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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오후/황진숙

에세이향기 2024. 11. 10. 09:11

6월의 오후/황진숙

 

 

나른한 오후다. 세상 만물이 오수에 들었는지 고요하다. 아직 한여름은 도착하지 않았는데 마당의 기운은 습하고 끈적하다. 무심하게 내리쬐는 햇살마저 지루하다.

오랜만에 들른 시골집이다. 굳게 잠긴 현관문이 부재중인 주인을 대신에 출입을 막아선다. 낯선 이의 등장에 백구가 요란하게 짖어댄다. 제 밥그릇도 못 알아보는지 찌그러진 양은 냄비가 목줄에 쓸려 마른 먼지를 일으키건 말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마당 한 귀퉁이엔 연탄재가 비닐봉지에 담긴 채 방치되어 있다. 진즉에 두어 계절이 지났건만, 여전히 겨울을 품고 있는 시골집이 답답하다.

며칠째 물을 못 얻어먹었는지 수국이 바짝 말라 시들하다. 보다 못해 수도꼭지를 튼다. 물을 담아서 뿌려줄 요량으로 물뿌리개를 가져다 댄다. 콸콸거리며 쏟아지는 수돗물이 청량하다. 시원한 물소리에 적막한 풍경이 가시려는 찰라, 닳고 닳은 빨랫방망이가 눈에 들어온다.

빨랫감의 땟물을 제거하기 위해 두드리고 때려대느라 곰삭은 몸피가 거무튀튀하다. 갈라 터져 단단한 결기도 내리치는 힘도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그런들 고단한 노역에서 벗어나 잠시 몸을 뉠 수 있는 빨랫돌을 제 짝으로 뒀으니 다행이지 싶다. 늘그막에 이 밭 저 밭으로 기댈 곳 없이 홀로 동분서주하는 엄마보단 낫다.

저 멀리 고샅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온다. 들에 나간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는 모양이다. 잠시 후, 등이 굽은 엄마가 오토바이를 끌고 들어선다. 원체 마른 엄마에겐 작은 오토바이조차 버거워 보인다. 저걸 어찌 운전하고 다니는지 아슬하기만 하다. 일생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건사해 온 것도 모자라,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종종거리는 엄마가 처량하다.

현관문을 열어주며 덥다고 얼른 들어가라는 엄마의 재촉에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들어서자마자 어질러진 거실 풍경에 말문이 막힌다. 내팽개친 옷가지와 벗어 던진 양말짝, 이리저리 나뒹구는 빈 약봉지, 개키지 않은 이부자리 등 어느 하나 정돈된 게 없다. 발을 떼자 말라비틀어진 밥풀이 밟히고 구석진 곳에 수북이 쌓인 먼지가 눈에 들어온다. 느닷없이 출몰한 바퀴벌레에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온다. 이게 사람 사는 곳인가. 탄식이 흘러나온다.

아버지를 병원에 보내놓고 생의 의지를 잃은 걸까. 집을 치우는 건 고사하고 제대로 된 식사도 없이 일에 매달리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온다. 평생 술독에 빠져 사는 아버지의 병증으로 오랜 세월 힘들었을 텐데. 이제 좀 내려놓고 편안해져도 좋으련만. 무슨 대단한 인연이라고 저리 헛헛해 하는 걸까. 아버지로부터 짓눌리는 고통에서 풀려나 숨을 쉬는 것도 잠시, 마음 둘 곳 없어 농사일을 놓지 않는 엄마가 안쓰러우면서도 갑갑하다. 관성처럼 아버지의 굴레를 맴돌며 벗어날 줄 모른다. 늘 아버지 뒤치다꺼리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해 스스로를 대면하는 시간이 낯설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도 누려본 적도 없어 무력하기만 하다. 막무가내인 아버지에 맞춰 사는 피폐한 일상만 존재할 뿐 인간적인 삶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 원수 같건만 정작 아버지의 빈자리는 엄마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어떤 삶의 방식도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지만, 온전히 엄마만을 위한 삶을 보내길 바라는 게 지나친 걸까.

온갖 풍상으로 점철되는 엄마의 시간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관절염으로 절룩대는 다리로 또 얼마나 끌고 가야 하는 걸까. 낮아지는 그림자처럼 내 마음도 한없이 기운다. 적요하기 그지없는 6월의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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