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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굽고 싶다 /김채영

에세이향기 2024. 6. 19. 04:07

고등어를 굽고 싶다 /김채영

 

 

 

                                                                                

   창가에 서면 싱그러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집에서 살았다. 맑은 날의 바다는 은빛 거울처럼 백사장 위에 고요하게 떠올라 있었다. 그런 날이면 남편은 바다로 가기 위해 부지런히 짐을 챙겼다. 그는 낚시를 떠나기 전 반드시 베란다에 나가 바다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날의 날씨 여부를 판단하곤 했다.

  가을이면 하늘과 맞닿은 바다 또한 감청색으로 물든다. 그즈음 바닷가 주변은 어떤 생기로 술렁거리곤 한다. 찬바람이 불면 남해안으로부터 반가운 손님인 고등어 떼들이 따스한 남쪽바다를 찾아오는 것이다. 고등어 주요어장의 하나인 울산 방어진은 내가 한동안 살았던 곳이었다. 한철 나그네 고기인 고등어는 이듬해 봄이 되어 북상할 때까지 비교적 포근한 방어진에서 겨울을 보내게 된다. 저렴한 가격과 넉넉한 살집, 바다의 보리라고 불릴 정도로 고등어는 영양가가 풍부하여 서민의 밥상에서 환영받는 물고기이다. 고등어의 물결무늬 푸른 등과 은백색 배 부분의 조화는 바다의 표면과 이면의 축소판처럼 신비스럽기조차 하다.

  나는 고등어 철이 되면 괜스레 흥이 나서 남편을 따라 낚시터를 찾았다. 갯바위나 방파제에 넘치는 활기로 덩달아 마음이 달떴다. 남편은 낚시꾼들 틈에서 암벽을 타듯 아슬아슬하게 갯바위를 옮겨 다니며 낚시를 했다. 

   갓 잡아 올린 고등어는 씨알이 굵고 살이 탱탱하며 무지갯빛 광채가 눈부셨다. 고등어는 다혈질이어서 잡히는 순간부터 탈출을 위한 몸부림은 목숨을 걸 정도로 필사적이다. 양동이 안에서 팔딱팔딱 튀어 오르다가 머리를 수없이 부딪쳐서 결국 기운을 소진하고 제풀에 숨이 끊어진다. 다른 물고기들은 느긋하게 산채로 집에 가져와서 회를 뜨거나 매운탕을 끓이는데 녀석은 여간 오만하고 도도한 게 아니었다. 남편은 번개탄 위에 석쇠를 올려놓고 즉석으로 고등어구이를 하곤 했는데 술안주와 밥반찬으로 그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추광성이라서 고등어 낚시는 이슥한 밤이 되면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고등어를 유인하는 야광미끼들이 물살에 일렁거릴 때는 푸른 잔별이 떠있는 것 같았다. 마치 고흐의 그림‘ 론강의 별밤’이 연상되는 그윽한 풍경이었다. 매혹적인 푸른 불빛을 고등어가 덥석 물면 손맛을 느낀 낚시꾼들이 분주해졌다. 고등어의 입질을 수면에 흔들리는 미끼의 불빛으로 느끼면서 구경꾼인 나조차 가슴이 뛰었다.

  바다에서 돌아올 때마다 남편의 낚시용 아이스박스에는 고등어로 가득 차 있었다. 이웃에게 몇 마리씩 나눠주고도 넉넉한 고등어를 굽기도 하고 조림도 하며 어죽도 끓였다. 나머지는 자반으로 만들어 저장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고등어 철에는 반찬이 없어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김치와 된장이 있는 우리네 소박한 식탁에는 고등어 특유 진한 비린 맛에 보태진 기름기의 감칠맛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십 여 년의 바닷가 마을의 생활을 접고 우리는 내륙지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가을이면 해초 향기가 가득한 마을이 그리워지곤 한다. 눈을 감으면 반짝이는 방추형 물고기의 힘찬 유영이 떠오르고, 그 고등어 떼들은 싱싱한 비린내를 풍기며 감청색 바다와 함께 나의 머리맡에서 퍼덕이다 꿈속까지 따라오는 것이다.

   

   지난날 어머니는 고등어 행상을 했다. 신 새벽에 나갔다가 온몸에 생선 냄새를 묻히고 돌아오셨다. 중학교 시절, 수업을 파한 후 친구들과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하필 머리에 생선 함지를 무겁게 인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나일론 몸빼 차림에 낡은 고무신을 끌고 집집마다 돌면서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그날따라 어머니의 모습이 후줄근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친구들에게 들킬까봐 등을 돌렸고, 어머니는 타인처럼 스쳐갔다. 그날 팥 빙수를 먹었는데 얼음 조각이 생선가시처럼 부담스럽게 목안으로 넘어갔다.

   해가 짧아진 가을 저녁이면 어머니는 팔다 남은 고등어가 담긴 양은함지를 옆에 끼고 잰걸음으로 돌아오셨다. 연탄화덕을 마당에 옮겨놓고 석쇠에 가지런히 올린 고등어가 노릇하게 익어 가는 풍경은 너무도 평온했었다. 국화가 탐스럽게 피어난 마당가에서 풀벌레가 나직하게 울었고, 고등어를 굽는 어머니 머리위로 삼십 촉 알전구는 설익은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연탄화덕 위에서 굵은 소금과 고등어의 기름이 튀어 화려한 불꽃을 일으켰다. 그즈음이면 고소한 냄새와 함께 고등어 굽는 연기가 깃발처럼 펄럭이면서 밤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 조촐한 밥상이 들마루에 차려질 무렵 검푸른 밤하늘에는 별이 하나둘 떠있었다.

  “ 가을 고등어는 얼마나 맛이 좋은지 예로부터 며느리에게도 주지 않았단다.”

  어머니가 자주 하던 말이다. 어머니는 자식들 밥숟가락에 돌아가며 기름진 살점을 발라 얹어주시곤 당신의 몫으로 머리를 끌어당겼다. 고등어는 머리가 가장 진미라며 젓가락으로 적확하게 살과 뼈를 분해했다. 어머니는 조립된 물건의 나사를 풀듯 정교한 손놀림으로 작은 살 점 하나도 가시에 묻혀 허투루 손실하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가 일찍이 돌아가시자 젊은 날부터 혼자 몸으로 자식들을 키우며 체득한 이력이다.

   나는 아직도 내밀한 구조의 고등어 머리를 해체하는 패스워드를 알지 못한다. 날카로운 가시와 수많은 잔뼈를 들춰서 살점을 찾아내는 경이로운 작업은 어머니 대에서 끝날 듯싶다. 나는 고등어 맛을 알려면 한참 멀었다.

   가을 저녁이면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하도록 불을 피워 고등어를 굽고 싶다. 지글지글 연한 살을 태우면서 하늘로 오르는 연기조차 그립다. 고등어구이는 역시 온 가족들이 정겹게 둘러앉아 먹어야 제 맛이다.

   남쪽바다로 떠날 것인가. 고등어를 구울 것인가. 가을 바다처럼 감청색으로 물든 하늘을 보면서 잠시 방황을 한다. 그러나 남쪽바다에서 고등어 낚시를 하던 남편은 병을 앓다 이미 저세상으로 떠났고 , 연탄 화덕에 연기를 풀풀 날리면서 고등어를 굽던 어머니마저 이민 간 오빠를 찾아 이국땅으로 떠나셨다. 이래저래 고등어는 내 추억 속에서나 회유하는 희귀어종이 되어버릴 것 같다.

   가을 저녁이면 불현듯 고등어를 굽고 싶은 것은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인지, 홀로 남은 외로움의 독백인지 알 수 없다. 모종의 희망에 대한 간구일수도 있겠다. 나는 고등어를 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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