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수필

등잔/신현림

에세이향기 2022. 1. 22. 11:56


등잔/신현림

 

 

불이 켜지면 마음은 더 이상 먼 데로 가지 않고 내 안으로 향한다. 홀로 있을 때의 외로움은 자아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해주고, 사람들이 모이면 등잔불은 가장 아름다운 빛을 뿜어낸다. 손의 감촉은 더 예민해지고, 사랑하는 자들의 손길은 더 부드러워진다. 까무잡잡한 얼굴은 빛나는 구릿빛으로 바뀌고, 흰빛의 얼굴은 은은하게 달빛으로 끌어당긴다.

 

하루 동안 노동으로 지친 기분은 평화롭고 아늑해진다. 쓸쓸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도 무엇이든 잘될 것 같은 기분으로 바뀌니 이 아담한 전등불은 밤 속에서 더욱 신비롭다.

 

등불을 보면 ‘생을 마감한 뒤에 남는 것은 그가 쌓아놓은 것이 아니라 나눠줬던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등잔의 철학이 바로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사람에게 빛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던가. 이 오래된 물건이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하게 다가온다. 그 사소한 것의 위대함을 기억하고 싶다.

 

언제였던가. 그 많은 세월이 다 가버렸어도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내 마음을 환히 밝히고 있다. 낡고 스산한 시대의 저편. 해 저물면 내가 살던 시골에는 전깃불이 자주 끊어지곤 했다. 그때면 조심조심 움직이며 흰 초를 찾아 촛대에 올려놓곤 했다. 그래서일까. 아예 밤 10시만 넘으면 불 켜진 집도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나의 엄마는 밤늦게까지 가게 문을 열어놓고 이불을 꿰매거나 자식들의 옷을 만들거나 기도를 올리셨다. 틈틈이 책을 읽으시던 아버지의 젊은 날의 모습도 아슴아슴하다.

 

시간이 가도 새것으로 머물고 그리움으로 남는 정겨운 기억 속에 엄마 냄새가 느껴져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미 사라진 어머니. 어둠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빛을 내어주는 등불은 그리운 엄마의 혼을 불러 내 마음을 흔들고 흐느끼게 하였다.

 

등불은 이제 내 인생의 아프고 힘들었던 추억까지 아름답게 바꿔놓는다. 나의 엄마처럼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가족을 섬기는 자세까지 일깨워준다. 그 거룩하고 신성한 사랑 앞에 내 가슴은 한없이 낮아진다.

 

문득 나는 수많은 등잔과 등불을 보고 싶어 분당에서 10분 거리의 등잔 박물관을 찾은 적이 있다. 그때 신라, 백제, 고려 시대 등잔을 보았다. 사람보다 오래 사는 긴 등잔이 기이했고, 새롭게 다가왔다.

 

박물관에서 제일 많은 조선 시대 등잔 중에 오드리 헵번을 닮은 등잔은 정말 늘씬했고, 지금의 플래시와 같은 조족등은 신기했다.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의 제등도 있고, 잊혀간 등잔을 보는 동안 우리 조상이 얼마나 근사한지 감탄했다. 낡아서 더 귀해 보이는 정겨운 등잔. 매혹과 행운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그 많은 등잔들을 보며 나는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책상 앞 등불 밑에서 긴긴 글을 쓰고 싶었다. 글로써 몽상으로써 꿈꾸기로써 우리를 사로잡던 철학가 바슐라르처럼.

 

그리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 글을 씀으로써 살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그 자신에 대하여 또 얼마나 관대한 일인가!) 기술에 의해서, 기술 속에서 태어나는 것. 고독의 거대한 밤샘으로 크나큰 이상이여! 그러나 그의 존재의 고독 속에서, 마치 삶의 흰 페이지에 대해 계시를 가졌던 것처럼 쓰기 위해서는 의식의 모험이, 고독의 모험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 등불 아래서 일기를 씀으로써 나는 다시 사는 것이다. 되는 일 없어 헤매던 마음을 추슬러 스스로를 다시 세워가는 일로써. 등불이 있는 곳에 추억은 타오르고, 인생은 옛것에 대한 회상과 더불어 흐르는구나.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울/장석남  (0) 2022.01.22
봇짐/이현경  (0) 2022.01.22
석유풍로/김해준  (0) 2022.01.22
지게/문태준  (0) 2022.01.22
나무 한 그루를 읽는 동안 / 최지안  (0) 2022.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