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수필

위험한 곡예/ 김채영

에세이향기 2024. 6. 19. 09:55

      위험한  곡예/ 김채영

  

 

  실내의 작은 연못에서 금붕어와 비단잉어들이 헤엄을 치며 놀고 있다. 아는 이가 경영하는 음식점인 이곳은 중앙에 분수와 화려한 조명으로 멋을 낸 연못이 볼거리였다. 크고 작은 섬돌을 괴어 만든 연못가에는 보기 좋게 자라난 화초들을 배열해서 풀숲 같은 자연미를 살려주었다. 적당한 먹이와 환상적인 조명과 분위기 있는 음악, 관상용 물고기들의 호사스러운 삶이 아닐 수 없었다. 식물에게 자연의 소리를 녹음한 그린 음악을 들려줌으로서 성장을 촉진시킨다는데 물고기들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녹아있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살고 있었다.

    비단잉어와 금붕어가 뒤섞여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루는 평온한 연못 .그 안에서 그것들은 답답한지 몸을 푸는 듯 했다. 이곳에는 한동안 야생붕어와 함께 물고기들이 키워지기도 했다. 야생붕어가 물위로 반짝 튕겨졌다 수면에 스러지는 활기찬 동작을 실내의 연못에서 보았다. 그런데 간혹 금붕어들도 수면 위로 종종 대담하게 튀어 올랐다. 간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점프를 잘못하여 물 밖으로 나갔던 모양이었다. 야생물고기의 동작은 습관이며, 좁은 공간에 적응하지 못하여 출구를 찾는 몸부림일수도 있다. 무모한 곡예를 즐기는 금붕어들의 착지가 왠지 불안했다.

    거리를 잘못 가늠하여 이탈한 물고기는 다시는 물속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무언가에 뜯겨 뼈만 앙상하게 연못주위에 흩어진 채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음식점에서 터를 잡은 지붕 쥐들의 소행인 것 같았다. 음식 찌꺼기로 배를 채우던 지붕 쥐들은 색다른 비린내가 풍기는 연못주변을 서성이는 모양이다. 이리저리 배회를 해도 견물생심인 것을. 헤엄도 치지 못하면서 연못가 부근에서 시간을 죽이는 지붕 쥐가 한심하게 여겨질 일이다. 그러나 마당을 쓸다가 우연히 동전을 줍는 행운도 따른다. 힘을 주체 못해 자랑하던 물고기들이 간혹 물위를 너무 높이 뛰는 바람에 입을 벌리고 기다리던 나그네의 입에 떨어지는 홍시 꼴이 되곤 했다.

어느 날 저녁에 일하는 아이가 연못 청소를 하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어젯밤에도 물고기가 죽었다는 얘기 같았는데 주인이 침착하게 물었다.

“그래 몇 마리가 죽었니?”

“한 마리요. 아주 앙상하게 뼈만 남았어요. 그런데 이번엔 붕어가 죽은 게 아니라 붕어에게 쥐가 뜯어 먹혔어요.”

“얼른 뼈를 꺼내서 버리고 소독한 뒤 깨끗한 물로 갈아 넣어라.”

    별일도 아닌 것을 수선을 떤다는 듯 시니컬한 주인의 대답이었다. 물고기들이 물밖에 전복되어 쥐의 먹이가 된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쥐들도 물고기 비린내를 맡으며 호시탐탐 주변을 서성이다가 어둠 속에서 허방을 딛고 종종 물속에 추락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관상용 물고기와 쥐 , 대칭을 이루는 그것들의 삶은 언제부터인가 생존을 위협하는 천적이 되어 있었다.

    시궁쥐가 능숙한 유영으로 바다를 건너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만약 연못 근처의 침입자가 시궁쥐였다면 연못의 물고기가 남아있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다행이 쥐들에게도 영역은 엄밀하게 경계가 구분되어 있다. 수영을 익히지 못한 지붕 쥐가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순간 물고기들은 본능의 냄새를 맡은 것인지 모른다.

금붕어가 쥐를 잡아먹는다면 믿지 않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환경에 의해 불변하는 것이 어디 있으랴. 편리한 쪽으로 길들여지는 것은 동식물의 살아남는 수단이며 치열한 삶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애완 토끼를 기른 적이 있었다. 사료나 풀만 먹는다던 녀석들은 잡식성이었다. 아이들처럼 천진하게 사탕을 핥아먹었으며, 아이스크림이나 햄, 소시지를 좋아했다. 끝없는 식욕으로 애완 토끼의 몸은 집토끼처럼 불어났다. 아파트에서 동물 키우는 것을 규제한 탓에 안타깝게도 녀석들을 거둘 수 없게 되자 , 토끼장이 있는 친정 집 주택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미 관리를 잘못한 탓에 애완 토끼가 집토끼로 전락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환경에 걸맞게 변화되는 일은 사람도 예외가 아닐 수 없다. 지독한 실연으로 우울증에 빠져 팔자에도 없는 걸인생활을 한 이가 있다. 몇 번 시도했던 자살이 미수로 끝나자 삶과 죽음 중 어느 것도 택할 수 없었던 사나이의 얘기다. 그는 어느 이국땅에서 불법체류자가 되어 쓰레기통을 뒤지며 한동안 모진 목숨을 연명했다고 한다. 부패한 음식을 먹으면 병이 나지 않느냐고 반문하던 내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방식이 없다고 말했다. 죽을 방법이 없어 주워 먹었던 것은 악취가 진동하는 음식 쓰레기였다. 처음에는 장에서 그것을 거부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면역성이 생겨 소화를 거뜬히 해낼 수가 있었다. 열악한 조건 앞에서 그의 육신은 들개나 들고양이처럼 야생화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지금 말끔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의 생에 있어 퇴행은 숨고르기 같은 과정이었을 것이다.

    속없이 큰 순한 눈에 꼬리를 살랑거리고 다니는 금붕어일지라도 원초적 야성은 살아 있었다. 녀석들의 조상도 따지고 보면 개울이나 연못에서 힘차게 유영하는 붕어나 잉어였을 것이다. 드라이한 사료와는 달리 기름진 먹이로 연못의 식솔들이 성찬의 밤을 보내기에 충분했을 것 같다. 연못주변은 참으로 평화스럽다. 그러나 밤이 되면 때때로 고압선 같은 긴장이 흐를 것이다.

     영리한 쥐들은 인간이 만든 미로들을 손바닥 안에 꿰고 있다. 통로를 봉쇄하고 튼튼한 자물쇠를 채워도 쥐들은 교묘하게 출구를 만든다. 이 밤에도 어쩌다 연못을 이탈한 물고기가 바닥에 떨어진다면 감쪽같이 사라지거나 단숨에 명줄을 놓을 것이다. 물고기에게 삶의 터전인 연못은 쥐에게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이며 쥐가 내딛는 바닥은 물고기에게 막다른 골목이다.

     쥐들은 어디 바닥에 떨어진 금붕어가 없나 연못가를 서성일 것이고, 금붕어는 물속으로 추락하는 눈먼 쥐들을 은근히 기다릴 것이다. 쥐도 금붕어도 서로를 탐닉하지 않고 충분히 살 여력이 있다. 쥐에게는 지천인 음식쓰레기가 어렵지 않은 방법으로 삶을 지탱해주고 물고기는 정확한 식사시간에 양질의 사료가 배달된다. 배고플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그 것들이 숨죽이며 상대방의 추락을 기다리는 것은 모험이나 실존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복권을 사서 긁거나 꿈속에 고래를 포획하는 것 같은 일인지 모른다. 사람들에게 밥만큼이나 꿈이 소중하듯이 말이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他人의 거울 /김채영  (0) 2024.06.19
남빛 치마의 추억/ 김채영  (0) 2024.06.19
지킬수 없었던 약속 /김채영  (0) 2024.06.19
마루가 있는 집/김채영  (2) 2024.06.19
담벼락에 걸린지도/ 김채영  (1) 2024.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