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론 / 김나영 나는 바닥이 좋다 바닥만 보면 자꾸 드러눕고 싶어진다 바닥난 내 정신의 단면을 들킨 것만 같아 민망하지만 바닥에 누워 책을 보고 있으면 바닥에 누워서 신문을 보고 있으면 나와 바닥이 점점 한 몸을 이루어가는 것 같다 언젠가 침대를 등에 업고 외출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식구들은 내 게으름의 수위가 극에 달했다고 혀를 찼지만 지인은 내 몸에 죽음이 가까이 온 것 아니냐고 염려 하지만 그 어느 날 내가 바닥에 잘 드러누운 덕분에 아이가 만들어졌고 내 몸을 납작하게 깔았을 때 집 안에 평화가 오더라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도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도 알고 보면 모두 바닥이 부실해서 생겨난 일이다 세상의 저변을 조용히 받치고 가는 바닥의 힘을 온 몸으로 전수받기 위하여 나는 매일 바닥에서 뒹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