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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사막 / 신현락

에세이향기 2023. 3. 8. 21:57
 


소금사막 / 신현락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한 3만 5천년의 시간은 화석이
모래로 전이하는 데 충분한 풍량이어서 학자들이 사막의 
발원지를 추정하는 근거로 들기도 하지만 밤마다 
모래가 바다에 빠져 죽은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3만 5천년 후, 그 자리는 소금사막의 발원지가 되었다


  모래의 여자는 정갈한 소금으로 밥상을 차리고 
바람을 기다린다 사막에서 바람을 많이 먹은 종들은 
종종 변이를 일으키는데 그들이 사랑을 할 때는 
서로의 입안에 소금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사랑을 
구하기 위해서 남자들이 여자를 찾아오는 건 소금에 
중독된 까닭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래의 동선을 보면 최초의
호모사피엔스가 여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바람의 혀는 
감미롭게 모래의 능선을 애무하지만 모래의 여자는 
모래만 낳을 뿐이어서 몇 만년 동안 처녀의 지평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바람이 없는 날에는 가끔 
소금이불을 햇빛에 펼쳐놓기도 한다


  지금도 소금에 중독된 남자들이 모래의 여자를 찾아
간다 그러나 소금을 맛본 바람에게 혀를 내맡기다가
대륙을 이동하는 모래의 변종에게 눈을 다치기도 한다
눈 먼 사내들이 사막에서 길을 잃을 때 모래의 여자는
심해의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싱싱한 소금을 그들 앞에
뿌려준다 그렇다고 소금을 한 주먹씩 집어 먹는 건
사막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아무리 극소의 미량이라도
한 알의 소금으로 치사량에 이를 수 있다


  사랑을 많이 가진 남자의 입안을 들여다보면 소금바다가 
출렁거린다 그들은 죽어서도 썩지 않는 사랑을 찾아 
흰 뼈만 남은 몸으로 사막을 노 저어 간다 모래의 여자가 
가시나무로 소금을 찍어 인간의 간을 맞추는 것은 
이 세상으로 사막이 번져오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소금은 바다로 가고 싶다 / 윤종대




바람과 햇살에 닦여서
새하얀 소금
고기 떼를 안고 출렁이던
바람에 몸을 흔들던
한줌의 소금을 보았다.



한 바다에서 기슭으로 밀려나
땅 위에 갇히어
번쩍이는 혼만 갈무리하여 떠난
소금.
다시 그뼈를 드러내어
풀잎이 되고 나비가 된다.
천천히 골짜기를 나선다.



한줌의 뼈가 세상의 어부로
다시 태어난다.



- 윤종대 시집 <소금은 바다로 가고싶다> 1995


 


한 톨의 소금 / 홍해리
 
 
소금밭에 끌려온 바다가
햇볕과 바람으로 제 몸을 다 버리고 나서야
잘 여문 소금이 영롱하게 피어 난다
맛의 시종인, 아니 황제인 소금의 몸에서
밀물과 썰물이 놀고 있는 소리 들린다.


소금을 기르는 염부의 등을 타고 흘러내린
수천수만 땀방울의 울력으로
바다의 꽃, 물의 사리인
가장 맛있는 바다의 보석이 탄생하듯이,


시인은 말의 바다를 가슴에 품고
소금을 빛는 염부,
몇 달 몇 년이 무슨 대수냐면서
한 편의 시는 서서히 소금으로 익어간다.


어둔 창고 속에서 간수가 빠져나가야
달고도 짠 소금이 만들어지듯
서둘지 마라,
느긋하게 뜸을 들이며
가슴속 언어산의 시꽃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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