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5/02/02 3

목성균 수필 연재 - 사기등잔

목성균 수필 연재 - 사기등잔시골집을 개축할 때, 헛간에서 사기등잔을 하나 발견했다.컴컴한 헛간 구석의 허섭스레기를 치우자 그 속에서 받침대 위에 오롯이 앉아 있는 하얀 사기등잔이 나타났다. 등잔은 금방이라도 발간 불꽃을 피울 수 있는 조신한 모습이었다. ‘당신들이 나를 잊어버렸어도 나는 당신들을 잊어 본 적이 없어’ 하는 듯한 섭섭한 기색이 역력했다.나는 등잔을 보고 적소(謫所)의 방문을 무심코 열어 본 권모 편의 공신(功臣)처럼 깜짝 놀랐다. 하얗게 드러난 등잔의 모습이 마치 컴컴한 방안에 변함없이 올곧은 자세로 앉아 있는 오래된 유배(流配)의 모습 같아서였다깊은 두메에 전깃불이 들어온 것은 일대 변혁이었다.제물로 바칠 돼지 멱따는 소리와 풍물소리가 골짜기를 울리던 점등식 날, 마침내 휘황찬란한 전깃..

좋은 수필 2025.02.02

누름꽃 / 김희숙

누름꽃 / 김희숙겨울 산은 묵직하다. 쌓인 눈 때문이 아니다. 겉옷 벗은 산은 생명을 키워낸 흙의 두께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눈비 버티는 어깨에 육중한 바위까지 얹었다. 불갑산은 불가의 으뜸 고찰古刹을 품어서인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하중을 이기지 못한 산 그림자는 저수지 밑으로 가라앉는다. 세상사 밥그릇 무게는 또 얼마나 엄중한지. 자신이 가진 온 힘을 쏟아 지탱한다. 때로는 지친 몸이 밥숟가락 들 기력조차 없을 때도 생긴다. 이럴 땐 힘 얻을 곳으로 길을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영광산림박물관으로 들어선다. 살던 터에서 벗어나 한없는 가벼움으로 꾸민 정원이 있다기에 찾아왔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꽃밭이다. 흙 한 톨 없는 유리벽 안에 꽃들이 각기 다른 색을 뽐내고 있다. 가지 끝에 꽃송이를 매달거나..

좋은 수필 2025.02.02

목성균 수필 연재 - 옹기와 사기

목성균 수필 연재 - 옹기와 사기  사기(砂器)나 옹기(甕器)나 다같이 간구한 살림을 담아 온 백성의 세간살이에 불과하다. 다만 사기는 백토로 빚어 사기막에서 구웠고, 옹기는 질흙으로 빚어 옹기막에서 구웠다는 점에서 근본이 좀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토광의 쌀독이 그득해야 밥사발이 제 구실을 했고, 장독에 장이 그득해야 대접, 탕기, 접시들이 쓰임새가 있었다.당연히 옹기가 살림의 주체이고 사기그릇은 종속적 위치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기껏해야 여염집 살강에나 놓일 주제에 제가 무슨 양반댁 문갑 위에 놓인 백자나 청자라도 되는 양 행세를 하려 드는지, 나는 사기가 마땅치 않았다. 어린 시절, 나는 부엌의 살강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를 않았다. 살강에는 윤이 반짝반짝 나는 하얀 사기그릇들이 질..

좋은 수필 202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