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으로 온 손님 / 이대흠(1967~ )
치매에 걸렸던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하셨다 소파 뒤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어서 나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보았던 소파였다 낡은 초록색 소파는 아버지의 마지막 주소지였다 아버지는 그곳에 자기 생을 다 놓고 앉아서 창밖만 바라보았다
어느날이었다
끼니때가 되어 아버지를 부르자 아버지가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거울 속 한 노인을 발견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서 밥먹읍시다 하지만 거울 속 노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아버지가 밥상 쪽으로 올수록 그 노인은 멀어졌다 어허, 자식들이 다 이해하니 같이 가잔 말이오 아버지가 여러번 권했으나, 거울 속 노인은 겸양한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손을 내밀면 마주하여 손을 내밀었고, 등 돌려 밥상으로 오면 멀어졌다
그 노인은 끝까지 우리 집 밥상에 앉지 않았다 그날 아버지는 밥을 드시지 않았다 손님을 두고 어찌 예의 없이 우리끼리만 밥 먹냐고 한마디 하셨다 예의 없는 우리들은 손님으로 온 그 노인을 거울 속에 두고 숟가락을 들었다
얼마 뒤 아버지는 저승으로 가셨다 예의가 없어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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