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는 다섯 번을 죽어서야 김치가 된다
- 김삼환
순식간에 뽑혀 나와 부르르 떠는 배추
그렇다 분수처럼 절정에서 꺾이는 것
전율은 솟구친 몸이 떨어질 때 오는 거다
증거는 충분하지, 두 쪽으로 배를 갈라
차곡차곡 쌓아 온 이력들을 흔드는 것
오로지 결기(潔己)하나로 한 번 외쳐 보는 거다
소금기가 구석구석 온 몸으로 스며들 때
누구인들 한 번쯤 이렇게 푹 젖다 보면
사나흘 생각이 깊어 돌아갈 수 없는 거다
고추 마늘 온갖 양념을 한 통속에 비벼서
덥고 춥고 맵고 짠맛을 한꺼번에 겪는 것
세상의 눈치 살피며 풀 죽을 수 있는 거다
입 안에서 씹힐 때 마지막 숨 거두며
다섯 번을 죽어서야 맛을 내는 배추처럼
몇 번을 까무러쳐야 시 한 편이 되는 거다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전거 소개서 / 이예연 (0) | 2023.03.14 |
---|---|
묵은 김치 사설(辭設) /홍윤숙 (2) | 2023.03.14 |
돌이라는 새/조선의 (0) | 2023.03.13 |
간고등어/김완수 (0) | 2023.03.09 |
소금 흔적/김현희 (0) | 2023.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