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리지 않는 문 / 남호순
1
무너진 담장 너머 발을 들이며 헛기침으로 인기척한다
공장 입구는 빚 받으러 온 사람에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마당 귀퉁이 놓고 싸움이 한창인 이끼와 잡초는
한 자리씩 진급하려던 상사들의 영역처럼 넓어졌다
칡넝쿨은 한 줄기 빛이라도 따라 오르려던
의욕 앞선 젊은 용접공의 파란 불꽃으로 치솟아 있다
2
연기의 살랑거림이 귓속말처럼 피어올라 소문으로 무성했던
생산 현장은 풍문만 듣고 있다
어둠에 감전되어 멍하게 있는 형광등은 거미 사슬에 돌돌 말린 기억
스위치를 켜면 확, 빛의 파편처럼 흩어졌던 사람들이
달려와 저마다 불빛을 발산할 것 같은데
그들은 한쪽은 검게 멍들이고 다른 한쪽으로
흐릿한 감도感度를 조절하며 일자리를 찾고 있다
제 역할을 잊은 공구들 붉은 몸뚱이로 구석에 퍼질러져
녹슬어 가는 삶의 무게에 무게를 더한다
3
바람이 창문 갉아먹는 소리에 먼지 부스러기들이 햇살을 끌어들인다
드리워진 그림자는 밀린 월급에 배고픈 이들의 얼룩
결제되지 않은 잔업일보처럼 긴 기다림은 수당 없는 잔업 시간
굳게 닫은 자물쇠의 완강한 힘에 밀린 벚꽃은 진저리치며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