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다리/황진숙 정지문을 연다. 볕살 몇 조각이 고개를 들이민다. 어두컴컴한 시야에 들어오는 부뚜막이 휑뎅그렁하다. 터줏대감인 가마솥이 퇴물 취급을 받으며 고물상에 팔려 간 지 오래다. 이빨 빠진 잇몸처럼 돌아오지 못할 짝을 기다리는 아궁이가 스산하다. 종지를 놓아두던 살강이며 찬장이 사라진 곳에 쌓인 먼지와 처진 거미줄로 이미 부엌은 풍화에 들었다. 그을음이 까맣게 내려앉은 흙벽마저 기울고 있어 한때는 이곳이 부엌이었다는 기억조차 사라지려나 보다. 밥물이 끓어 넘치는 소리, 타닥거리는 장작불 소리, 도마질 소리를 떠올리기가 왠지 객쩍어진다. 서늘한 기운에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낯익은 기물이 눈에 들어온다. 기력이 다한 듯 한쪽 귀퉁이에 기대어 있는 쳇다리다. 사시랑이 몸으로 천장에서 떨어지는 흙 부스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