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다/ 변애선
첫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기준은 무엇일까. 미칠 것만 같은 그리움의 척도일까. 사랑을 잃고 난 이후 죽을 것만 같았던 통증의 강도인가. 그 존재의 부재가 주는 하염없는 외로움일까. 평생 잊지 못하는 안타까움인가. 나에게는 그것이 참을 수 없는 마려움이었다. 터질 것만 같은 상태로 차마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못한 채 몸부림을 치는 고통.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 그토록 흠모하고 사모하였던 사람과 만날 약속을 정했다. 그 때는 이메일이 없었으니 분홍편지지에 푸른 잉크로 그리운 마음을 소나기처럼 적어서 보내는 나의 집요함에 그 사람도 더는 버티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 시절은 매순간 그 사람을 먼빛으로나마 스치기라도 해보려는 심정으로 살았으니 그 데이트는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직접 만져보는 것보다 신비한 사건이었다.
그 때는 몰랐다.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은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무엇을 입고 나가야 할런지 옷장을 파헤치고 뒤집어 놓고도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목욕을 두 시간 넘게 공을 들여서 했다. 머리칼은 계란과 마요네즈를 잘 개어서 꼼꼼하게 버물려서 수건으로 싸서 묶어두고, 얼굴은 오이를 갈아서 붙이고, 클레오파트라가 그랬다던 것처럼 생우유로 전신마사지를 하였다. 목욕을 마치고 일어섰을 때는 머리의 피가 전부 아래로 몰린 듯 캄캄하고 어지럽고 손발의 피부는 불어터져서 건포도처럼 오글거렸다. 그런 약속을 다시 하라면 사양할 것이다. 약속이 정해진 그 다음부터 느슨한 시간은 사라져버리고 너무 긴장해서 현의 팽팽함만 시간을 지배했다. 그런 감옥이 어디 또 있나. 그 사람 때문에 모든 시간을 바치고 준비하고 허둥대고 소비하는 어리석음이 사랑이라니.
구스다운이라도 걸쳐야 할 만큼 날씨는 매서웠는데 날씬해 보이고 싶다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가을 옷차림으로 나갔다고 보면 된다. 가슴에 불이 활활 타는데 외투가 없으면 어떠랴.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생머리로 나가는 준비를 하는데 한 일주일을 소비하였으니 만약 화장을 하고 미장원에도 가고 네일숍에 들러서 손톱과 발톱까지 단장을 했더라면 언제 준비를 마쳤을 건가. 얼굴의 솜털과 눈썹을 정리하지도 않았고 마스카라와 아이라인을 바르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무얼 했는지. 풀코스로 찍고 바르고 차려입고 나갔더라면 그 약속 장소에 제 시간에 도착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차를 탔다. 나란히 앉아서. 전신이 뻣뻣해지는 불안과 호기심 속에서. 동대구역에 내려서 택시를 탔는지 걸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도시의 중심가 어느 레스토랑에서 음악을 듣고 서양식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바로크풍의 인테리어와 새장의 새. 천정에 매달려서 늘어진 식물들과 가습기가 뿌려주는 안개비. 벅차고 생생했던 그 순간들. 몸은 오그라들고 입을 움직여 말을 하는 것조차 부자유스러웠지만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폭죽을 터뜨리던 고통. 겉은 얼음이고 속은 불인데 그 감정의 진폭과 부끄러움을 가리고 숨길 두터운 화장을 하지 못한 대신 맨 얼굴로 달아오르던 첫정.
어린 나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완벽하였다. 학업을 마치고 이미 사회에 진출한 그 사람의 몸짓은 이 우주의 비밀을 나보다 먼저 정복한 제왕처럼 당당하였다. 낙타색 모직 상의 속의 검정색 셔츠를 눈으로 더듬어 올라가면 목울대를 지나고 턱에서 귀까지 면도한 자욱이 푸르게 빛을 발했다. 예리하고 정련된 멋진 검을 바라볼 때처럼, 고독하고 서늘한 그 푸른 기운에 나의 살을 베이고 싶다는 충동을 애써 숨기느라 힘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았다. 닥터지바고. 어린 지바고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스산한 풍경의 도입부에서부터 그토록 찾아 헤맸던 라라를 우연히 발견하고 허둥거리며 좇아가다가 애절하게 “라,,, 라,,,,,” 하고 부르며 숨이 컥컥 막혀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말미까지 그 영화가 그렇게 길 줄을 몰랐다. 그 영화가 너무 좋아서 곁에 앉은 사람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았다. 그건 편했다. 그 사람의 숨결이나 손이나 무릎에 집중을 덜했다. 그런데 점점 너무나 오줌이 마려웠다. 방광이 터질 것 같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급박했다. 차마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영화를 잠깐 놓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마치 그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일이나 된다는 듯이. 그 감독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도 하고.
끝까지 참았다. 어떻게 참을 수가 있었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다. 속옷을 적시지 않았으니 첫사랑이라면 괄약근도 탄탄해야 하나 보다. 그 고비는 넘겼지만 남은 인생에서 화장실만 보이면 재까닥 방광을 비워야 하는 강박증 환자로 살았다. 낯선 곳에 가면 더 심해진다. 무조건 화장실부터 찾는다. 가득 채워서 버려야 쾌감도 클 것인데 조금만 고이면 불안해서 내보내야 한다.
첫사랑은 이루어 질 수 없다고 하더라. 나도 그랬다. 첫사랑을 망쳐버린 이후 내 인생은 점점 부끄러움 때문에 무엇을 숨기고 참는 일이 줄어들었다. 부끄러워하면서 복약지도를 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칠 수가 있을까. 부끄러움이란 당당함과 대척하는 것인 듯 남은 삶에서는 그러지 말아야 했다. 교복아래 겹겹으로 갖춰 입었던 속옷들의 가지 수도 줄어들었다. 기본 속옷 위에 속치마까지 겹쳐 입고 여름을 나는 일이 어찌나 지긋지긋했던지 대학에 가자마자 훌러덩 벗어던져버렸다. 어차피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 인생. 속옷이라도 가볍게 입을 수 있다면.
참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다리를 꼬고 비틀며 참고 또 참다가 배설을 하는 순간의 전신이 부르르 떨리는 그 지극한 쾌감을. 부끄러움 대신 당당함과 세련됨을 선택한 대가로 잃어버린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극적인 쾌감을 쉽사리 경험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
최근에 어떤 남자가 나에게 충고를 했다.
“좀 더 낯을 가리고 수줍어하신다면 훨씬 매력적일 건데요”
나는 그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흥! 하면서 그 말을 무시해 버렸다.
그런 말을 한 번 더 듣게 되었다, 한때 너무도 사랑했었던 한 남자로부터. 아주 우연히 어떤 술집에서 마주앉게 되었는데 만취한 그가 나에게 그랬다.
“내 앞에서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해 줘”
이 남자가 아무리 취중이라지만, 얼마나 비열하게 나를 떼어버리고 떠났던가를 잊어버렸다는 말인가. 비가 그쳐버린 운동장에 남겨진 지렁이처럼 필사적으로 꿈틀대던 나의 영혼이 바싹 타들어가던 날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내시다가. 내가 아니더라도 잘 살아가고 있는 존재를 위하여 새삼 부끄럽고 두근거릴 일이 뭐가 있다고. 그가 원하는 것이나 내가 원하는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미지에 대한 순정. 어쩌면 사랑. 그러나 한 번 어긋난 대상에 대해서는 소생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한 그 열정.
지난 뜨거움을 더듬어 다시 한 번만 그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서로 손끝 하나 스치지 않은 채 그 밤에도 각자 갈 길을 갔다. 미지근한 감정들의 배설이란 미처 방광이 차오르기도 전에 자주 비워두는 일과 뭐가 다른가. 별 쾌감도 흥분도 없는 시간의 소멸을 나는 원하지 않았다.
모든 사랑이 다르지 않다. 사랑이 시작될 때 몰려오는 격렬한 폭풍. 화산 폭발의 중심에 심장을 맡기는 일. 시뻘건 용암의 분출. 이후에 덮쳐오는 화산재와 암흑과 비. 그리고 냉각과 응결과 고착. 과연 그 어느 단계에서 우연히 그 사람을 스쳤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 없이 마음이 담담하였다. 차라리 욕을 퍼붓고 저주하고 증오할 수가 있었더라면 나는 그 날 행복했을 것이다.
이제 사랑을 시작할 때다. 지난 사랑이 전혀 아프지 않다. 몇 번을 반복한다 하더라도 끔찍하지 않을 테니, 부디 사랑이여 다시 나에게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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