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들 없을까. 인생의 한 페이지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람. 칸칸의 마디를 넘겨도 페이지 속에 묻히지 않는, 인생이라는 책을 펼칠 때마다 자동으로 펼쳐지는 사람. 충분히 용서했어도 되살아나는 사람. 누군들 그 사람 때문에 힘든 적이 없을까.
무자비하게 찾아오는 그 아찔함은 생의 허기를 더 도드라지게 한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 하나 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고 흘려보냈던 것을 애써 들춰내어 스산함을 자처한다. 왜 인간은 ‘돌아보는 맛’을 놓지 못하는가.
조용미 시인은 인생의 여정에서 그 한 사람을 떠올린다. 아무리 용서를 서로 수박 나누듯 나눠 가졌다 해도 그것은 해결 나지 않는 일임을, 그것은 이 세계에서 덮이지 않는 사건임을 사무치게 선언한다. 증오하면서도 그리워하는 인연이라니. 이 어찌할 수 없는 인간사의 ‘뫼비우스 띠’라니. 슬픔이 많으면 많을수록, 회한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리움은 늘어나는 법일까. 그 그리움들을 다 어디에 쓰겠다고 자꾸 들춰내기만 하는 것일까. 조 시인의 시를 읽다가 문득 돌을 조각하듯 사람을 파헤친다면 그 안에서 거대하고도 오래된 그리움이 발굴될 것만 같다.
진정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것은 그리움의 인자(因子)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고, 바로 그 그리움 때문에라도 사람은 섬뜩할 정도로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을 가지고 사는 건지도.
누군가에게 용서를 바라고도 그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다면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마침내 우리가 용서해야 할 것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인 것. 비처럼 그리움을 퍼부어서라도 살아야 하는 우리 자신에게 용서의 화살을 돌려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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