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의 인연
손창기
왕릉 곁에서 손을 펴고 있으면
생명선의 어느 마디가
죽은 자의 입김이라도 받은 듯
손금에 얼마큼 보태지고 있는 느낌
지긋이 손금의 인상을 흐뭇해하지만,
죽은 자는 내 손금을
꼭 무인상武人像의 손금과 닮았다고 말한다
손바닥에 전생이 흘러왔을지도 모른다
이미 내 안에 얼마간 살고 있는
고구려 안시성을 지킨 도부수이거나
신라왕을 호위한 아랍인이거나
친일파를 척결한 아나키스트이거나
서글픈 귓불을 만지면
토막 난 삼생의 길을 잇는 새소리,
천 년 전에 조율되고도 다시 울리는 현들
구부정 소나무 속
수억 광년 떨어진 후투티 울음의 인연을
나는 모른다
무인의 칼날 위를 스쳤던 새의 조상으로부터
어떤 새는, 무인의 목청을 새겨두고 있었을까
새소리 전에는 전생이거나
새소리 후에는 후생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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