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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예산장터 버들국수 집/김서령

에세이향기 2022. 2. 24. 17:37

예산장터 버들국수 집/김서령

예산 장터엔 휘장을  친 국수집이 5군데 있다. 국수뿐 아니라 국에 만 밥도 판다. 예산은 언제부턴가 장터국밥과 장터국수가 유명한 고장이 돼버렸다. 예산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들이키고 갱지에 싼 국수 한 묶음을 사기 위해 충남 내륙에선 일부러 예산장(1일과 5일)에 들른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예산국수는 슈퍼마켓에서 파는 기업형 국수가 아니다. 기계와 사람이 반반쯤 품앗이를 해서 만드는 핸드메이드 국수다. 게다가 햇살속에 널어 말린다. 이게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국수들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깊은 맛을 지닌다는 것이다. 맛뿐 아니라 씹는 감각인 치감( 齒치 感감 )과  목구멍에 넘기는 감각인 설감( 舌설 感감 )에 있어서 공장국수들이 범접 못할 매력을 지닌다는 평가였다.  대도시는 물론이고 인구 5만 미만의 자그만 읍단위 장터에도 국수를 널어 말리는 풍경은 이제 거의 사라져버렸다. 일손도 없고 매출도 없다. 요컨대 수지가 맞지 않는다. 그런데 예산읍엔 최근 국수집이 하나 더 생겼을 정도라니 연유가 뭘까.나이 들어도 도무지 호기심이 줄지 않는 나는  예산장터로 달려갔다. 창밖엔 올해 첫눈이 히끗히끗 날렸다.날리는 정도가 아니라 버스에서 내다보는 밭두둑엔 이미 눈이 10센티 넘게  쌓였다. 채 단풍들지 않아 아직 푸릇푸릇한 활엽수 위로도 눈은 하얗게 쌓였다. 사철 푸른 소나무나 댓잎 우에 얹힌 눈은 상쾌한데 제 잎을 채 물들이지도 못한 채 엉성하게 눈을 맞는 활엽수는 살림간수를 제대로 못하는 칠칠치 못한 아낙을 보듯 을씨년스럽고 민망하다.
 그나저나 예산사람들이 전국에서 가장 국수를 좋아하는가.  예산이 특별히 국수 건조에 기후가 탁월한가. 밀가루 공장이 가까운가.소금밭이 인근인가? 서양식 합리성에  익숙해져버린 우리는 뭔가 손에 꽉 잡히는 이유를 쥐어주지 않으면 안정을 잃고 허둥댄다.


 예산장터엔 지금 국수 공장이 세군데 있다. ( 국수를 삶아서 파는 집과  구분하기 위해 일부러 공장이란 말을 쓴다 .그렇지만 공장이란 말은 가당찮다. 서너평 정도의 공간에 나무판자로 틀을 짠 낡은 기계 한대 뿐 아무런 설비가 없다.) 예산국수와 시장국수와 버들국수! 버들국수는 유리문에 쓰인 글씨뿐 간판다운 간판조차 없다. 그러나 세집 중 역사가 깊은 곳은 단연 버들국수집이다.
 지금 이곳 사장은 눈빛이 선하고 콧날이 날렵한 김성근씨다. 올해 예순살인데 웃을 때 표정은 헤실헤실 여린 것이 스물일고여덟난 청년같다. 이번 예산길에 난 느낀 게 제법 많다. 서울사람들이 에너지 소비를 ‘미국인’처럼 제멋대로 ‘겁없이’ 하고 있다면 예산같은 읍단위 사람들은 ‘아시아, 아프리카인’ 처럼 두렵게 ‘겁내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선 일단 실내에만 들어서면 바깥 온도야 어찌됐든 춥지 않고 덥지 않다. 난 겨울에 두터운 옷을 입지 않은지 오래됐다. 일단 실내에 들어가면 겨울에도 늘 땀이 났으니까. (이건 내 갱년기 장애와도 상관있겠지만) 외투만 벗으면 실내온도는 봄과 가을이, 여름과 겨울과 크게 달라질 게 없다. (나만 지나치게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건가. 갑자기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럭 미안해진다. 우린 정말 죄짓는 줄도 모르게 나날이 죄를 쌓고 있다. )그런데 예산읍엔 난방을 한 집이 없다. 일부러 휘장을 들쳤던 장터국수 집도 내가 둬시간 머물던  버들국수집도 먹음직스런 대봉홍시를 몇 개 사려고 들렀던 역전 구멍가게에도 그 흔한 전기난로 하나 켜놓지 않았다. 라디오에선 서해안 내륙지방 적설량 18센티라고 떠들어대면서 눈이 펄펄 날리는 날씨인데도!


  각설하고( 아아, 오랜만에 써보는 그리운 언설이다) "문 연지 몇 해나 됐어요?“ 물었을 때 김성근 사장은 ”한 4년 됐으까유“ 하면서 수줍게 웃었다. 순간 나는 집을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어? 40년 된 집이라고 들었는데?“라고 당황했지만 세상에, 그건 내가 미처 알아듣지 못한 충청도식 농담이었다. 시장통 야채장수 할머니가 천원짜리 풋고추 한무더기를 ‘만원’이라고 과장하듯 예산장터 국수집 주인은 40년을 4년이라고 1/10로 할인을 했다.이건 위악도 아니고 능청도 아니고 겸손과도 다르다. 굳이 적당한 말을 찾자면 세월에 대한 여유? 아니 방관 혹은 조롱이랄까.
  “어언 40년 가까이 돼 가유. 그땐 워낙 먹을 게 없었으니께 한끼 때우려고 국수 찾는 사람이 많앗잖유. 시방은 몽땅 시멘트로 쳐발라 놨지만 저기 시장통에 그땐 냇갈이 흘렀시유. 국수를 말려서 거기 다리 밑으로 내다 팔곤 했슈. 그땐 다리 밑으로 장이 섰거든유. 시방이야 먹을 게 흔해졌는디 누가 국수를 배 채우려고 먹남유. 다  맛으로 먹지유. 우리집은 옛날  생각하고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유.  요즘도 전국 곳곳에 국밥마는 집들은 저희집 국수로 말아야 맛이 난다고 전화로 주문하고 그려유.“ 버들국수 맛이 다른 국수와 어떻게 다른가를 끈질기게 물었을 때  어렵게 나온 대답은 담백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맘에 쏙 들게 확실했다.  “자셔 보시믄 알아유.” 


 국수의 재료는 물론 밀가루다. 미국산 수입밀가루를 쓴다. 귀하고 비싼 우리밀 밀가루를 굳이 찾는 건 장터국수용 국수집에 어울리지 않는 호사일 뿐이다.  만드는 공정은 단순하고 간단하다. 밀가루에 적당량의 전분과 맹물과 소금을 탄 물을 적절하게 붓는다. 40년 경력의 국수기술의 노하우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맹물과 소금물과 감자가루의 비율을 잘 맞춰야 국수 맛과 씹히는 감각이 공히 좋아진다.  기계에 가루 넣고 물 부으면 반죽은 절로 되고 밀가루 반죽이  넓적하게 눌려지는 압연작업도 자동으로 진행된다. 이때 버들국수집의 숨은 비결이 한번 더 나온다. “ 밀가루를 한번 눌르면은 차지기가 덜해유 .우리는 먼저 뽑아져 나온 늠을 겹쳐서 한번 더 눌러줘유. 그래 그런가 우리집 국수가 쫄깃거린다고  해쌓데유. 손님들이 그러니까 그런가 하지 내가 뭘 아남유.”
 압연 다음 과정은 썰기다. 이것도 자동이다. 광목처럼 둘둘 말은 밀가루 말이를 올려놓고 기계 손잡이를 돌려 반죽 두께를 조절하고 칼날을 선택해 걸어주면 일정한 굵기로 썰려 나온다. 지금 버들국수가 만드는 국수 종류는 세 가지다. 가는 면발의 소면과 중간 굵기의 중면과 말리지 않고 굵게 썰어파는 칼국수.
  일꺼리는 정작 국수를 썰고 난 후에  더 많아진다. 기계 곁에 지켜서 있다가 썰려나오는 국수를 대나무 꼬챙이에 째빨리 걸어야 한다. 민첩하고 정확한 손길이 필수다. 흡사 포목점에서 자로 비단필을 재단하듯 국수를 걸어 천정아래  걸쳐둔 가로쇠에 일단 건다. 걸었다가  바람 잘 통하는 바깥에 내다걸어 말린다. 동해 바닷가에서 황태를 말리는 덕장과도 비슷한 소나무 틀이 버들 국수집앞에 마련돼 있다.대나무 꼬챙이도 수백개 늘어놓였다. “저건 누가 만들었어요?” “ 누가 만들긴 누가 만들어유? 그냥 내가 만들고 말쥬” “ 저런 방식은 누구한테 배웠어요?” “ 배우긴 누구한테 배워유? 그냥 첨부터 그렇게 만든 거쥬” 제대로 된 답이 아닌 것같지만 이처럼 정확한 답도 없다. 말투만으론 퉁명스러운 것도 같지만 표정과 함께 보면 그렇게나 곱고 깨끗할 수가 없다. 수줍고 민망해서, 별거 아닌 것을 자꾸 물어쌓는게 어색하고 게갈 안나서 (  이말은 이문구 선생의 글에서 배운 걸 한번 써먹어보지만 쓰임새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몸을 비비 꼰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노련한 인터뷰어.“그래도 뭐라도 본 게 있었으니까 따라 만들었을 거 아닙니까” 자꾸 말꼬리를 잡아챘더니 “아, 아부지가 하셨쥬. 아부지 하는 거슬 보고  따라했쥬” 한다. 이런 대책없이 비협조적인 인터뷰이 같으니라고. 선친이 국수방앗간을 했다는 소리를 이야기 꺼낸지 한 시간이 지나서, 질문이  거의 바닥났을 무렵에야 마지못한 듯 내뱉는다. 굳이 감추려고 그런 게 아니라 대수롭잖은 일이라서 말하지 않은 거다. 참 나.
 . “아부지가 하신 건 삯국수여유.  전에는 집집마다 밀농사를 지었으니께 밀가루를 빻아가지고 오믄 국수를 맨들어주고 삯을 받았쥬....그거까지 치면 40년이 머야, 60년도 넘을규.” 선친은 국수를 판 게 아니라 밀가루를 국수로 만들어준 후  품삯을 받는 방앗간 일을 했다. 예산 인근에 밀가루 농사가 사라지면서 국수방앗간은 자연스럽게 국수공장이 돼버렸다는 거다.
 예산에 왜 국수가? 라는 질문과 함께 내겐 하고많은 이름 중에 하필이면 왜 버들국수?라는 의문이  있었다. 첫 번째 대답은 결국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다. 대신 두 번째 대답은 스스로 얻어냈다. 김성근 사장은 “글쎄,모르겠네유”하며 여전히 쑥스럽게 웃었지만 버들국수 집앞에 휘장처럼 하얗게 흔들리는 국수발을 보고 있는 새 대답은 절로 떠올랐다. 국수발이 바로 버들이었다. 머리 풀고 휘늘어져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버들!
  그렇게 대기중에서 바람과 태양빛을 쐬며 마른  국수가 인공적인 열풍으로 건조된 국수보다 맛있을 건  당연하다. 국수 말리기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빛을 너무 세게 쬐면 부스러지고 덜 쬐면 수분이 남아 휘거나 상한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말리는 시간이 다 다를 수밖에 없다. “ 입에 넣고 끊어봐서  딱 소리가 나면 다 말랐다는 신호지유. 우리야 인제 척보면 알쥬.”


  얘기 중에도 심심찮게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는 고객이 있다. 낱묶음으로도 팔고 12묶음이 든 박스로도 판다. 1.6킬로 한덩어리에 4천원. 12묶음 한박스는 3천원 에누리해서 4만5천원.  "원래는 3천원이었슈.근데 작년에 밀가루 값이 하도 올라 할수없이 1천원을 올려받아유“ 밀가루 20킬로그램에 3만원. 그걸 1.6킬로짜리 12묶음 국수모양으로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쯤. 그 젖은 국수를 문밖에 널어 여름엔 5-6시간, 겨울엔 이틀정도  말렸다가 손으로 알맞게 뚝뚝 끊어 누런 갱지로 둘둘말아 포장한다. 칼을 쓰지 않고 손으로 부러뜨리는 건 그래야 부스러기가 적게 나오고 간편해서란다. 포장한 국수는 다시 원래의 밀가루 포대에 담긴다. 20킬로짜리 밀가루는 소금과 전분과 물이 섞여 부피가 늘었다가  물기가 증발하면서 다시 제 무게로 돌아온다. 낱알에서 가루로, 가루에서 다시 빼빼하고 길쭉한 수천개의 막대기로 변하는 밀의 날렵한 변신. 하루 이틀뒤 국수로 변해 다시 그 포대에 담기므로 버들국수공장엔 따로 포장용지조차 필요치 않다. 부재료라곤 오로지 국수다발을 쌀 신문지나 갱지  뿐. ” 아. 왜 그러슈. 소금하고 물하고 전분도 들잖유.“억울해하지만 버들국수 공장에  필요한 건 오로지 밀가루와 주인의 손뿐이다. 재고도 없고 불량도 없고 반품도 없고 유행도 없다.  속으로 얼른 계산해보니 밀가루 한 포대를 국수를 뽑아주는데 재료비 빼고 1만 5천원이 남는다. 물론 감가상각비 인건비 다 포함한 금액이다. 이런 질문을 슬쩍 던져 버들국수의 재무제표를 짐작하렸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영........ 난감하다.
 “하루에 밀가루 몇 푸대를 뽑으세요?“” 대중있남유. 하루 두 포도 하고 열 포도 하고 ..잔치집에서  주문 들어오면 스무 포도 하쥬.“


 혼자 만들어 혼자 포장하고 혼자 판매하고 혼자 운송하지만 대개는 부인이 나와서 거든다. 그러니 버들국수집은 사장 1인에 직원 1인의, 임금착취없고 유유자적한 민주적 공장이다.  거기서 생산됐으니 버들국수는 씹을수록 구수하고 치감과 설감이 세상 어느 음식보다 빼어난 <착한>음식이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