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을 구으며
전영관(1950~2016)
중간불로 뒤집고
약한 불로 다시 뒤집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일상의 알몸을 통째로 굽는다.
노릇노릇 구워져 하루의 밥상에 오를 때까지
타오르는 열기 속에서 뒤집히고 또 뒤집힌다.
탁탁 소리 내며 반항하고 싶은
젊은 날도 있었지.
큰 불만 고집하다가
상처까지도 모두 태운 때도 있었지.
비린내가 풍긴다.
비린내가 묻는다.
한 끼의 맛있는 밥상을 위해
인내를 해야 하는 많은 시간들이
훨훨 날지 못하는 시든 지느러미 날개가 되어
불꽃 속으로 사라진다.
내가 피웠을 냄새와 연기
지금쯤 어느 자리에 엉겨 붙어
부끄러운 모습으로 녹슬어 가고 있는지.
어느 가슴에 남아 아프게 하고 있는지.
.
시인은 생선을 구우며 시 한편도 같이 구웠으니 그는 다만 아침상을 차린 것이 아니다. 생선 한 토막을 굽는데도 깊은 철학이 있거늘. 그건 삶의 비린내 남기지 않고 모두 지우는 게 가장 중요한 법. 불의 세기 잘 조절하여 재료를 다스려야 한다. 중간불과 약한 불로 다스리며 타오르는 열기 속에 뒤집고 또 뒤집는다. 노릇노릇 구워져 밥상에 오를 때까지. 인내와 기다림 필요하다. 이 어찌 한편의 시 쓰는 것과 비교해 쉽다 하랴. 더욱이 어머니 손맛이 살아나기까지는 나의 생을 다 바쳐야 할지 모른다.
고등어 한 마리가 프라이팬에 올라와 구워지기까지. 그는 깊고 너른 바다 헤치며 등 푸른 생선으로 성장했을 것. 한 때는 상어의 공격 피해 수초 사이로 숨었을 것. 더러는 죽어간 동료 가운데 살아남았을 것. 어느 날 어부의 그물에 걸려 얼음 속에 파묻히고. 육지로 올라와 어느 주부 손에 들려와 불 위에 누웠으니. 궁극에 그는 프라이팬에 누워 노릇노릇 익혀지는 그 순간까지 불길 받아들인다. 익혀지며 끝내 비린내 지우고 지운다. 그건 바다의 흔적을 남김없이 태워버리는 것. 그런 즉 고등어의 최종착역은 프라이팬. 물을 넘어 얼음 타고 불에 이르러 바다 속 기억을 깨끗이 비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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