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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골목길 / 최재영

에세이향기 2024. 11. 28. 09:15

 

골목길 / 최재영




연두빛 내력들이 제 몫의 봄을 키우느라
햇살을 끌어 모으는 중이다
허공 한구석 팽팽해지고
골목에 나앉은 늙은 여자들
볼우물 가득 생의 이력을 오물거리는지
골목은 하루종일 분주하다
봄의 한 복판에서 출렁이는
저 환한 푸념들
가지마다 탱탱하게 들어차는 수런거림
한 순간 시간이 정지된 듯
지상과 허공 그 짧은 간극으로
물오른 생의 주름들이 펼쳐지고
음탕한 농담 한 두 마디 건넬 때마다
자지러지게 흩어지는 쭈글쭈글한 웃음소리
잠시 생을 붉게 물들이는
봄날 눈(眼)빛 환한 기억들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담장에 기대앉은 봄꽃들
한동안 그들이 피워올린 검버섯을 따라 올라가고
여기 짧은 환희, 봄은 덫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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