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시

배추는 다섯 번을 죽어서야 김치가 된다

에세이향기 2023. 3. 14. 13:40

배추는 다섯 번을 죽어서야 김치가 된다

- 김삼환

 

 

 

순식간에 뽑혀 나와 부르르 떠는 배추

 

그렇다 분수처럼 절정에서 꺾이는 것

 

전율은 솟구친 몸이 떨어질 때 오는 거다

 

 

 

증거는 충분하지, 두 쪽으로 배를 갈라

 

차곡차곡 쌓아 온 이력들을 흔드는 것

 

오로지 결기(潔己)하나로 한 번 외쳐 보는 거다

 

 

 

소금기가 구석구석 온 몸으로 스며들 때

 

누구인들 한 번쯤 이렇게 푹 젖다 보면

 

사나흘 생각이 깊어 돌아갈 수 없는 거다

 

 

 

고추 마늘 온갖 양념을 한 통속에 비벼서

 

덥고 춥고 맵고 짠맛을 한꺼번에 겪는 것

 

세상의 눈치 살피며 풀 죽을 수 있는 거다

 

 

 

입 안에서 씹힐 때 마지막 숨 거두며

 

다섯 번을 죽어서야 맛을 내는 배추처럼

 

몇 번을 까무러쳐야 시 한 편이 되는 거다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전거 소개서 / 이예연  (0) 2023.03.14
묵은 김치 사설(辭設) /홍윤숙  (2) 2023.03.14
돌이라는 새/조선의  (0) 2023.03.13
간고등어/김완수  (0) 2023.03.09
소금 흔적/김현희  (0) 2023.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