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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삶은 테크닉이 아니다/김서령

에세이향기 2022. 2. 24. 17:15

삶은 테크닉이 아니다

 


올해가 사흘 남았다. 지진과 해일이 남아시아를 휘덮어 수만명을 검불같이 끌고 가고 멀쩡하게 파안대소하던 사람이 배 속에 암세포가 가득 찼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래도 아침해는 잔인할 만큼 무심하게 떠오르고 앞산도 태연하게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새삼 사람의 무력이 실감나는 연말이다.

해는 사흘 뒤에도 분명 똑같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이미 낯설고 새로운 2005년의 해일 터이니 올해의 남은 사흘을 안타깝게 부둥켜안지 않을 수 없다. 뭘 할까 궁리하다 나는 결국 피같이 아까운 이 시간을 청소에 쓰기로 작정한다. 군사정부 시절 징역살이를 경험한 소설가 송기원 선생의 말 중 잊지 못하는 대목이 있다. "감방을 새로 옮겨가면 통 정이 안 붙는단 말이야. 그러면 한구석에 놓인 변기통을 온종일 닦아. 처음에는 회색이나 갈색에 가깝던 변기가 한 일고여덟 시간 박박 문질러 놓으면 하얀 사기질로 돌아오거든. 그래놓고 나면 고만 그 방에 정이 들고 견딜 만해진단 말이야."

청소! 젊어서는 청소하는 시간이 아깝고 억울했다. 걸레질을 하다 말고 젖은 걸레를 팽개치고 읽던 책의 모호한 행간 속으로 도망치곤 했다. 먼지 쌓인 방바닥과 부엌살림을 외면한 채 사랑의 기술, 유혹의 기술, 독서의 기술, 행복의 기술, 자기긍정의 기술, 심지어 휴식의 기술, 배신의 기술까지를 굵게 밑줄 그어 가면서 읽었다. 장롱과 냄비 바닥을 반질반질 윤내는 친구들을 은근히 경멸했음을 고백한다. 그건 시간과 맞바꾸는 작업인데 오죽 할 일이 없었으면 그따위 짓을 하고 앉았느냐고 내놓고 성토도 했었다. 그때는 현실과 동떨어진 진리 혹은 가치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인생의 핵심이 어느 날 짠 하고 눈앞에 나타날 줄 알았다.


 
마흔을 넘기면서 나는 어렴풋이 짐작하기 시작했다. 삶은 지식도 기술도 아니라는 것을, 인생은 어느 날부터 짠 하고 시작되는 게 아니라 지금 숨쉬고 있는 하루하루가 그 전부라는 것을, 일상의 의식주 안에 내가 찾는 형이상학이 숨어 있다는 것을. 당황하면서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이미 젊음을 저만치 흘려보낸 중년이 되어 있었다. 쉬 지치고 매사 자신이 없어졌다. 그 또한 우리 삶의 비밀 중 하나였다.

연말을 맞으면서 눈 안에 도는 애매모호한 물기를 안으로 들여보내는 기술도 늘어난 지금, 나는 삶은 테크닉이 아니라 노동이라고, 노동에 깃든 정성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올 연말 나의 가치는 흰 걸레를 꺼멓게 물들여 맑은 물에 활활 헹구어 빠는 데 있고, 때가 녹아든 구정물을 마음속 온갖 찌꺼기와 함께 쏟아부으며 그 기운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성을 바치는 데 있다. 그 옛날 정화수를 떠다 놓고 새벽마다 칠성님께 비손하던 할머니, 그 새벽 별빛과 찬 공기는 나를 무병무탈하게 키웠고 동시에 할머니 자신의 생생한 기쁨이었을 것이다.

올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는 공부 잘하는 법과 돈 잘 버는 법을 쓴 책이라 한다. 테크닉을 익혀 제 아무리 신분의 수직이동에 성공한다 해도 누군가 정성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으면 성공은 말짱 헛것이다. 그야말로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의 전통적 어법은 '정성'이고 구체적인 표현법 또한 '정성'이다. "사람은 설령 가짜일지라도 누군가 오랫동안 진심으로 정성을 바쳐주면 진짜가 되지. 그리고 한번 진짜가 된 사람은 영원히 진짜로 남는 거지." 정답은 바로 이것이다. 사랑, 유혹, 대화, 설득, 관계, 만남, 긍정, 행복의 핵심은 테크닉이 아니라 바로 정성이었다. 저 해일과 지진을 보면 자연 앞에 허망하게도 왜소한 인간이지만 우리 속엔 뿜어 올릴 정성이 있다. 그래서 허약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열 손가락으로 걸레를 꽉 움켜쥐고 유리를 닦고 마루를 닦는다. 뿌듯한 악력 속에서 희고 빛나는 알맹이를 꺼낸다. 이 야문 알맹이 안에서 내년을 살아갈 기운이 솟아날 것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