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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속의 작은 방/김채영

에세이향기 2024. 6. 20. 03:35

 

방 속의 작은 방

김채영

 

겨울은 어느 절기보다 공기가 맑고 무결하다. 바람의 거칠고 빠른 이동과 반복적인 순환은 갖은 공해를 멀찌감치 날려버린다. 겨울은 또한 춥기에 따뜻한 계절이다. 코끝이 찡하도록 매운 냉기와 건물들의 문짝을 덜컹대며 흔드는 바람에 한줌 밖에 안 되는 얇은 스카프가 더 없이 포근하고, 먼 곳에 사는 친구의 다정한 전화 목소리에서 온기를 읽는다. 혹한 속에서 길을 걷다가 마신 자판기의 커피 한잔의 의미가 어느 계절보다 간절하게 느껴진다. 그리하여 외출 후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남루한 방 한 칸은 내게는 왕궁처럼 호사롭다. 소소하게 작은 것들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겨울이 어느 계절보다 길고 추운 탓일 것이다.

겨울은 우리가 끌어안은 근본적인 서사를 하얀 눈을 덮어 서정으로 채색한다. 눈은 의도된 방향으로 내리지 않는다. 눈 오는 풍경이 시시각각 변모하는 것은 모두 바람이 시키는 일이다. 바람은 형체도 없는 것이 용의주도하게 사물을 덮어쓰고 존재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눈이 허공에 그리는 오묘한 문양은 바람에 의해 학습되고 정련된 움직임이다. 겨울눈은 세상의 거대하고 오묘한 윤곽과 농담을 확연하게 기억하여 내린 눈의 두께와 상관없이 실루엣을 정확하게 그려놓는다.

지난날 어머니는 한겨울이면 마당 구석의 구덩이에서 생강을 팠다. 호미로 언 땅을 얼마간 파 내려가면 생강들이 고물고물 모여 있었다. 몇 톨의 생강을 파내고 흙을 덮어 구덩이를 수습할 때 나는 어머니가 생강이 아니라 생각을 파고 있다고 짐작했다. 흙구덩이에서 파낸 생강 몇 톨의 흙을 털어 낼 때까지의 시간은 그리 짧지 않았다. 매년 김장을 끝내고 난 뒤 어머니는 생강 한 자루를 마당에 묻어놓았다. 그 것은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까지 음식을 조리할 양념이었다.

도시에서 그래도 마당 있는 집을 소유하고 꽃씨나 채소의 씨앗을 뿌리며 거두고 흙을 만지며 사는 것을 어머니는 뿌듯해했다. 또한 생강을 묻으면서, 혹은 한겨울 밥을 짓다가 드문드문 구덩이를 허물어 생강 몇 알을 파 낼 때의 모습은 대체적으로 바쁘고 들떠 보였다. 어머니가 생강 구덩이를 파내는 날은 내게도 기쁜 날이었다. 그날은 어김없이 생선이나 고기가 밥상에 올려 올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했다. 생강과 생각은 확연히 다른 뜻이지만 어감이 비슷해서 그런지 굴을 파는 어머니의 뒷모습에는 왠지 비밀스러워보였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부어온 계를 탄다든가 , 아니면 장롱 속 깊은 곳에 금붙이를 불려나간다던가, 혹은 배게 속에 숨겨놓았음직한 적금 통장의 만기가 다 돼간다든지,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생강을 파면서 어머니의 들썩이는 어깨가 그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물론 딱 꼬집어 얘기를 확신은 없다. 어쩌면 농경사회의 대한 아련한 향수일지도 모르겠다. 허나 홀로된 뒤부터 어머니는 악착같이 벌어들인 돈을 분산시켜 집안 구석구석에 숨겨놓았으니 추측이라고만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 때 내 눈에 비친, 내 기억 속에 멈춘, 어머니의 생강을 파내는 시간은 일상을 뛰어넘어 희망 쪽으로 활기가 넘쳤다.

연로한 어머니는 이제 생강을 묻을 땅도 없다. 한겨울 생강을 파내는 일이 아니라, 이방인처럼 회색으로 변한 눈동자로 나날이 생각을 메워가고 계신다. 나는 어머니가 메워나가는 생각의 구덩이가 좀 더 넓었으면 기원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올 겨울은 여느 때보다 길디길기를 , 꿈속에서라도 지난날 마당 구석에 옹골지게 파묻은 수많은 생강을 더디게 파내길 소망한다.

나는 십이월하도고 가장 추운 날, 산골 마을인 둘째 외삼촌댁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집은 도시였지만 어머니가 친정으로 몸을 풀러 간 것이었다. 처마 끝에는 주렴 같은 고드름이 열리고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 덮였을 때, 외숙모와 외할머니가 부엌을 드나들며 군불을 때고 ,하얀 쌀밥에 미역국을 끓였다고 했다. 내리 아들 둘을 낳아 기르던 부모님에게 딸의 출생은 가족의 기쁨이며 축복이었다. 나는 그 겨울부터 두 오빠를 제치고 공주의 자리로 등극했으며, 수시로 출생한 외가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외사촌들까지 밀쳐내면서 유년시절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짠한 일이다. 유약하고 어린 영혼이 철이 든다는 것은, 건축물을 지을 때 골조 공사를 하는 것처럼 발끝부터 조금씩 철심을 박는 일이다. 어른이 되기 위해 한 뼘 한 뼘 자라나면서, 생존을 위해 세상을 스스로 버텨나갈 골격과 중심을 세우는 것은 고단하지만 누구나 극복해야할 일인 것을.

수년전 나는 외가의 옛집을 헐고 그 자리에 다시 새집을 지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척 서운했다. 그건 내게 가장 완벽하게 행복했던 시간들이 영원하게 보존되길 바라는 욕심이었다. 그 후 몇 년간 힘겨운 일이 있어 외가를 까맣게 잊었다. 그런데 얼마 전 둘째 외삼촌댁에 갈일이 생겼는데, 나는 외가의 앞에서 할 말을 잊었다. 이미 오래전 사라졌다는 외가의 옛집이 고스란히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의 집착이 빚어놓은 환각인가, 환영인가 싶어 한동안 몽롱했지만 ,그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충격과 혼란에 빠져 쩔쩔 메었다. 사랑채의 조그만 창문 옆 벽에는 예전처럼 변함없이 다정하게 무시래기와 마늘, 양파 등이 걸려있었다.

그러나 외가의 옛 사랑채 뒤로 새로 지은 안채가 보였으니 이내 해답을 알아차렸다. 현재와 과거가 교묘하게 뒤엉키며 공존하는 시간을 넘어서면서 내 가슴에 알싸한 통증이 지나갔다. 서슴없이 사랑채의 빛바랜 창호지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거미줄과 함께 시간의 때를 고스란히 묻힌 낡은 방은 기다렸다는 듯 내 몸 속에 익숙하게 스며들었다. 오랫동안 닫혔던 방문이 열리는 순간 햇살은 방안에 네모난 문짝 모양을 그려놓았고 , 그 안에 검은 그림자 하나를 세웠다. 내가 태어났고, 숱하게 드나들던 공간이었다. 외사촌들과 술래잡기를 하면서 들락날락하던 방 속의 또 다른 방인 벽장을 열면서 설렘과 감동으로 눈가가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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