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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사인용 식탁/ 김채영

에세이향기 2024. 6. 19. 04:09

 

                                                            사인용 식탁/  김채영

 

 

 

   식탁 하나가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잠자리에 누우면 아담한 사인용 식탁이 떠올랐고, 그 것을 중심으로 머릿속에 구체적인 그림이 활발하게 그려지곤 했다. 식탁에 우선 빨간 타탄무늬 식탁보를 깔고 싶었다.

  그 생각 속에서 수없이 갓 지은 밥과 노릇하게 구워진 생선, 향기로운 나물 반찬을 꽃무늬 그릇에 담아 상을 차렸다. 식탁 중앙에는 애호박과 두부, 조갯살이 달싹거리면서 달궈진 된장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안온한 시간. 내 옆자리에는 남편이 있고 아들, 딸과 함께 정담을 나누며 식사하는 장면까지 상상하면 뜻 모를 감동에 눈물이 났다. 그 것은 식탁이라는 물건을 처음 본 순간부터 매료되어, 수차례 수정 끝에 완성된 내 기준으로 가장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었다. 편모슬하에서 유년을 그늘지게 보낸 탓인지 나는 어떤 지독한 결핍에 굶주려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시골에 사는 외삼촌댁의 재래식 부엌 한쪽에 식탁이 놓여졌다. 그에게는 노모와 아내, 열 명의 아이들이 있었기에 식구 수를 헤아린다면 식탁의 크기를 짐작하고 남을 것이다. 외삼촌이 손수 나무를 베어다가 견고하게 제작한 것이었다. 식탁의 나무 조각마다 각기 다른 나뭇결은 오묘했다. 물무늬 같은가 하면 중첩된 산봉우리의 불규칙한 흐름 같기도 하고, 비가 그리는 동그라미 같기도 했다.

  외삼촌은 선해 보이는 얼굴에 키가 큰 남자였다. 그가 식탁의 가운데에 자리 잡은 모습은 어느 평화스러운 작은 나라의 군주 같이 믿음직스러웠다. 싱그러운 나무 냄새가 가시지 않는 식탁, 부엌문까지 성큼 들어와 피어있는 다홍빛 일년초들, 대화의 행간에 드나드는 동물들의 울음소리, 그 평온한 풍경을 나는 잊지 못한다.

자라면서 나는 사색적인 아이가 되어 더욱 고독해졌고, 가족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온화하게 지켜보던 외삼촌의 미소가 절절한 그리움으로 남았다. 훗날 가정을 이루면 식탁부터 사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세월이 흘러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나와 다르게 여러 명의 형제가 있었고, 양친부모와 조부모까지 계신 가정에서 반듯하게 자란 청년이었다. 거기에다 용모가 준수했고 여러 방면에 재주가 많았으며, 쌀 한가마니도 번쩍 들만큼 체력까지 좋아서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에서조차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이 듬직했다. 유년시절부터 집요하게 외삼촌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허상을 쫓던 그 시린 빈자리를 그가 대신해서 채워줄 것을 확신했다. 우린 서둘러 결혼을 했고 두 남매를 낳았다. 수없이 셋방을 전전한 끝에 어렵게 집장만을 했다. 식탁에 빨간 타탄 무늬의 식탁보를 깔아놓으면서 세상에 부러운 것 하나도 없는 행복한 여자가 되어있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나이가 들어갔으며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갔다.

  술을 즐기는 남편의 늦은 귀가로 저녁 시간을 같이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 남편은 공간을 넓게 쓰고 싶은지 식탁을 벽 쪽으로 붙였다. 따라서 의자 하나는 이방인처럼 집안에서 거추장스러운 천덕꾸러기로 떠돌았다. 식탁에서 의자 하나를 빼내는 순간부터 가정은 헐겁게 겉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도 자리가 부족해서 내가 뒤에 식사를 했다. 허구한 날 늦은 밤에나 들어오는 남편에게 아침 밥상머리부터 잔소리 하다 말다툼을 하던 일도 드물게 되었다. 대화의 내용도 한정되었으며 서로에게 무심해갔지만 일신은 편했다. 대립에서 체념 쪽으로 기운 것이 성숙한 연륜에서 오는 줄 알았다.

  외삼촌처럼 온유하게 늙어갈 줄 알았던 남편은 오십이 갓 넘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버렸다. 주변사람에게 보증을 서준 것이 잘못되어 가산을 탕진한 채 통한의 세월을 보내면서 병을 얻어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작년 사월 , 장례가 끝나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임자 잃은 물건을 처분하는 것이었다. 그가 아끼던 옷을 골라 태우고 난 뒤의 남은 옷가지며 골프채, 낚시도구와 온갖 서류 뭉치, 가방과 구두들……. 한사람이 살다간 흔적을 끄집어내니 그렇게 거대한줄 몰랐다.

  더 이상 없는 사람의 존재감이 무서웠고 , 혼자만이 편하겠다고 먼저 떠난 배신감에 화가 났다. 헛된 야망에 밖으로 돌던 그와 불화했던 시간이 원망스러워서 , 남아있는 연민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 남편의 물건을 재활용수거함에 넣고 또 넣었다. 마대자루에 담긴 무거운 짐을 질질 끌고 도둑처럼 남몰래 다세대 주택의 계단을 내려가면서 남루한 생애의 지리멸렬함에 울컥해졌다.

  그러한 밤은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치듯 어두운 거리를 빠져나왔다. 한사람의 세상을 거리에 내팽개친다는 것이 금지된 행위를 하는 것 같아 두려웠다. 그의 물건만 버리는 게 미안해서 잘 입지 않는 내 옷가지와 아이들의 물건도 골라서 버리고 , 나의 유일한 재산이었던 그 많은 책들도 고물상을 불러서 가져가라고 했다.

아들은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기에 딸과 단둘이 조그만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데 많은 살림살이가 버거웠다. 그 핑계로 멀쩡한 장롱이나 책상, 책장이나 진열장 따위를 미친 듯이 버렸다. 오직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어서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사 하면서 인부들이 버릴 물건을 끌어내는데 식탁을 들고 나갈 때 감당할 수 없는 회한으로 눈물이 솟구쳤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미안해……. 마음속으로 울부짖었지만 앞서 떠난 남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남편은 몇 년 사이 불의의 사고로 형을 잃고, 양친부모와 동생마저 돌연한 병사로 떠나보내야 했다. 울분과 고통을 홀로 삭여야 했던 그는 술자리를 사양하지 않았고 , 취미생활을 한다고 밖으로 나돌았다. 심지어는 사업을 한다고 잘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었다. 그 때 내가 조금만 더 현명해서 그 아픔을 감싸 안았더라면, 식탁을 안쪽으로 돌려놓고 남편을 따뜻하게 집안에 불러들였더라면 , 아마도 가족들 모르게 남에게 보증을 서는 실수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그 식탁은 낡겠지만 우리 가족은 초연하게 깊어진 모습으로 그 곳에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될 것을 단 한 번도 의심치 않았다. 평범하기조차 한 나의 바람은 이룰 수 없는 소망이었을까.

얼마 전, 나는 분주하게 음식 장만을 하고 있었다. 조기를 굽고 쇠고기국도 한 솥 끓이고, 모듬전을 부치면서 갖은 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잡채도 무쳤다. 그리하여 정성껏 상을 차리고 아이들과 함께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꿈을 꾸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리고 남편이 돌아왔다. 꿈이란 것이 대체적으로 모호해서 남편이 어디 먼 곳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는 것쯤으로만 알고 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는 그의 손을 덥석 잡고 맞이했고 단란한 분위기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사인용 식탁, 그 것은 어느 사이에 우리들의 마음에 옮겨있어서 꿈속에서나마 온가족이 재회를 하고, 남편과 내가 아직도 풀지 못한 앙금과 상처들에게 화해할 기회를 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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