어나 발등을 찍고 철망 아래를 고개 숙여 기었다 한들 어떤가. 어느 귀퉁이인들 바람들지 않은 곳 있을까. 짓무르게 살았으면 어떻고 오동나무 장에 비단이불 쟁여놓고 살았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랴.

시간의 속성이나 인간의 속성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는 것이 아닐까. 시계를 고장 내고 신기술로 노화를 줄여도 시간의 흐름과 노년으로 가는 길은 멈출 수가 없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고통과 상처를 수용하는 일쯤이야 도가 텄다는 표정. 그러기에 거꾸로 매달려도 사람 사는 이승이 낫다는 것을 익히 알아 호시절을 보내고 있는. 느릿느릿 흩어지고 어느 순간 슬그머니 모여 남은 시간을 잣는 풍부한 표정이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그렇다고 늘 판토마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 늙은 개를 데리고 바지 뒤춤에 손이라도 넣은, 체구가 다부진 할아버지라도 출현할 때, 만사에 호들갑인 뿔테 안경을 쓴 할머니가 움직이는 날. 밤새 사라진 농작물의 범인이라도 유추하려고 소리칠 때. 토라진 두 할멈이 만나 할퀼 머리채는 없지만, 게거품을 물고 목청을 높일 때. 이러한 생생한 광경을 목격하곤 하는 날은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이처럼 살아 있는 소란은 때론 묵언 수행보다 더 나를 수행에 이르게 한다.

아직은 맞닥뜨리지 못한, 나와는 별개인 듯한 '어떤 풍경'.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황량한 공터에 허방을 만든 노인들. 정열도 강렬도, 한때의 절절함도 먼 나라의 언어인 듯 보내놓고 적당한 영역에서 해바라기를 즐기는 그들. 볕을 이고 와선 공터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구부정한 등골을 뉘며 허기진 삶을 풀어내고선 볕을 지고 간다.

어떤 연속선의 한쪽 끝에서 걸어와 한쪽 끝을 밟으며 시작과 끝을 여물게도 매듭짓고 잇대어 사는 한 무리의 노년들. 그 위로 때까치들이 한참 휘젓고 날아갔다. 하늘은 조금씩 아래로 내려왔다. 곧 어두워졌고 서쪽 하늘에 별이 뜰 것이다. 아득한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노인들은 또 달게 잠 들것이다. 서늘한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겠지만 그 순간은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구만리장천 어떤 풍경 너머에선 또 엉겅퀴꽃 피고 민들레가 필 거야.

펜에 대한 보고서

남편이 사흘간 제주도 애월에 다녀오겠다나. 나는 아주 외롭고 쓸쓸한 얼굴로 배웅하고선 돌아서서 입을 벙싯거리며 현관문을 단단히 걸었다. 이 명랑한 머릿속.

저녁이 되자 자유를 누릴 그녀들이 단단한 현관문으로 들었다. 우린 30여 년 전 윗집과 옆집과 아랫집으로 만난 인연이다. 잠시 떠났다가 돌아온 남주는 한결같이 위층에 살고 정봉은 도시의 외곽이 그리워 강의 안쪽으로 이사 갔다. 그렇게 셋이 원주민이 된 집에서 맨발로 만났으니 오죽할까. 걸핏하면 정전되던 옛날처럼 부러 불을 껐다. 마시던 맥주캔을 머리맡에 밀쳐 놓고 몸 가는 대로 눕는다. 한참 기척 없다 싶으면 코 고는 소리. 오래된 집의 창문 소리에 목소리 건너오고 다시 맥주 거품 일 듯 사그라드는 대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혼자다. 마저 남은 자유를 어디에 쓸까.

새벽 3시. 이미 잠은 줄행랑을 쳤다. 뜬금없다는 말. 무언가에 홀린 듯 방방이 다니며 볼펜꽂이 통을 한곳에 그러모은다. 순식간에 100여 자루가 넘는 필기구들이 쏟아진다. 문구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늘 두어 자루씩 사 모은 게 화근이었다. 자연스레 신구(新舊)가 뒤섞여 한통속을 이룬지 오래다. 볼펜의 평균 수명이 2여 년이라는데 십수 년을 방치했으니. 언제나 흔적은 내재되어 있던 시간을 끌어와 재구성하는 모양이다. 홍보기념품, 답례품, 여행지에서의 선물. 어느 종족에서 건너왔는지도 모를.

가짜 몽블랑. 부러지고 볼 빠지고 두어 방울 남은 대롱 속 액체. 몽당연필. 제 색을 내지 못하는 형광펜. 스프링 헐거워진 것들을 골라냈다. 첫 저서에 사인했던 붓펜은 굳었다. 볼이 회전하면서 흘러나온 잉크 일부는 툭툭 치니 숙변을 쏟아냈다. 일명 '볼펜똥' 이다. 볼펜은 펜 끝에 장치된 자그마한 공 모양의 금속 볼을 끊임없이 회전시키고 연필은 칼날에 자기 몸을 맡겨 글자를 만든다. 더는 칼질할 몸과 회전되지 못한 볼이 무언가를 생산해 내지 못할 때 비로소 이들은 죽은 자가 아닐까.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고 나니 손목이 얼얼하다. 그럼에도 촉촉한 글씨를 내뿜는 펜을 발견하는 일은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심판대로 사용되었던 이면지의 한 공간에 무심코 적어 내려간 글자 행렬. '아주 오래된 내 친구들 잘 돌아갔을까. 지금 애월의 새벽은 나의 자유보다 달콤한가?' 참 먼길을 돌아왔단 생각 들지만, 모든 것은 늘 곁에서 앓는 소리를 냈는지도 모를 일이지. 앓는 소리에 잠들지 못한 채 오롯이 펜에 대한 보고서를 다시 쓰는 일. 따습기도 하더라는 거.

액체가 고체로 굳어가는 동안 한 여자는 그저 어느 변방과 도시의 경계를 잇는 다리 위에서 강물을 바라보곤 한다. 때론 어느 외곽에서 젖무덤으로 말랑말랑하게 살고 싶었고 때론 한방을 기대하며 살고 싶었다. 상관없는 껍데기 따위에는 왜 그리 흔들렸는지.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 부동산투기로 돈을 벌고 출세가도를 달리는 사람들. 돈 벌 재간도 없는 나를 보며 빈 대공을 채워 줄 차가운 피를 갈구했다. 그럴 때마다 펜대를 굴리고 자판을 두드렸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내게 일종의 약이었지만 여전히 펜이 주는 비옥하고 무한한 약의 베일을 까발리지는 못했다. 어정쩡하게 흘러나온 글자들은 밤 고양이처럼 뒷골목의 담벼락에만 걸터 있었다. 실은 대로변이 그리웠고 볕이 그리웠다고.

이번엔 틀림없이 나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 줄 펜의 함성을 믿어볼 수밖에. 천천히 발등을 오므리고선 베란다에 섰다. 잿빛 블라인드 사이로 젖은 눈 날린다. 여전히 명랑한 머릿속.

너와 나

난바에 위치한 사라사 호텔 309호에 누웠어. 그저께는 토어로드를 따라 북쪽에 있는 기타노이진칸 거리를 걸었다네. 가파른 산 아래 칠 벗겨진 목조주택들. 총영사의 집도 어느 독일인의 붉은 벽돌집도 그저 서양인이 살았던 언덕이었더라고. 외려 낡고 익숙해서 어질러진 생각들이 편안했어. 검은 알맹이를 매단 올리브 나무와 희고 붉은 산다화가 생소하더군. 언덕 위 텐만 신사에서 마주한 고베항은 마른 나뭇잎처럼 생기가 없더라.

나는 왜 이 땅에 이제야 왔을까. 한몸 같았던 네가 수십 년을 머문 곳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가만 생각해 봤어. 너와 나를 끌어당겼던 구심점이 뭘까를. 같은 동네,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이름(한자까지 동일)을 달고 가장 높은 집에서 마주 보며 산 거. 시도 때도 없이 메아리로 돌아오던 이름 때문만은 아닐 거야.

오늘은 느지막이 일어나 기차를 타고 교토에 다녀왔어. 순간 어느 골목 배롱나무가 있는 특이한 외관의 2층 목조주택 앞에서 걸음이 멎는 거야. 네가 30년을 살았을 그 집일 수도 있겠단 막연한 생각. 한뼘 거리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담배 연기 자욱한 둥근 테이블에 앉았지. 희끗희끗한 머리를 틀어 올린 노인이 내린 이 커피를 너도 마셨을까. 어디선가 후각을 자극한 카레 향이 났고 눈이 큰 청년과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애가 대문을 나오는 거야. 뭔가 훅 내리쳤는데 뭔지 모르겠어. 자식은 뭘까.

여행이랍시고 떠나와서는 걸핏하면 부딪친 며칠. 좀체 간극이 좁혀 지지가 않아. 곳곳에서 이해충돌이 일어나더라니깐. 딸은 카페들이 즐비한 신사이바시에서 쇼핑하다가 다코야키나 라멘을 먹자, 난 그저 호텔 근처에서 삼겹살이나 먹자는 주의고. 에비스바시 지역의 트레이드마크라는 에자키글리코 제과점 옥외 간판 앞에서 굳이 줄까지 서서 사진을 찍을 이유도 모르겠더라고. 하긴 이 푸념조차 네게 미안해지는구나.

이따금, 아니 자주였어. 남편이 출근하고 겐타와 리츠코를 등교시킨 빈집에서, 줄담배를 피우면서 들려주던 네 목소리. 전화선 너머 레인지후드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 오곤 했지. 그러고는 '천국의 책방' 영화 이야기를 했잖아. 설정처럼 일찍 죽은 이들은 천국에서 다시 태어나 100살을 다 채우고 떠나게 될지 궁금하다고.

어느 날이었던가. 네 목소리는 굉장히 들떴고 이유를 묻자 드디어 2층 목조주택 리모델링 공사가 끝났다고. 마당 넓어 좋다고 했지. 붉은 칸나를 사고 배롱나무 손질할 전지가위를 사서 집으로 오는 길이라고. 언제 한번 일본에 다녀가라던 목소리는 여전히 나를 가시덤불에 가둔다네.

몇 해 전 너의 죽음 이후 죽음과 상실에 대한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를 봤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림보역에서 7일을 머물며 추억하고픈 순간을 살다가 떠난다는 이야기. 엄밀히 말하면 청천벽력과 암흑천지도 잠깐 이어지다 세상은 여전하다로 귀결되더라는 거.

너와 나의 마지막은 어느 해 사월이었어. 벚꽃 만발한 강둑을 거닐고 돌아간 후 울리지 않던 전화. 너의 안부를 혼자 추측하다 부음을 들었을 땐 이미 벚나무 잎에도 물이 들었더라고. 영원불변한 것에 대한 절망보다는 상실감. 불쑥 찾아드는 폐허감. 그렇다고 신을 부정하거나 파괴할 생각은 없어. 때론 상처 부위를 응시하지만 참혹해지지는 않더라고. 아마도 너로 인해 얻은 선물일 거라 믿는다네.

이승과 저승의 중간역인 림보역의 직원들이 묻잖아. "영원히 머물고픈 순간이 당신 인생엔 있습니까?"라고. 내 오랜 친구는 어떤 순간을 선택했을까. 친구야 너의 백 살은 아직 멀었어. 그러니 지금쯤 해당화 지고 눈 내리는 바닷가 언덕이나 천국의 어느 도시를 걷고 있었으면 한다네.

두 개의 창

방금 딸아이가 출근했다. 이제 객식구인 나와 낯가림 심한 뭉이뿐. 녀석의 행동거지가 궁금하다. 아니나 다를까. 행길로 난 작은 사각형 창문에 세워 둔 캣타워로 익숙한 듯 오르는 게 아닌가. 꽤 덩치가 있음에도 사뿐하게 말이야. 이내 성에가 잔뜩 낀 유리창을 앞발로 번갈아 가며 창을 긁는다. 방금 출근한 자신의 집사가 이때쯤 오피스텔 정문을 벗어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창문을 열고서는 주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 거냐.' 속으로 놀라웠지만, 짐짓 모른 척 눈길을 두지 않았다. 시리다.

예약해 놓은 동대구행 KTX 시간을 확인하며 소공원과 맞닿은 장방형의 길쭉한 창을 열었다. 여름이면 4층 높이까지 자라 창문을 녹색으로 물들였던 은행나무는 말갛다. 계절마다 대체된 풍경이야 늘 있겠지만. 응달엔 바람에 흩날려 쌓인 눈더미가 군데군데 쌓였다. 하늘에 철길을 낸 듯한 전선들이 사방으로 덮인 목동의 겨울 소공원은 단조롭다 못해 적적하기까지 하다.

평일 아침 공원 한켠에 앉은 중년의 사내. 온몸으로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꼼짝을 않는다. 추위에 무뎌진 겐가. 갈색 코르덴바지에 남색 후드점퍼가 남자를 단단히 감쌌지만, 훤한 정수리가 살얼음 낀 연못이다. 돋아날 새싹도 일렁이는 풀잎도 그렇다고 스멀스멀 피어오를 아지랑이도 없는, 언 땅을 왜 그리 쳐다보고 있을까. 혹여 기적과 낙원의 시간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30초 동안 잠깐 명퇴, 연금세대, 독거노인 이런 단어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혹 나에겐 낯설지만, 그에게는 지극한 일상의 패턴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순간 고개를 든 사내와 눈이 맞았다. 하긴 좀 쉬고 싶었을지도. 나는 자세를 한껏 낮추고 커튼 뒤로 움츠린다.

여전히 사각 창에 기대 몽상가가 된 뭉이. '내 고향은 탱자나무 울타리 숲 같은 여기가 아니야.'라는 시큰둥한 얼굴. 이따금 꼬리를 감고 앞발을 당겨 핥는다. 행길로 지나가는 사람, 전봇대를 휘감는 바람, 선회하던 새떼 무리에 쓸데없이 발길질이다. 사실, 뭉이는 딸아이가 7년 전 어미 잃은 새끼를 데려와 이름을 지어주며 키운 길고양이다.

같은 시각 공원을 품은 언덕배기 빌라촌 위로 햇살이 도둑가시처럼 다닥다닥 박혔다. 햇살이 불편하다. 두어 시간은 지나지 않았을까. 사내는 점퍼에 달린 모자를 당겨 정수리를 덮는다. 보도블록 틈을 쪼아대던 예닐곱 마리의 비둘기가 날아오르자 사내도 일어났다. 멀거니 알몸의 잔가지 사이로 유리창을 훔치고선 십자가도 없는, 교회 간판만 덩그렇게 붙은 골목으로 사라진다.

두어 번 하악질 하던 뭉이도 무료한지 나를 멀끔히 쳐다본다. 공격의 대상이기엔 힘없어 보였을 중년 여인. 쓸데없이 타인의 삶을 추측하지 말라고. 잡다한 그대의 삶이나 단정히 하고 하던 화장이나 마저 하고 당신 집으로 돌아가라는 눈빛.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배를 납작 깔아 가로 눈을 하더니 웬걸 잠에 빠졌다.

이처럼 창이라는 공간은 끊임없는 상상력을 투사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데려오고 데려갔다. 물론 둘은 그들만의 살아가는 방식을 몸소 체득했을 테고. 그러고선 간단없이 창문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안팎을 전환하며 내게 '자기 승화'를 던진 것은 아닐는지. 안에서 밖을 보는 뭉이와 밖에서 안을 보고 있던 사내. 누구든 어디서든 타인의 삶은 궁금한 모양이다. 설령 창문이 사라진대도 마찬가지일 거야. 없어질 것들은 없어지고 영속할 것은 영속하며 균형에 닿을거라는 단순한 이치가 새삼 고맙다.

두 개의 창문을 닫아걸었다.

"뭉아 안녕. 이 객식구를 데려다줄 카카오 택시가 도착했어."

콩시루 세상만사

물에 불린 검은콩을 시루에 깔았다. 밤낮으로 물을 먹이는 일이 요즘 나의 일과다. 그러고 보니 뭔가를 먹인다는 문장이 걸린다. 단순히 보호나 돌봄을 떠나서 '길을 들인다'가 도사리고 있었다. 물을 먹여 심리적으로 지배를 하는 일. 불현듯 반란과 궐기가 허공을 떠다녔다.

암튼 먹인 물은 사미니 이고 다니는 물동이만 한 시루 안에서 '차르르' 걸러지다 이윽고 '똑똑 탁탁' 남은 물방울을 떨쳐낸다. 자정 무렵이나 새벽녘에 떨쳐내는 물소리를 듣노라면 목탁 소리 진배없다. 수탁 소리인가. 그렇게 올겨울 콩들이 모여사는 작은 절간을 지었다. 검은 장막 안에 가둬 놓고 물을 먹여 길을 들인 것이다. 일주일간의 동안거에 들더니 착한 녀석들이 고깔모자를 벗으며 하얀 혀를 내민다. 외라는 불경은 들리지 않고 하늘을 향해 날름날름 떠드는 입들. 가만히 귀를 내민다.

"가스값이 난리래." "2055년쯤에는 국민연금 기금 바닥 설도 있던데." "이놈아 말조심해 압수수색 들어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코앞인데 대책 없다며." "아휴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니까." 바람 잘 날 없는 시루 밖으로 목을 빼 올린 너희들. 할 말은 그득해 보이는데 어째 부여받은 생이 짧아 보인다. 내일 아침 식탁에 먼저 오를지도. 한 치 앞도 모르는 암둔한 녀석들. 할 말조차 하지 못한 작은 콩들은 여전히 뒤엉킨 시루 속에서 난장판이다. 어쩌다가 두어 끼 굶긴 날에는 새들새들 삐쳐서는 고개를 획 꺾어버리지만 잠시뿐.

그저 물만 먹여도 싱글벙글. 시루 속은 아우내 장터. 내 콩이 크니 네 콩이 크니 서로 잘났다고 콩만 한 것들이 오졸거린다. 물에 잠겨 썩은 콩을 씹은 얼굴, 겨우내 살아났는지 날콩 씹은 상판의 찡그린 얼굴, 오르지도 눕지도 못한 채 껍질만 덮어쓰고 있는 콩. 이도 저도 아닌 틈바구니에서 검은 법복 자락 고스란히 벗어놓고 해탈한 콩. 기고만장하며 설레발 치던 콩나물을 뽑았다. 날름날름 떠들던 입들 닫아걸었다.

언뜻 절망과 희망은 처음부터 이분화되어 있지 않았단 생각이 이 순간에 왜 들까. 같은 말을 두고 A가 말하면 직격탄에 소신 발언이고, B가 말하면 비아냥이거나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웠다고 편파보도 하는 현실.

괜스레 눈앞 콩나물에 미안했다. 나의 잣대로 심판을 하고 있었던 게다. 무럭무럭 성장하여 나물이 된 죄밖에 없었다고, 남들보다 승승장구하여 주인장 비위 맞추었더니 얼간이에 암둔한 녀석들이라는 비아냥거림만 얻었다고. 누군 목숨줄 뽑히는 걸 알면서도 의연히 먼저 일어나서 할 말은 하는 용기를 펼쳤다고 응원하는 이도 있더라는 표정. 항변이라도 하듯 입 닫고 새초롬하게 누웠다. 딴에는 가치실현일 것이고 공양구현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행간에 납작 엎드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을 숨겨 놓은 채 아침 공양으로 콩나물국이나 끓이고 있는 그대야말로 허수아비가 아니던가.' 허공을 떠도는 말들이 나를 칭칭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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