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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사랑 / 김채영

에세이향기 2024. 6. 19. 04:12


 

 

    금지된 사랑    / 김채영

  

 

  한여름 밤의 꿈이었을까. 아니면 환시일지도 모를 일이다. 무더위의 적막한 산길에서 눈보라를 만나다니. 어둠 속에서 자동차의 불빛을 향해 끊임없이 밀려오는 눈보라의 향연, 늦여름에 어떤 이적이 창궐하나 싶은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은행잎 같기도 했고 공중에 분해된 새털 같기도 했다. 자동차 앞 유리에 꾸물꾸물 몰려드는 괴이한 물체의 비행에 정상적인 운행이 불가능해졌다. 운전을 하던 일행이 어이없는 웃음을 날렸다.

   "이게 뭐야 , 무슨 나방 떼가 눈을 쏟아 붓는 것 같군 그래"

    여행 중, 주말이라 차가 밀리는 고속도로를 피해 낯선 산길을 택했다. 고즈넉한 시골길에서 자동차는 상쾌하게 미끄러지듯 질주해갔고 드물게 지나치는 농가의 불빛이 정겨웠다. 시간이 흐르자 산은 깊어졌고 인가는 보이지 않았다. 한밤의 불청객으로 날짐승들은 놀라 후둑!거리며 숲 속으로 몸을 숨겼다. 검은 산의 나무들이 머리채를 산발하고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것이 일련의 사건을 예고하듯 했다. 그때 격정적으로 불빛에 날아든 불나비의 집단이 포진한 것이다. 밖은 무더웠지만 차안에는 긴장감으로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인해전술 같은 대담한 전략이었다. 한 점의 불빛도 존재하지 않는 깊은 산중에서 자동차의 불빛은 불나비들에게 목숨을 걸만큼의 신비의 극치였는가 보다. 차창에 무모하게 투신하는 불나비의 죽음이 소나기 소리를 창출해냈다. 그것들이 유리창에 부딪치며 떨어뜨린 분가루 자국이 생의 마침표가 되어 얼룩지곤 했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성급히 죽음을 재촉하는가. 동해의 집어 등 불빛에 속아 그물이 드리워진 바다로 퐁당퐁당 몸을 던지는 오징어 같이 어리석은 녀석이 또 있었구나.

    한낮에 활동하는 곤충이나 새들은 태양을 지표 삼아 이동을 하고 야행성 동물은 달빛을 지표로 생활을 한다. 그러나 불나비의 지표는 오직 현란한 불빛일 뿐이다. 조물주가 부여한 생태적인 습성은 거역할 수 없는 형벌이었을까. 짝짓기를 앞둔 성숙한 불나비들은 몇 킬로 밖의 불빛이 내뿜는 전류까지 예민하게 감지해내는 촉수를 가지고 있다. 불나비는 발열체를 몸으로 느끼면 사랑의 메시지로 착각을 해 단숨에 먼길을 날아와 불빛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사랑에 눈 먼 불나비들은 불빛 주위를 빙빙 돌며 정열적인 구애의 군무를 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닿고 싶은 욕망으로 촛불이나 알전구에 몸을 데인 채 죽음을 맞는 슬픈 운명이었다.

   어느 날 시골집의 헛간에서 부식된 남포 한 개를 발견했다. 남포의 유리에 잔금하나 없이 동전 크기로 떨어져 나간 구멍이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불나비 한 마리가 마른 은행잎 같은 형상으로 깊은 잠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아마 남폿불의 석유 냄새가 그리워 깨진 구멍 속으로 들어간 것이 출구를 찾지 못해 미라가 된 것 같았다. 그 죽음은 차라리 신성하게 보였다.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겨 고요히 숨진 여인처럼 느껴졌다. 등피를 해체하니 잠시 전까지 온전한 형상이었던 불나비가 바스라진 먼지로 풀풀 날리는 게 아닌가. 내가 아는 불나비 사랑은 대체로 그렇게 허무한 것이었다.

    플로베르의 소설 속의 비련의 주인공 '보바리 부인'인 엠마는 시골 여자로 어울리지 않게 빼어난 미모를 갖춘 매혹적인 여성이었다. 어린 나이에 사랑을 알지 못한 채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결혼의 굴레에 갇힌 엠마, 그녀는 나른하고 단순한 일상을 벗어나 위험한 불나비 사랑의 곡예를 하게 되었다.

    의사인 남편이 왕진을 떠나는 신 새벽이면 그녀는 어김없이 찬이슬을 밟으며 어디로 발길을 옮기곤 한다. 남의 눈을 피해야 하는 처지라서 미명 속에 개울을 건너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젖은 맨발로 연인의 집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제발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줘요'. 이슬에 젖은 눈으로 엠마가 연인에게 애원한다. 환상으로의 일탈을 꿈꾸던 보바리 부인. 그녀는 소망인 야반도주의 보따리를 결국 싸지 못하고 바람둥이 애인 루돌프의 배신에 파국적인 삶을 살다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거머리는 피를 빨아먹을 때 상처에 마취제를 분비하는 교묘한 수법을 쓴다고 한다. 사람들은 고통 없이 맹랑한 거머리에게 기습당하는 것이다. 불나비인들 어찌 제살 타는 아픔을 모르겠는가. 거머리의 처방전과 비슷한 것이리라. 불빛 또한 환각제 같아서 불나비의 감각을 마비시켜 황홀한 상태로 찰나의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보바리 부인의 생애중 전성기는 루돌프와 금단의 사랑이었다. 여인은 관능에 눈이 멀어 아낌없이 생을 덜어낸 것이다. 불나비도 불빛을 찾아가는 과정이 삶에서 절정이 아니었을까. 금지된 사랑도 거머리의 처방전 같은 것. 감언이설로 현혹시켰던 연인이 슬쩍 빠져나간 뒤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때가 늦은 것이다. 사랑의 묘약은 약효가 떨어지고 회한의 병만 남게 되는 것이리라.

    불나비들이 자동차의 불빛에 현혹되어 끝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무리들의 죽음을 확인하면서도 죽기로 안간힘을 쓰는 저 처절한 광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차창에 부딪쳐 낙화로 스러져도 도발적으로 달라붙는 불나비들, 불빛의 마력은 불나비에게 죽음을 초월한 사랑이 아니던가. 파닥파닥, 불꽃이 튈 듯 전율하는 사랑의 유희. 순간의 절정을 위해 거침없이 생의 날개를 벗어놓는 몽환적인 동작은 슬픔이라기보다 처연한 아름다움이었다.

   '제발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도망쳐줘요.' 차창 밖에서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어느 새 자동차는 불나비 떼를 따돌리고 허둥대며 달리고 있었다. 읍내로 가는 큰길로 접어든 것이다. 미안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니 차에서 떨어져 나간 불나비 떼들이 검푸른 하늘에 상형문자로 쓴 연서인 냥 부유하고 있었다. 아니, 점묘 풍으로 치밀하게 완성한 그림 한 장이었다. 보바리 부인은 그렇게 하얀 비단치마 자락을 펄럭이며 아물아물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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