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가 가정이 아닌 나라를 지키기 위한 도구로 쓰인 적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부녀자들은 앞치마로 돌을 날라 군사들을 도왔다. 행주대첩의 그 유명한 설화를 남긴 앞치마는 그 곳의 지명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불려졌다. 여인의 치마폭에는 이렇듯 여러 가지 삶의 그림들이 채색되어 있다. 멋과 개성, 가정의 평화와 부모 자식 간의 애정, 나라 사랑으로 통하는 길도 모두 치마폭에 담겨 있는 것이다.
언젠가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여인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조사한 바로 우리나라 교과서에 삽입된 어머니 상은 한결같이 앞치마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형 주부는 가사 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칭찬 비슷한 비난이었다. 그는 앞치마를 입은 여성의 그림을 보며 눈이 파란 나라의 가정부나 하녀를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선진국일수록 주부들은 자연히 밖으로 나도는 시간이 많다. 일선으로 나간 주부 대신 온 가족이 가사를 분담하거나, 대부분의 가정 일을 남에게 맡기는 사회에서 그는 자랐던 것이다. 이방인의 눈에 앞치마를 두른 우리 나라 주부들의 모습이 생소한 게 당연했다. 그러나 그가 교과서의 그림을 논하기 전에 알지 못하는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가 있다. 안타깝게도 그는 어머니의 앞치마가 주는 따뜻한 의미를 아직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장롱 정리하는 날을 좋아했다. 어머니의 고릿장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어머니가 옷을 죄다 꺼내 차곡차곡 정리할 때면 고운 한복 빛깔에 취해버릴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의 한복 한 벌 한 벌의 색깔과 무늬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으며 놀았다. 개나리, 진달래, 봉숭아, 장미······. 어머니 한복에서는 꽃 냄새가 나는 듯했다. 어머니는 가끔씩 외출하실 때 옷고름 대신 무지갯빛 부로우치로 멋을 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어른이 되면 꼭 어머니의 치마를 물려받고 싶었다.
어머니의 치마는 단순한 치마가 아니라 둥지였다. 그 아늑한 둥지에 안겨 오빠들과 내가 자랐고 동생에게 물려졌다. 어머니의 치마는 요람이었다. 무릎을 베고 누우면 자장가 박자에 맞춰 살강살강 흔들리며 꿈길로 인도해주던 요람. 길가다 무서운 개를 만났을 때나, 거센 눈보라가 칠 때 어머니의 치마 뒤에 숨으면 어떤 외부의 침입이라도 막아낼 수 있는 든든한 성이 되었다. 동생이 차지하고도 남은 또 하나의 넉넉한 손, 어머니의 치마꼬리는 수시로 잡을 수 있는 따스한 손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옷 중에 남빛 치마와 옥빛 저고리를 가장 좋아했다. 어린 나의 눈에 남빛 치마는 강물처럼 넓고 푸르게 출렁거렸다. 어머니의 남빛 양단치마는 금박으로 문양을 입히거나, 자수를 놓은 것이 아니라, 섬유에 직접 은사로 자잘한 꽃무늬를 직조한 것이었다. 짙은 남색 원단에 결이 고운 은사와의 조화는 강물에 내려앉은 찬란한 햇빛이거나, 검푸른 밤하늘의 빛나는 잔별과 같았다.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어머니는 남빛치마를 즐겨 입으셨다. 그 즈음의 흑백 사진이 빛바랜 채 몇 장 남아있는데, 가족사진 속의 어머니는 남빛 치마와 옥빛 저고리를 입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십 전의 젊은 날 홀로된 어머니는 하얀 소복을 입었다. 그 무렵 새벽녘이면 언제나 어머니의 흐느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한창 철부지였지만 잠결에 간간이 들리는 젖은 목소리에 내 가슴은 사정없이 무너져 내렸다. 어머니는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회색 빛 어둠 속에서 넋을 놓고 울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엄마를 부르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 순간 이미 어머니에게 자식들이 들어앉을 치마는 없었는지 모른다. 왠지 선뜻 범접할 수 없는 낯선 치마로 나와 어머니의 관계는 아득히 멀어진 느낌이었다. 그 후 어머니는 우아하게 치마를 입을 필요성이나 여유가 없어졌다. 억척스런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 때가 쉽게 타지 않는 조잡한 무늬의 나일론 치마를 입으셨다. 그 때 어머니의 치마는 양육을 위한 치마가 아니라 억센 노동을 위한 치마였다.
어머니는 이른 봄철이면 병아리를 팔았고, 여름날에는 과일 노점상을 했다. 찬바람이 날 무렵이면 인삼 보따리 하나를 머리에 이고 훌쩍 장삿길을 떠나 며칠씩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급하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지극히 사춘기다운 상상력으로 몸을 떨게 했다. 가정을 지키는 깃발인 냥 펄럭이며 온갖 세파에 뛰어들었던 어머니의 넓은 나일론 치마를 어린 내가 알 리 없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치마의 정서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어머니 품에 포근히 안겨 모유를 먹던 일은 이미 전설처럼 아득한 일이 돼버렸다. 어린아이들은 보행기나 유모차에 안겨 우유를 먹고, 기저귀를 빼자마자 셔틀버스에 실려 어린이집으로 간다. 긴치마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짧아졌으니 더 이상 가정에는 아이들을 품어줄 치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글을 배우기전에 영어를 배우고, 부모의 정을 알기 전에 친구와의 경쟁을 배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치마가 주는 애정의 온도를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날 문득 어머니의 서랍장을 열어 보았다. 그 곳에는 어린 날의 꿈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 유년을 온통 황홀하게 했던 한복들은 이미 고운 빛이 모두 사라진 어머니를 꼭 닮아 있었다. 오랜 세월 어머니의 옷들은 장롱 속에서 어머니와 함께 초췌한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 한복들은 곡절 많은 한 시대를 넘긴 초라한 모양새로 탈색되었지만 내 가슴속에 남아있는 어머니의 치마는 변함없이 아름답다.
칠순의 어머니는 이제 치마를 입지 않으신다. 젊은 날의 고생이 병이 됐는지 심하게 저는 다리로는 치마가 거추장스럽기 때문이다. 허물인 냥 치마를 훌훌 벗고 간편한 신식 바지만 고집하신다. 어머니가 지나칠 때마다 바람을 일으키며 스적스적 치마 끌리던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도 눈앞에 그 옛날 어머니의 치마가 선연하게 펼쳐진다. 강물 같은 남빛의 풍요로운 양감과 은사 무늬의 섬세한 파동. 어린 날 소망과는 달리 나는 어머니의 남빛 치마를 영원히 입지 못할 것이다.
내 인생의 치마는 아이들의 기억 속에 어떤 빛으로 채색되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의 치마만큼 넓고 포근하지는 않겠지만 내게도 아이들이 쉴 수 있는 뜨락 같은 치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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