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업 / 최태랑
아버지의 몸에서 언제나 돌 깨는 소리가 났다
그 차디찬 돌에도 뜨거운 피가 흐르는지
쩡쩡, 손끝에서 불꽃이 일었다
눈이 밝은 아버지, 돌 속에 숨은 거북이도 꺼내시고
사자, 호랑이도 불러냈다
먼지 푸석이는 소리로 밥을 짓던 아버지
열손가락을 다 버리시더니
돌을 반죽하기까지 칠십 년이 걸렸다
열 개의 지문을 다 핥아먹고
돌덩이들은 비로소 몸을 열어주었다
돌의 혈관을 찾고 심장을 찾아
숨을 터주는 것을 천직이라고 믿으셨을까
막힌 혈을 찾아 엎드린 아버지
새벽잠을 털고 일어설 때면 소리도 함께 일어섰다
한 자 한 자 각을 세운 비문의 이름들
어느새 묘비는 이끼가 끼고
어디론가 엉금엉금 기어간 거북이들은
어느 정원에 탑이 되어 앉아있을 것이다
평생 남의 이름만 쓰다가
당신 이름 석 자도 새기지 못하고 쓰러진 아버지
처음으로 뒷동산으로 나들이를 가시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석수장이 아들이란 말에서 멀리 도망쳤던 나는
뒤늦게 손때 묻은 정을 들어
맨 처음 아버지 이름을 돌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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