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연필
전영관
풍구의 회오리가 가슴께를 후려친다
갈탄의 낭자한 선혈 사이로
피 맛을 본 강철이 달아오른다
부러지지 않을 만큼만 각을 세우는 기술
강철연필은 학력편차가 크다
몇 자의 비문만 학습한 경우가 있고
공덕문을 줄줄이 암기하는 실력파도 있다
까막눈 돌쟁이는 단지 내장된 글자들을
강철연필로 파내는 것뿐이다
거북이나 두꺼비를 만나 호되게 당하기도 한다
환절기에는 떠나는 사람들 많다
해마다 반복되는 덕분에 그의 한문 실력도
지명이나 이름자에 두각을 나타냈다
담금질로 단단해지는 것은 강철뿐
돌쟁이의 가슴은 반비례로 물렁해졌다
구부리는 법을 터득한 까닭에 굽실거렸어도
칠십 평생 부러지지 않았다 그만큼만
각을 세우는 기술 덕분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부끄럽게 생각한 적 있다
아버지는 물푸레나무들과 뒷산으로 올라가
겨우내 돌아오지 않았다
강철연필들은 처음으로 주인의 이름을 새겼고
얼어붙은 산 밑 저수지에서 떵떵
망치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찬물에 손이라도 씻는지 지난 봄에는 물푸레
푸른 물이 내려오기도 했다 오늘도
녹슨 강철연필들만 벌겋게 복습 중이다
旌 旋 全 公 重 鉉 之 墓
강철 혈관의 푸른 눈물
복잡다단한 21세기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개인의 정서를 토로하는 식의 시가 한계를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세계를 인식하는 한 방식으로서의 시는 대단히 바람직한 것인 바, <시는 사상의 정서적 등가물>이라는 T. S. 엘리어트의 말은 이 점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시에서 사상 또는 관념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시는 결코 철학이나 사회과학의 논리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시인의 관념이 현실에 근거하지 않을 때에는 허무맹랑할 뿐 아니라, 시적 장치들을 통하여 호도될 시에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것은 전쟁터에 나가본 적 없는 기자가 전쟁에 대한 기사를 멋진 문체로 쓰는 식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시와 시인의 삶 사이의 관계가 중요시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시인의 삶과 시가 일치해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시인도 인간이니, 자신의 약점이나 과오를 고백할 만큼 솔직하기 어렵겠거니와, 또한 유달리 자존심이 강하니 되도록 멋지게 보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시인의 삶이 시에서 지향하는 쪽으로는 기울어야 하지 않을까. 시인이 치열한 삶을 살고 그 체험을 형상화할 때 시의 진정성이 확보되지 않을까. 인정하자, 뿌리도 없이 설익은, 소화되지 않은 관념에 근거한 시들이 얼마나 많이 횡행하는지. 엽기적인 시를 쓰는 어느 시인에 대해 <그(녀)의 악몽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라고 의아해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책을 몇 권 읽고 책상머리에서 시를 쓰는 식으로는 문밖의 세상을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영관 시인의 작품 <아버지의 연필>에서는 보기 드문 덕목들이 발견된다. 세상의 낮은 곳을 이토록 아름답게 형상화한 것은 시인의 강철 심장을 지나간 많은 선혈과 눈물 때문이리라. 그가 펼쳐 보이는 정경은 눈물겹도록 스산하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드러내고 있다. 풍경의 겉과 속을 세심하게, 오랫동안 꿰뚫어 본 인내의 결과이겠다. 그의 시에는 신인에게 흔한 자의식 과잉이나 엄살, 요설, 허세가 보이지 않는데, <시 비슷한 조각글을 쓴다>는 겸허한 고백은 허접한 토막글장이임을 자처하는 나에게 무한한 신뢰감을 준다. 삶에 굳건히 뿌리내린 정서, 느리지만 강인한 어법, (석공의 강철연장을 연필로 변환시키는) 사물에 대한 놀라운 감각은 전영관 시인의 오랜 내공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풍구, 회오리, 선혈, 강철, 비문 등의 검붉은 사물들이 우울하거나 칙칙한 표정을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고 이윽고 물푸레 푸른 물로 태어나는 것은, 시인의 솔직하고도 따뜻한 시선 때문이겠다. 이 스산한 저녁에, 강철연필로 시를 쓰는 시인과 소주 한 잔 나누고 싶다. 부디 시단의 잦은 환절기에 휘말리지 않고, 세상의 협소한 편견, 이해타산, 값싼 명예 등등, 건강한 삶을 방해하는 모든 위선과 탐욕을 찍어내는 강철연필로 굳게 뿌리 내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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