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시

소금 흔적/김현희

에세이향기 2023. 3. 9. 11:37

소금 흔적

김현희

 

죽은 것들과 친분이 두터운

소금의 용도는 살아 있는 기를 삭제하는 것

생살을 파고든 염분에 미꾸라지가 은신처의 내력을 발설한다

짜지 않게 싱겁지 않게 소금의 모서리를 껴안은

생선과 채소와 밑반찬

소금 앞에 엎드린 처세술로 수명을 연장한다

짠맛이 들어가야 싱겁지 않은 인생

이자겸의 굴비淈非*,

쉽게 부서지는 비굴이 뒤집힌 짭짤하고 쫀득한 맛이다

모든 간의 배후에는 소금이 있다

짜고 쓴맛으로 끝난 첫사랑, 다음 사랑에 적당한 간을 맞춘다

싱거우면 위험하다

항아리 속 부글거림과 착한남자의 우유부단에 소금이 개입한다

외부자극에 반응하는 사람 몸속의 소금

싼 맛에 고용된 일용직근로자 늘 소금기에 절어있다

무거운 등짐에 흘린 소금의 흔적이

검은 옷에 하얀꽃을 피운다

염전이 문을 닫는 시간

빛바랜 바다가 인광처럼 빛을 낸다

 

* 영광으로 유배된 이자겸이 영광법성포의 건조시킨 참조기 맛에 반해 인종에게 진상하며 귀양살이를 하고 있지만 비굴하지 않겠다는 뜻의 굴비淈非로 이름을 붙인데서 굴비라는 이름이 유래됨.

『시와 소금』2013년 ‘소금 시’

​사진<네이버 포토갤러리>chocong2001(chocong2001)님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이라는 새/조선의  (0) 2023.03.13
간고등어/김완수  (0) 2023.03.09
소금사막 / 신현락  (0) 2023.03.08
김영미 시인의 《나무 한그루》- ⑪ 두부  (1) 2023.03.08
소금벌레 / 박성우  (0) 202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