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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있는 집/김채영

에세이향기 2024. 6. 19. 09:46

  마루가 있는 집/      김채영

 

    창을 열면 언제나 안채의 마루가 눈에 가득 찼다. 한낮의 햇살이 털실처럼 따사롭게 내려앉은 마루가 쉬었다 가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마루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그 곳에서 보송보송한 빨래를 개고 싶고, 윤이 나게 마루를 닦아 반가운 손님을 맞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다 집장만이 내게 거리가 먼 현실로 느껴질 때, 차라리 마루는 도도하게 높아 보이기까지 했다.

    단칸셋방에서 오글오글 네 식구가 모여 살았다. 늦은 밤 예고 없이 손님이라도 오는 날이면, 남루한 이불이나 옷가지를 장롱 속에 꼭꼭 숨기느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그나마 어려운 손님이면 슬쩍 자리를 빠져 나와 하릴없이 부엌을 서성거려야 했다. 부엌 유리창에서도 안집 마루가 훤히 보였다. 아이들이 시원하게 마루에 누워 숙제를 하거나, 레이스를 짜는 주부의 손길이 그렇게 평화롭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들의 안식을 훔쳐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금세 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껏 마루가 있는 집을 장만하지 못하고 있다. 마당조차 없는 아파트생활을 하면서 여전히 마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유년 시절, 나는 마루가 있는 시골의 토담집에서 살았다. 마루는 이웃이나 행인에게도 항상 열린 공간이었다. 주인 없는 집에 손님이 온다 해도 여유 있게 마루에 앉아 기다리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장사치들도 지나가다 으레 마루에서 쉬어 갔다. 방물장수의 보따리는 볼거리가 풍성한 작은 장터였다. 얼레빗과 참빗, 손거울이나 머리핀, 화장품과 가락지, 고운 색실 등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흥미로운 것은 이웃마을을 돌며 주워 담은 이야기 보따리였다.

애초에 물건을 사려던 어머니도 아니고, 장사꾼도 다리품을 팔면 그만이었다. 그런데도 장사꾼의 입담에 반한 어머니는 간식을 내왔으며, 곡식으로 물건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 거래가 이뤄진 것도 결국은 마루의 덕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체부가 밥시간에 오면 한술 부담 없이 뜨고 가는 곳도 마루였다. 어머니가 장에서 돌아오실 때, 급하게 장바구니를 열어보며 즐거움을 찾던 마루. 새로 사온 운동화를 맨 처음 신어보는 곳도 언제나 마루였다.

    처마 밑에는 제비들의 집이 있었다. 제비가 먹이를 물어오면, 새끼들이 서로 먼저 받아먹으려고 개나리 꽃잎 같은 샛노란 주둥이를 벌리던 것은 흔하게 보는 풍경이었다. 깨끗한 마루에 오물을 흘려도 제비를 탓하는 일이 없는 게 마루를 가진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이었다. 마루 밑은 신발을 놓아두거나, 연장을 보관했으며, 강아지가 느른하게 낮잠을 자는 장소였다.

    마루에 대한 느낌은 정말 좋았다. 여러 조각의 평면체가 하나를 이룬 질서와 협동심. 생활의 때와 함께 오랜 세월을 길들여온 누런 목질의 광택이 좋았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각인 되는 나무의 나이테가 이룬 여러 가지 무늬의 짜임새들이 마루 한 칸에 모두 담겨 있었다.

    한 걸음씩 걸어갈 때마다 삐걱거리던 독특한 나무 울림소리-분명 피아노 건반처럼 경쾌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체중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되는 마루 밟는 소리는 타악기의 음을 닮아 있었다. 통통통! 아이들이 빠르게 뛰어다닐 때는 높은 음 자리, 어른들이 걸어갈 때 낮은 음 자리. 손님이 올 때면 요란한 소리를 내는 마루의 합주 소리가 정겨웠다.

   거울처럼 말갛게 닦인 마루를 보면, 그 집안 주부의 정갈함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결 고운 모시 한복을 입은 청아한 여인이 금방이라도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마루는 너무 깨끗해서 발 들여놓기 조심스러운 그런 마루가 아니다. 흙이 다소 밟히더라도 편안한, 시야가 확 트인 시골 마루가 더욱 정감이 간다. 이를테면 유년시절의 마루는 내가 원하는 마루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시댁의 마루는 날씨나 계절에 따라 여러 장의 풍경화를 만들어냈다. 허술한 마루문은 늘 열려 있었으며, 두 개의 문짝 대신 바깥 풍경이 성큼 그 자리에 들어와 있었다. 밤마다 달과 별들이 놀다 갔다. 빗방울, 낙엽, 눈보라까지 스스럼없이 뛰어들었던 시골집의 마루였다. 마루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연도 골고루 드나들 수 있는 공유공간이었던 것이다. 마루 밑은 깊어서 여름이면 서늘하고 겨울이면 보온이 잘돼 호박이나 과일, 각종 씨앗을 보관하는 장소였다.

    지난날, 시댁의 마루는 그 얼마나 분주했던가. 시할머니, 시어머니, 형님과 내가 대식구의 점심으로 칼국수를 밀고 썰던 곳. 때로는 별식으로 감자떡이나 만두를 빚기도 했으니 마루는 반 주방 구실을 한 셈이다. 또한 그곳은 안방과 건넌방, 부엌을 연결해 주었으니 말하자면 인체에서 심장처럼 중요한 곳이었다. 늦은 밤 삼 십 촉 알전구를 밝혀놓고 마루에서 풀 먹인 빨래를 손질하던 시할머니의 다듬이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아릿하게 살아나는 듯하다.

    문명이란 전염병 같은 것이 아닐까. 이제는 마루가 사라지고 있다. 내가 동경하던 주택가의 마루들은 모두 보일러가 들어오는 응접실로 변해버렸다. 어디를 가도 마루는 찾아보기가 힘든 실정이다.

    시골의 어느 마을도 예전 같지가 않다. 마을마다 주택개량으로 마루는 사라지고, 단추만 누르면 쩔쩔 끓는 완전한 내부적 공간으로 흡수되었다. 그나마 단출한 식구들이 모두 학교나 일터로 나가고, 빈집에는 굳게 문이 잠겨있다. 반가운 손님이 불시에 찾아와도 기다릴 곳이 없게 된 것이다.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을 줄 알았던 시댁의 마루까지 몇 트럭분량의 흙으로 메워져 예전 모습이 아니다. 고급 장판지가 깔린 응접실로 변해있다. 허름한 문짝을 떼어내고 이중 철재 새시에 화려한 커튼까지 달아놓아 마루의 흔적은 아쉽게도 찾아 볼 수 없다. 도시의 골목마다 한 두 개씩 놓여 이웃 간의 만남의 장소였던 들마루마저 이제는 간 곳 없다. 구멍가게의 상업용 들마루만이 한가롭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어디를 가야 마루다운 마루를 만날 수 있을까. 오랜 날 내가 그리던 마루는 영원히 꿈으로 머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소망하던 것은 눈에 보이는 단순한 마루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한 치의 여유도 없는 가난한 생활에서 끊임없이 찾던 출구였던 것이다. 요즘 잡념이 많아진 것 같다. 아무래도 깨끗한 걸레 하나 찾아 먼지가 자욱한 내면의 마루를 말갛게 닦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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