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공의 손 / 맹문재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우리 마을 구둣방
수선공은 길과 구석에 쌓인 쓰레기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의 구두를 받자마자
오랜 병마에서 살아난 사람처럼
이내 이리저리 뒤집으며 실을 뽑고
찬찬히 가위질을 해댔다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다는 듯
망치로 톡톡 두들기고 볼을 감싸기도 했다
나의 구두는 어느새
수선공의 손안에서 꿈틀거렸다
끄무레한 세밑 하늘이 어둡지 않았고
라디오를 타는 외환 위기 뉴스가 불안하지 않았고
수없이 다가오는 겨울바람도 시리지 않았다
잘 가라는 듯
수선공은 한번 더 구두를 매만지고 내게 건넸다
감쪽같이 변신한 의치(義齒)와 다르게
기운 자국을 당당히 가진 구두
수선공의 손은 어느새 구둣방의 문틈으로
먼 길을 내다보고 있었다
- 맹문재,『책이 무거운 이유』(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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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구두 수선하는곳을 찿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는 동네 길가 한 모퉁이에 작고 허름한 구둣방이 눈에 띄곤 했다.
물론 고층건물이 즐비한 시내에서도 어김없이 건물 지하나 모퉁이에 작은 구둣방이 있었다.
구둣방에서는 구두도 닦고 수선도 해준다.
구두 수선공의 옷은 남루하다.
아니 남루할수 밖에 없다.
수선할 구두가 오면 양 무릎사이로 구두를 끼워 고정시킨 다음 터진 구두 가죽을 한땀 한땀 꿰맨다.
구두 닦을 때는 구두약을 손가락에 바르고 윤이 날때까지 문지르는 손은 마치 모터가 달린 듯 빨랐다.
이렇게 일을 하니 옷은 항상 헤지고 구두약이 묻은 옷은 그야말로 꼬질꼬질 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꼬질꼬질해 보이는 수선공의 작업복이야말로 수선공다운 옷차림이요 기술자로서의 품격을 나타내는 모습이라 할수 있다.
가끔 길을 가다 보면 하이힐(높은 구두) 일명 뾰족구두를 신고 길을 걷다가 구두 밑창이 떨어지거나 굽이 달아나는 사건에 처한 여성들을 종종 보게된다.
멋을 한껏 부린 여성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 손에 굽 나간 뾰족 구두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구둣방을 재촉하는 모습이란..
당사자는 진땀을 흘릴 일이지만 쳐다보는 사람은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감이 없어 한가 할때는 구두 수선공의 몸은 축쳐져 힘이 빠져 있지만 누군가 구두를 들고오면 얼굴에는 언제 그랬냐는듯 화색이 돌고 손은 잽싸게 작업모드로 전환된다.
손은 작업순서에 맞게 척척 자동으로 움직인다.
아마도 구두수선공이 가장 행복할 때는 몰입하여 구두를 수선하는 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헤진 구두의 수선이 끝나면 수선공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구두를 건넨다.
환한 미소는 제구실을 못하는 구두의 생명을 다시금 소생시켰다는 뿌듯함의 증표일 것이다.
맹문재 시인의 시 수선공을 낭독하면서 거칠고 투박한 구두 수선공의 건강한 손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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