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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아름다운, 낡은, 빈,집/김서령

에세이향기 2022. 2. 24. 17:23
아름다운, 낡은, 빈,집/김서령
아름다운, 낡은, 빈,집? 하나의 명사앞에 세 개의 관형사를 늘어놓는 것은 온당한 짓이 아니다. 아름다운을 빼거나 낡은을 빼고 빈 만 둬야한다고 나도 생각한다. 그러나 저 빈 집은 낡지 않았다면 빈 집이 될 리 없고 낡지 않은 빈 집이라면 비었다는 의미는 전연 달라진다. 저 집은 말하자면 천명을 다한 집이다. 자연사해서 자연 속에 녹아들어 이물감이 사라진 집이다. 그랬기에 아름다운을 그 앞에 척 걸쳐놓는 것 역시 자연스러울 수 있다.  아름다운을 빼고 낡은과  빈만을 둘 수도 물론 있었다.
 
  요즘의 글쓰기는 너무도 간단해 내가 맨처음 글쓰기를 연습하던 시절처럼 지우개로 뭉개거나 줄을 죽죽 긋거나 종이를 구겨서 내던질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커서를 화살표에 올려놓고 자판을 누르기만 하면 감쪽같다. 그러나 나는 또 이 감쪽같음에 시비를 걸게 된다. 처음에는 아름다운이라고 썼다가 나중에는 그게 엑세서리 과용같아서 지웠다는 그 마음의 움직임이 남아있지 않고  다 사라지는 게  서운하다. 그래서 '아름다운'을 영 지울 수가 없다. 간략하게,심플하게! 가 최고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주렁주렁 관형사를 달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컴퓨터 글쓰기의 매정함 때문이다. 지우개로 지운 후에 남는 흔적들, 잉크로 그은 줄 위에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게  떠돌며 머무는 망설임의 흔적들이 감쪽같이 지워지는 것이 나는 아깝고 싫다.
 
 그러나 저렇게 주렁주렁 꾸밈말을 겹겹이 달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나의 노화 때문일른지도 모른다. 노화라는 말이 과격하다면 너그러움 정도로 대체해도 가당하리라.  너그러움이란 생리적으로 노화하지 않으면 생겨나기 어렵다. 나이들어 보니 그걸 알겠다. 젊음이 너그럽다는 것은 자연에 반하는 일이다. 왕성한 생명력은 양의 기운이다. 늦 봄에 덩굴손을 뻗는 오이순이나 칡넝쿨같다. 치솟는 생명력은 남의 입장을 배려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이들면 달라진다. 저기 지금,  내 책상너머에서 묵묵히 이파리를 떨구며 나를 마주 바라보고 선  참나무같다. 다 용납할 수있다. 내 인생에서 나 하나만 중요한 게 아니라 너도 중요했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아니 너 없이는 나도 없었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된다. 내게서 떨어진 이파리가 네 뿌리로 가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네 몸에서  떨어진 이파리는 다시 내게로 올 테니까.
 
 뿐만 아니라  관점이 지상에 있지 않고 가볍게 위쪽으로 날아오른다. 전체가 한 덩어리로  보인다 . 너와 내가 실은 따로 존재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서서히 납득하게 된다. 아름다운과 낡은과 빈을 주렁주렁 달고 있어도 괜찮다 싶어지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젊은 나라면 빈 집에 그쳤을 것이다. 낡은을 굳이 매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간지럽게 ‘아름다운’이라니. 택도 없을 소리다. 저런 들큰한(감정이 듬뿍 배어든 ) 단어를 제목에다 척 붙여놓는 일을 나는 신파거나 무신경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실은 ‘아름다운’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그런데도 아름답다는 말을 자주 쓸 수 없었던 건 그 말의 과잉유통이 달갑잖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단어의 언저리엔 늘  감정과잉이 서성거렸다. 과잉유통도 감정과잉도 난 정말 비위에 맞지 않았다. 살점이 다 떨어져나간 백골만을 선호했다. 돌아보면 그것 역시 과도한 겉멋의 혐의가 있긴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젊었던 나는 젊지 않아졌다. 그런 어느날 저 집은 양평 어느 골짝을 지나는 내 눈에 뜨였다. 나는 차를 멈췄다. 앞개울엔 아직 맑은 물이 흐르고 개울가엔 물봉선이 보라와 분홍의 사이쯤 되는 꽃을 싫카장 피워놓고 있었다. 마을은 없었다. 사람이라곤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 지점이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른 후에도 나는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개울 곁에 자리를 깔고 앉아 오래오래  저 집을 바라봤다. 아니 실은 저 집의 뜰 가까이 다가가 봤다.  온통 씀바귀였다. 
 
사람 흔적이 오래 전에 사라진 빈 집은 주권을 씀바귀에게 양도하고 있었다. 온전히 씀바귀밭으로 변한 뜰, 낡아 떨어진 문짝, 입을 벌린 장독,허물어져 내리는 흙벽,  바람이 불자 씀바귀꽃은 낡은  집을 싣고 날아오를 듯 흔들렸다. 아름다움 그 이상의 풍경이 거기 있었다.  장미와 국화꽃을 넘치도록  꽂은 다이애나 비나 마이클 잭슨의 주검을 나는 봤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방에 씀바귀꽃이 가득 피어 흔들이는 낡은 집의 주검만치 나를 뒤흔들진 못했었다.   씀바귀꽃으로 둘러싸인 저 집의 몰락이 내겐 훨씬 더 호젓하고 다사롭고 평화롭고 자족적이고...요컨대 아름다웠다.모름지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저렇게 몰락해야 한다. 천천히 시간에 풍화되면서 분해되어야 한다.  이것이 빈 집 앞에 아름다운,을 끝내 빼 버릴 수 없었던 이유다.  
 




거기 씀바귀꽃이 피어있지 않았더라면, 
씀바귀꽃이 온통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더라면
집이 씀바귀꽃을 따라 천천히 흔들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저 집을 그냥 낡은, 빈, 집 정도로 말하고 말았을 것이다.
내가 암만 아름다움에 쉽게 허물어지는 기질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리고 암만  자연스런 몰락 혹은 죽음을 동경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