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수필

개똥벌레 /고윤자

에세이향기 2024. 4. 20. 05:49

 

개똥벌레 /고윤자
                                                                                                                 


 온몸을 휘감으며 정욕의 불길이 타오른다. 그 불길에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툭툭 터지며 황홀경으로 눈을 뜬다. 일순간이나마 속내의 갈등과 고뇌까지도 연소해 버리는 불꽃이다.
숱한 남자에게 몸을 내맡겼던 그녀는 되돌아서며 말한다. 사내들이 돈벌이와 출세를 위해 땀 흘리고 인생의 가시덤불과 유혹이 쳐놓은 낚싯밥에 걸려 괴로워할 때, 자신의 인생은 그런 남정네들을 위한 삶이 아니었겠느냐고. 벌레처럼 살아 온 한세월이었지만, 어둠 속에 빛을 내는 구원의 개똥벌레이었을 순간은 행복했었노라고. 비록 손가락질 받을 인생이지만, 그 맛에 취해 자기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을 방기하고 모독했었다고 털어 놓는 그녀의 목소리에 굴곡이 인다.
그녀는 내가 약국을 하면서 알게 된 춘자라는 이름의 아가씨였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우연히 만난 언니에게 끌려 요정에 첫발을 들여놓는다. 그렇게 맺은 인연이, 지체 높은 귀인들과 멋을 아는 손님만을 선발하여 수준 높은 서비스로 사내들의 밤을 즐겁게 해 주는 화류계의 인생이 될 줄이야. 한때는 강남에 포진한 룸살롱으로 자리를 옮겨 정.재계를 비롯한 상류층을 자신의 손으로 떡 주무르듯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누가 세월을 비켜갈 수 있을 것인가. 중년이 되면서부터 어둡고 퀴퀴한 방석집을 떠도는 신세로 떨어지고 만다. 깔끔하고 새침 떠는 젊은 아이들보다는 널브러져 있는 듯한 늙은 여자들과 화투짝을 매만지며 세월을 삼켰다. 상큼하고 싱싱한 ‘나가요 걸’들이 뭇 남성들을 사로잡으며 밤의 문화를 주도하고 있을 때, 그녀는 이미 ‘화류계의 아웃사이더’로 분류된다. 우중충하면서도 퇴폐적인, 그러면서도 피학과 일탈이 묘하게 뒤섞이며 뒷골목을 전전한다. 쉰이 가까운 나이에도 화류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머물며 짙은 화장으로 청춘을 추억하는 그녀를 보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경기로 환자 수가 줄자, 내가 다니던 직장도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럴 때 언제나 나이가 많은 사람 순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 첫 희생자가 바로 나였다. 싫지만 나는 또 다른 직장에 손을 내밀어야 했다. 가는 곳마다 ‘학번’을 묻는 것으로 면접이 시작된다. 젊음이 간판인 그런 사람들에게 나의 나이는 부끄러운 수치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노골적으로 얼굴을 훑어보는 눈길을 피하며, 학력이나 경력으로 말하자면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고 변명하듯 웅얼거린다. 얼마든지 당신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다고, 어디 우리들이 하는 일이 힘으로 하는 일이냐고 마음속으로 되묻는다. 내 자신의 사업장을 그만두고 다른 사람 밑에서 전전한 것이 벌써 스무 해가 다 되어간다. 매끄럽지 못한 친화력과 책임지는 삶이 버거워 어려운 길을 회피하다 보니 ‘파트타임’ 인생이 되고 말았다. 어깨의 힘을 덜어내려고 선택한 길이 이럴 때는 몇 배로 힘에 겹다.
몇 번이고 얼굴을 두드리고 정성껏 피부를 손질한다. 앞머리를 이마 위로 내려 새로 돋아나는 흰머리를 감춘다. 수분과 유분을 덧발라 주름을 잠시라도 사라지게 만든다. 지적으로 보이면서도 발랄함이 엿보이는 옷을 선택한다. 대화를 할 때면 되도록 빠르고 앳된 목소리로 얘기하려고 애쓴다. 고용주와의 인터뷰가 있을 때마다 내가 일상적으로 하는 짓거리들이다.
가는 곳마다 나의 화려한 경력을 떠벌린다. 어디에서 몇 년 일하고 그 방면에서 얼마나 고참인가를 역설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만나기 위해서 서울에서부터 찾아오기도 하고, 어떤 주인은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얼마만큼의 계약금과 연봉을 내걸었는지를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내가 이런 넋두리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주인의 얼굴은 반비례로 냉정해지고 몹시 지루해 한다. 약간은 비웃는 얼굴로, 다른 사람을 이미 채용했다거나 자기네 약국엔 새내기가 아니면 필요치 않다고 중간에서 말을 자른다. 오래된 능력자보다 일은 못해도 좋으니 풋풋한 젊은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순간 한물 간 퇴기처럼 난 비참하고 초라해진다.
이제 고용주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거의 ‘예의’에 속한다고 믿고 받아들인다. 늙었다는 소리를 듣는 지금은 나도 모르게 내 말과 행동에 비겁함이 스며들어 있음을 보고 스스로 놀란다. 나이로 인한 겸허함이라고 자위해 보지만, 뒤집어 속내를 살피면 당당하지 못함을 감추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그래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 연세에 일을 하는 것이 부럽다고들 하니 그나마 견뎌 낼 힘이 생겨나는지도 모르겠다. 당당함과 비겁함, 떠나가 버린 것과 소유하고 있는 것은 결국엔 두 얼굴을 가진 하나의 본질인 것이다.


젊음은 결코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다. 지금 늙어 있는 우리도 다 한때는 젊음을 소유했던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과,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늙음이 그들 앞에도 성큼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기에 젊음을 앞세우는 치기에도 그리 노엽지 않다. 나도 지나간 다른 늙음 앞에 이유 없이 당당했던 시절을 기억하니까.
춘자가 아직도 그 생활을 떠나지 못했듯이, 나도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 한 손에는 새로운 약에 대한 설명서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교통카드가 담긴 작은 손가방을 들고 출근을 서두른다. 화장을 하고 흰머리를 감출 때의 비겁함은 애써 떨쳐버린다. 체머리를 저으며 생각들을 하늘로 날려 보낸다. 길지 않은 시간 뒤에 뒤따라오는 후배들도 나와 같은 크기로 상처받은 자존심을 달래느라 괴로워할 것이고, 그것이 자연이고 섭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므로.
새로운 처방을 익히고 있는 두려움과 설레임이 내게 있고, 아직도 경력자를 인정해 주는 고용주와 환자들의 기대가 있어 가슴이 뛴다. 환자들에게 약을 주고 그들의 아픔을 듣고 있노라면, 그들로 인해 나의 노고를 보상받는다는 기분을 문득문득 느끼곤 한다. 눈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복잡한 처방전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아침, 점심, 저녁으로 분리해 조제해 주는 일은 얼마나 큰 보람과 환희를 안겨주는가. 눈망울을 반짝이며 나의 ‘복약 지도’를 열심히 듣고 있는 환자들이 있어 나는 아직도 어둠을 밝히는 개똥벌레임을 스스로 확인한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늘의 내력 / 서은영  (1) 2024.04.20
조각보/피귀자  (2) 2024.04.20
녹/이두래  (2) 2024.04.20
자장가 가수 / 이미영  (1) 2024.04.20
정여송 수필 읽기  (2) 2024.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