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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담벼락에 걸린지도/ 김채영

에세이향기 2024. 6. 19. 09:42

담벼락에 걸린지도/   김채영

 

    깊은 밤 잠결에 들려오는 소리들은 다채로웠다. 바람이 문풍지를 한 차례 훑고 지나가면 뒤뜰의 나뭇가지에서 눈 뭉치 풀썩 내려앉는 소리, 밤새 댓돌 위 마른 나뭇잎 도란대는 소리며, 날씨가 조금 풀리기라도 한다면 고드름이 와지끈 부러져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이 나른한 잠 속에 섞여서 감미롭게 전해졌다.

그리고 유년의 잊을 수 없는 정겨운 소리 하나, 밤이면 윗목에 놓인 하얀 사기요강에다 오줌 누는 소리. 파란 붓꽃 그림의 사기요강에 오줌 떨어지는 소리는 콩나물시루에서 물 떨어지는 것처럼 청량했다. 그런 밤이면 조용하던 방안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세 살 터울인 작은오빠는 호기심 많은 나의 표적이었다. 그가 요강에서 뒤 돌아앉아 소변을 볼 때는 매우 궁금했다. 왜 남자는 여자와 다른 포즈를 취하고 오줌은 누는가. 그 정체성에 대해 심각해진 것은 다섯 살 무렵이었다.

    그가 잠깨어 요강 앞으로 갈 때면 나는 세심한 관찰을 위해 주변에 어슬렁거렸다. 작은오빠는 방향을 바꿔가며 은밀한 부위를 노출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그럴수록 나의 눈길은 더욱 집요해졌다. 당황한 그는 이리저리 피하려다 바지를 적셨으며 주먹이 내 머리위로 올라오기도 했다. 나는 쉽게 풀리지 않는 비밀에 대한 호기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작은오빠와 나의 인내력 싸움이었다. 어떤 날 그는 내가 잠든 지 확인하고서야 참았던 오줌을 누기 위해 윗목으로 갔다. 바지를 내리려던 그가 발치에 깔린 내 그림자를 보고는 이물스러움에 치를 떨며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어머니가 급히 쫓아오셨고 사태를 수습하기에 이른다.' 얘야, 고추를 그렇게 감추니까 더 궁금해서 그러잖아. 너도 네 동생 오줌 눌 때 보면 되는데 뭘 그렇게 속상해 하느냐' 그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울먹이면서 말했다.'계집아이들은 요강에 앉으면 안 보인단 말이에요. 나만 손해지요.'

    작은오빠의 울음에 나의 행위가 부끄러워졌고 그 뒤로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에 대해 흥미를 잃어갔다. 그는 유년기에 오줌싸개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수난을 겪었다. 날이 새면 담벼락에는 그가 그려놓은 지도가 내 걸리곤 했었다. 볕이 좋은 날이면 세탁이 가능하지만 겨울이나 우기에는 짧은 햇볕을 쪼이며 눅눅하던 이불이 말라갔다. 양초로 쓴 글씨나 그림이 촛불에 확연한 모습을 드러내듯이 이불이 마를수록 지도의 문양이 선명해졌다. 옥양목 호청의 이불에는 작은오빠가 그린 많은 나라가 담겨있었다. 동화 속에 등장하는 신비한 나라일 것이다.

      오줌싸개 습관을 고치려고 어머니는 밤에 작은오빠에게 과일을 먹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쓴 약초를 달여 먹이거나 민간에서 내려오는 미신적인 풍습을 섭렵하고 있었다. 호박오가리나 돼지코를 베어 목에 걸어주면 오줌을 싸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처방을 따르기도 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수많은 아침, 작은오빠의 소금을 얻기 위한 불명예스런 이웃집 방문이 이어졌다. 어느 겨울이었다. 매서운 날씨에 싸락눈까지 흩뿌리는데 그는 어머니에게 추궁을 당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고집을 부리며 소금을 얻으러 가지 않겠다고 완강히 버티는 그를 어머니가 모질게 밖으로 내모는 참이었다. 소금을 얻기 전에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면서. 추운 문밖으로 그가 떠밀리는 것을 보자 내 마음에 연민 같은 게 확 스쳐갔다. 지난날 요강머리에서 그를 귀찮게 했던 일이 떠올라서 남매로서의 인정이나 의리 같은 사명감이 생겨났던 모양이다. 자진해서 어머니에게 대신 소금을 얻어 오겠노라며 내 키보다 큰 키를 머리에 썼다. 어머니가 어이없다는 듯이 싱긋이 웃었다. 빈 바가지를 건네주면서 가야할 집을 일러주었다.

      그것은 함정이었다. 어머니와 소문난 욕쟁이 아주머니 사이에 어떤 언질이 있었던 것 같았다. 간단하게 소금을 얻어오면 될 줄 알았다. 아주머니는 소금을 내 몸에 끼얹고 연신 키를 부지깽이로 때리며 험한 욕설을 퍼부었다. 키를 때릴 때마다 빨간 엑스란 내복바람인 살갗까지 아팠다. 나는 키를 질질 끌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동네 아이들이 나와서 놀려댔다. 아주머니는 계속 따라오면서 지청구를 해댔는데, 머리 위에 소금인지 싸락눈인지 구분하기 힘들 것들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한데 오빠 대신 혼 줄을 당한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작은오빠가 오줌싸개로 갖은 구박을 다 받은 것은 나의 탓일 거라는 죄책감까지 들었다. 내가 요강머리를 지키는 통에 작은오빠는 그만 잠이 들었을 것이고 잠결에 실례하는 것이 습관이 돼버렸을 것 같았다.

     이불에 지도를 잘 그리던 작은오빠는 미술에 소질이 있었다. 그림뿐만 아니라 손에 뭔가를 조물닥거리면 신비한 조형물이 탄생했다. 그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휴지 조각조차 생명을 얻는듯했다. 담배 곽의 은박지는 은빛 백합으로 피어나거나 껌 종이는 새와 나비가 되었다. 나뒹구는 구슬을 모아서 공주들이 쓰는 화관을 만들어 주었고, 밀짚이나 풀대궁을 엮어서 만든 여치 집에서는 밤새 풀벌레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어미 잃은 맹금류 새끼를 휘파람으로 길 들이던 그는 새가 많이 자랐을 때에 붉은 리본을 달아서 날려주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붉은 리본을 다리에 맨 우람한 새매가 제 둥지가 있던 우리 집 호두나무를 찾은 경이로움도 작은오빠와의 기억 중에 하나이다.

      그는 화가 지망생이었지만 삶을 위해 꿈을 접어야했다. 가족들은 그가 화가가 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작은오빠는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을 택했고 오랫동안 디자인 분야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형제들에게나 가문의 기둥 같은 소임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물감을 잡은 것은 우리를 슬프게 했다. 시대가 어수선해지자 그의 사업도 조금씩 무너져갔고 번민과 집착을 잊기 위해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려야했었다. 작은오빠는 국전에서 입상을 했고 화가가 되었다. 혹독한 시간을 살아낸 흔적이었다.

     평소에 술자리에서 의례 '꿈엔들 잊힐 리야'를 열창하던 작은오빠는 신만이 아는 패스워드를 미리 읽어낸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고향과 살붙이를 끔찍이 사랑했지만 습작기에 그린 그림을 형제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쫓기듯 이민의 길에 올랐다. 나라 밖을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나는 그가 떠난 나라를 잘 알지 못한다. 허나 어릴 적 그가 무수히 그렸던 담벼락에 내 걸린 지도 중에 들어있는 정겨운 나라일거라고 믿는다. 작은오빠의 지도 속에는 우리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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