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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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참기름 / 素人

에세이향기 2024. 10. 16. 03:00

참기름 / 素人

 

 

그저 나태함으로 따사로운

가을 볕 몸 감는 건 아니야

날선 검에 허리 잘리고도

꼿꼿한 정신 곧추세운 채

두름으로 묶인 목숨

찌는 한숨 忍苦하는 열정으로

젖은 육신 서서히 말리는 거다

 

빈들에 모여 선 우리들 모습에

까마귀도 울고 가지만

이대로 저물진 않아

너희들 모진 작대기에

멍들고 터져 나간 몸뚱아리

살과 뼈 문드러져도

더 세게 내리쳐라 세게 내리쳐라

훌훌 가짜들 쫓겨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았는데

 

너희들 거대한 조직

고문실 같은 섬뜩한 열기

훅훅 볶아치고

전기구이 통닭 빙글빙글

뺑뺑이 돌려

우리들 일그러진 표정이어도

끝내 하나로 뭉쳤다

더러는 검게 그을린 육신 하나 둘

해체되고 타 버렸어도

밀려오는 거대한 무게

더 세게 내리눌러라 세게 내리눌러라

 

마지막 한 방울로 정제되는

우리들 인생 이제부터 시작인 걸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상 처음부터 끝 날까지

한결같은 맛 지켜온

우리는 참 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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