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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에 바친다/김서령

에세이향기 2022. 2. 24. 16:56

아카시아에 바친다/김서령

아카시아가 아니라 아카시라고?  침대 머리맡으로 아카시아 향기가 꿀처럼 흐르는 아침, 아카시아 꽃 위로 꿀벌 잉잉대는 소리 소란한 오월  오후, 아카시아 꽃주저리가 송이마다  빗방울을 달고 있는 어스름,그런 때엔 새로 바뀐 아카시라는 한글 표준어법  대신 애뜻하고 경쾌하게 두 입술을 활짝 벌려 <-아>라고 덧붙이는 걸 용서해줘야 한다. 비구니의 피부는 왜 저렇게 맑은 건가 늘 궁금했다. 밭일로 얼굴이 검게 그을렸어도 흰 살갗에 못지 않게 투명한 게 신기했다.유명 피부 미용실의 특수 석고 맛사지를 받는 것도 아닐테고 백화점 일층의 수입화장품 코너의 수십만원 하는 수분크림을 바르는 것도 아닐텐데... 여승들이 얼굴에 투명함과 윤기를 유지하는 비결은 생리심리학이 연구해볼 과제이기도 하고 뷰티 컨설턴트들이 주목해야 할 포인트같기도 하다고  생각해왔다.
오늘 난 그 비밀을 알아냈다. 산길을 올라가는데 저만치서 여승 하나가 내려오는 중이었다. 모퉁이를 돌면 그와 확 마주칠 판이었다.머리를 새로 깍아 이맛전이 파르랬다.인간 여자는 머리속에 저런 빛깔을 숨겨두고 있었구나!  그 푸른 두피는 비에 젖은 아카시아 꽃과 흡사한 빛깔이었고 계곡에 가득 덮인 물안개와 흡사하게 비현실적인 밀도였다. 산길에는 아카시 꽃향이 꿀처럼 흘렀다. 꿀같은 점성이 공기를 에워싸 나는 쉽게 발길을 뗄 수도 없었다. 어린 여승의 낯빛도 꿀같았다.모퉁이를 돌기 전에 여승은 돌연 개울가에 주저앉았다. 비로 불어난 개울물에 제 꿀같은 살갗을 담구고 거침없이 푸득푸득 씻었다.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면 저 노루같은 여승은 얼마나 놀래고 무안할까. 세수는 분명 무안한 짓은 아니다. 승려가 범해서는 안될 금기도 아니다. 그러나 세수하는 여승앞에 속세 사람이 나타난다면?  왠일인지 그의 눈에 안띠게 숨는 방식이 좋을 것같았다.본의 아니게 나는 숨어서 한 여승의 세수를 지켜봤다. 그런데 그건 세수만은 아니었다. 
 스물 두엇 됐을까. 그는 장난꾸러기 같았다. 얼굴을 푸득푸득 씻더니 고개를 하늘로 잔뜩 젖혔다. 그리고는 내려오면서 따 가지고 온듯한 아카시 꽃주저리로 얼굴을 고루고루 두드렸다. 눈에 코에 입술에! 입술에 꽃이 닿으면 그걸 이빨로 끊어 삼켰다. 혼자서 소리도 냈다. 호랑이가 토끼를 위협하듯 으앙, 으앙! 그러면서 아카시꽃 송이를 하나씩 잡아먹었다. 한동안 두드리고 소리내고 씹어먹고 하더니 아카시꽃을 개울가에 버리고 오던 길을 재빨리 달려올라갔다. 빗속을 달리는  재빠른 노루나 사슴같았다.  
 나는 가던 길을 계속 올라갈 수 없었다. 야생동물이나 신선 아니면  더 이상 올라오는 걸 거부하겠다는듯  안개가 내앞을 자욱히 가로막았다. 대신 방금 여승이 앉았던 개울가에 나도 앉았다. 똑같은 방식으로 세수를 했다. 곁에는 그가 버린 꽃주저리가 놓여있었다.똑같은 방식으로 그걸  얼굴에 대고 두드렸다.입술에 닿는 꽃을 혀를 내밀어 씹어봤다. 비릿했다. 상큼하고  들큰했다.코에 닿을 때 내몸은 잠깐 꿀벌이 되었다. 빨대를 깊이박아 벌처럼 꿀을 빨고 싶었다. 눈꺼풀 위에 얹힌 꽃은 또다른 세상이었다. 검은 내부에 들끓는 욕심과 집착들을 햐야스럼하게 분해해 개울 물위로  흘려보내도록, 온갖 어리석음과 화냄 위로  아카시 주저리처럼  환하게 내리비치도록, 꽃빛은 눈두덩 위에서 떨렸다.
내가 본건 혹은 관음보살의 현현이었을까. 늘 궁금했던 비구니의 피부미용법을 넌지시 알려주려고 내게 나타났을까. 하긴 꽃필때마다 그렇게 꽃송이로 얼굴을 두드린다면? 산에 피는 숱한 꽃송이를 다 그렇게 아항, 아항 따먹는다면? 
 들여다 보니 아카시 꽃은 세 손가락을 정교하게 오므린 형상이다.버스 정류장 앞 피부 미용실에서 시술하는 바큠마사지 장치보다 파워는 덜할지 몰라도 뺨을 두드리는 감촉은  한결 황홀했다.아하, 봄이 되고 꽃이 피면 ,여름이 되고 열매가 열리면, 온 산이 온통 비구니의  미용기구가 되겠구나,그래서 산속 여승들의 낯빛이 그토록 맑았던 거로구나!  그러나 오늘 본 비밀을  함부로 발설할 순 없다.  믿어줄 사람이 없을지도 모르고 혹 불교계가  신성모독한다고 버럭 화를 낼지도 모르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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