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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약속도 없이/전영관

에세이향기 2022. 1. 22. 11:49

약속도 없이


전영관


하룻밤 물에 불린대도
멥쌀의 찰기로는 허기를 채우지 못할 거 같아
찰밥 해드려야 안심이지 싶은 사람 하나 있다
수수꽃다리가 조청만큼 달달하니
서둘러 왔는데 늦었다 해도 넘겨줄 수 있겠다
찬 없는 두레상에 모셔도 결례는 아니려니
어스름 무렵에야 찹쌀 뼈가 다 무르면
만월과 겸상으로 올려드리련다
비린 것 한 토막을 앞으로 밀어놓고
잔가시 없는 등 쪽으로 떼어드리련다
숭늉 권하는 동안도 꽃은 피고 봄은 뜸 들고
여름을 당겨올 것처럼 눈빛이 짙어지리라


창밖으로 만발한 이팝나무 숭어리가 보인다
바람으로 씻고 늦은 안개에 불려 헛밥이나 짓는다
쥐면 쥘수록 빠져나가는 봄을 다잡아보려
찰밥이라 고집 부리는 것이다
내 것인지네 것인지도 모르게 뒤엉겨
어쩔 수 없으니 주저앉자고
생떼라도 써볼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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