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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등대의 사계/이미애

에세이향기 2025. 1. 28. 00:59

등대의 사계/이미애


참 오래전 내 삶의 조각이지만 여전히 그리운 옛일이 되었다. 희뿌연 도심의 공해를 떠나 고저늑한 어촌의 일몰이 좋아 많은 걸 포기하며 선택했다. 그 시작은 건강이 날마다 악화되면서 결심한 일이었다. 한 폭의 풍경화를 옮겨놓은 듯한 항구가 시야를 환히 가르고 넝쿨진 숲이 마치 우리를 품을 듯해 그 한가운데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하루가 저물고 바다도 제집으로 찾아들면 마루에서 멀찍이 보이는 등대에 사계가 오롯이 머물고 있었다.
봄이 되면 윤기가 자르르한 멸치가 포구에다 가장 먼저 눈인사를 매 꽂는다. 마을 어귀마다 포구에서 떠밀려온 비린내가 후각마저 메스껍게 만들지만 그건 차츰 어촌만의 진풍경이 된다. 고된 노동의 시름을 담아낸 어부들의 힘찬 노동요는 어깨 자락을 타고 구릿빛 얼굴에 희망을 토닥인다. 그 장단에 멸치 떼가 얼씨구나 허공에서 걸한 춤판을 벌이고 대여섯 시간의 그물털이에 지친 멸치들은 냅다 곤두박질을 친다. 좌판 아낙들은 뜨내기손님도 마다한 채 뒹구는 노다지를 줍느라 정신이 없다. 이 항구의 봄은 명절 대목처럼 충천한 술렁거림으로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다. 매년 봄에 열리는 멸치 축제는 장승처럼 항구를 지키던 무인등대가 터줏대감이 되어 잔치마당을 준비한다. 외지인들도 이날만은 모든 세상 시름 던져놓고 놀고 마시고 흥에 겨워 자신조차 잠시 잊는다. 물빛이 검게 동굴처럼 부풀어 오르면 잔칫상은 하나둘 빈자리를 드러내고 서서히 일상의 어둠이 사람들 곁으로 다가온다. 잔치는 막을 내려도 포구의 봄볕은 여전히 따사롭기만 하다. 멋없이 바쁘기만 한 일상에 찌들어 사는 나를 축제는 소생하는 봄의 생기로 내 안으로 들어와 하나둘 불씨를 지펴주었다. 다시 날아오를 수 있으리란 열정이랄까.
봄이 떠난 여름은 또 어떤가. 이 포구에서의 여름밤 낚시는 황홀한 행복감을 선사한다. 손맛은 기가 막히고 물때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어느 해는 고등어가 풍년이더니 또 어느 해는 학꽁치가 풍년이다. 해마다 조류와 일기 변화에 따라 어종이 변화한다. 별다른 미끼가 없이도 중간치 고등어가 줄줄이 잡혀 올라온다. 한 입씩 덥석 물고 뭍으로 오르며 팔딱거리는 몸놀림이 그윽한 달빛 아래 춤추듯이 어우러져 수확의 기쁨이 배가되는 기분이다. 낚시에 빠져들면 시간도 잊은 채 먼동이 틀 때까지 거기 있곤 했다. 여름밤은 어쩜 그리 짧은지 밤을 꼬박 새우고도 도무지 피곤한 줄을 모른다. 포구에 늘어선 가로등이 소등을 하면 기상을 알리는 등대와 나는 너른 기지개를 켠다. 자상한 어머니처럼 방파제가 하는 소소한 몫을 내 스스로는 제대로 하고 사는지 반문하는 때이기도 했다.
가을에는 다시 멸치가 풍년을 알린다. 봄 멸치는 알을 잔뜩 품고 있어 맛이 월등히 뛰어나다. 가을 멸치는 씨알만 굵었지 이름값만 겨우 할 정도로 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가을에는 남해안까지 야행성 오징어를 잡기 위해 수백 개의 집어등을 밝히고 출항하는 때이기도 하다. 다음 날 새벽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는 배를 제일 먼저 마중하는 것 또한 등대의 몫이다. 밤새 그들을 향해 밝혀두었던 서치라이트 불빛이 안개 자욱한 뱃길을 환히 열어주는 것이다. 늘 한자리에 묵묵히 서 있건만 제 일을 잘도 알아서 척척 해내는 등대가 언제 봐도 대견하기만 하다. 춥도덥도 않은 계절에 어부들은 하루의 피곤을 잊기 위해 방파제에 자리를 편다. 한 잔 두 잔 오가는 가운데 등대의 귀는 그들의 애환과 고된 세상살이를 담은 푸념을 위해 열려있다 . 낮에는 아낙들이 오징어와 멸치를 널면서 떠드는 수다를 무상무념無想無念으로 받아넘기고 밤에는 남정네들의 굵은 시름을 주술적인 정화로 쓸어내린다. 속 깊은 등대는 모든 번뇌가 마치 한 곳으로 흐르는 길인 양 언제나 초연하기만 하다. 붉은 용오름처럼 정열적인 모습으로 세상을 굽어보지만 누구나 알아봐 주는 건 아니다. 높은 곳에 살면서도 겸손을 알고 바다와 사람을 하나로 지키는 욕심 없는 파수꾼. 등대가 사람에게 가르쳐주는 미덕은 바로 그런 소박한 것일 게다. 가을은 왠지 인생의 덧없음에 서글퍼지고 생활의 단조로움에 그저 한심하게만 다가온다. 갈빛 노을에 젖은 등대의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하다. 긴 역사와 세월의 전설을 간직한 등대처럼 멋진 가을을 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년의 초입에서 감성마저 메말라 더욱 초라한 나에게 스스로 당당해지라고 넌지시 말해주는 것만 같다.
겨울이 되면 포구는 돌미역까지 가세해 정신없이 바쁘다. 말려서 팔면 젖은 미역의 서너 배를 받을 수 있어 잇속이 빠른 좌판 아낙들이 부지런을 떤다. 방파제에서 미역을 널어 말리는 틀이 자로 잰 듯 이열종대로 줄을 섰다. 마치 한 뼘의 실수도 용납지 않는다는 군부대의 사열 같아도 꽤나 다정다감한 포구 풍경이다. 짠내를 풍기는 미역이 등대의 코를 자극하면 슬며시 한눈파는 시늉도 한다. 더없이 잔잔한 겨울 바다에 파도도 잠시 먼 길을 떠나나 보다. 아이들의 아우성도 좌판 아낙들의 악다구니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적막한 낯섦만이 이 포구를 서성이고 있다. 등대의 처진 어깨는 왠지 을씨년스러워 사람의 무리 속에 섰던 때를 또 그리워하나 보다. 말없이 장고에 들어가 긴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것이리라. 익숙함으로 널브러진 자신을 바라보는 게 조금씩 힘겨워지는 나이가 되어간다.  차라리 등대의 침잠처럼 올곧은 내공이라도 쌓았다면 내 삶의 무늬는 훨씬 달라지지 않았을까, 늦은 회한이 남는다.
어촌 아낙의 비린내가 내 정신에 스며들 때쯤 아이들과 함께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오곤 했다. 포구는 내게 미역의 짠내, 파닥이는 멸치와 오징어의 해득한 나신이 펼쳐진 삶의 현장, 또한 사람을 타고 흐르던 봇물 같은 정을 떠오르게 했다. 사계의 윤회 속에 등대의 다양한 모습이 이입되면서 그저 그렇게 묵묵히 닮아가고 싶었나 보다. 고고하게 자신을 지키며 정화를 꿈꾸는 등대에 반해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살이에 허황된 욕심을 떨쳐내지 못해 무척이나 아파하곤 했다. 인간으로서 닿을 수 없는 참 강직했던 그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립기만 하다.
계절이 오가는 길목에 서면 늘 그 등대의 긴 그림자가 내 어깨께로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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