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11.15(금)_ 제민일보_소하의 디카시 산책_에는 김영빈 시인의 디카시 '봉인해제'가 초대되었습니다.
_본문
비움으로 비로소 해탈에 이른 조개를 본다. 아니 회중시계를 본다. 그는 이제 시간이 멈춘, 더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경계 너머에 앉아 깊은 삼매에 든 수도자처럼 고요하다.
'스마트폰 사진의 달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김영빈 시인의 작품이다. 역시나 영상언어가 주는 울림이 크다.
썰물 지는 갯벌 위로 윤슬이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는 사진 속은 한 점의 바람도 없이 한 점의 구름도 없이 그저 고요하기만 할 거 같은 풍경이다. 그 풍경에 '봉인해제'라는 제목이 붙었다. ‘거짓말처럼’ 평화가 깃드는 순간이다.
빈속을 훤히 드러내고 앉은 저 회중시계 속에는 어떤 시간이 봉인되어 있었을까. 당장이라도 놓아버리고 싶은 생의 고단함 같은, 삶의 치열함을 견뎌낼 수 있었던 열정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어떤 의지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있었던 소중한 그 무엇일지도.
그것이 무엇이든 ‘시간에 갇혀있던 것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끝이나 죽음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장면에서 나는 오히려 홀가분한 기운과 비로소 자유 같은 기분을 느낀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눈을 감고 명상하듯 여운을 느껴보고 싶은 작품이다.
디카시는 이렇게 영상언어와 문자언어가 서로를 견인하며 어우러질 때 그 매력을 발산한다. 최근 영상미에 치중해 사진의 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디카시가 많아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또한 문자시는 중요하고 사진은 안 좋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디카시의 발목을 잡는 일이라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디카시는 이런 것이다. 사진도 좋고 시도 좋은 디카시,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는 대중의 문학이면서 끝없이 성장할 수 있는, 성장해야 하는 문학.
_글. 이은솔
[출처] 제민일보_소하의 디카시 산책(10)|작성자 웹진 시인광장 디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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