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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국물/신달자

에세이향기 2024. 3. 31. 01:07
국물/신달자 




메루치와 다시마와 무와 양파를 달인 국물로국수를 만듭니다 
바다의 쓰라린 소식과 들판의 뼈저린 대결이 서로 몸 섞으며 
사람의 혀를 간질이는 맛을 내고 있습니다


바다는 흐르기만 해서 다리가 없고
들판은 뿌리로 버티다가 허리를 다치기도 하지만 
피가 졸고 졸고 애가 잦아지고 서로 뒤틀거나 배배 꼬여 
증오의 끝을 다 삭인 뒤에야 고요의 맛에 다가 옵니다 


내 남편이란 인간도 이 국수를 좋아하다가 죽었지요
바다가 되었다가 들판이 되었다가 들판이다가 바다이다가 
다 속은 넓었지만 서로 포개지 못하고 포개지 못하는 절망으로 
홀로 입술이 짓물러 눈 감았지요 


상징적으로 메루치와 양파를 섞어 우려낸 국물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바다만큼 들판만큼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몸을 우리고 마음을 끓여서 겨우 섞어진 국물을  마주보고 마시는
그는 내 생의 국물이고 나는 그의 국물이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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