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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男子의 손 / 정낙추

에세이향기 2023. 7. 30. 08:23

그 男子의 손 / 정낙추

그 남자의 손은

무쇠솥 뚜껑보다 크고 투박합니다

소나무 옹이보다 억센 손마디로

여린 싹도 키우고 고운 꽃도 피우게 하는

요술쟁이 손

그 손박닥엔 딱딱한 못이 박혀 있습니다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을 단단한 못 속에는

서러운 세월을 안으로 삭힌

땀과 눈물이 고여 있는 걸 아시는지요

그 남자의 손에서는

잘 썩은 두엄 냄새와 구수한 곡식 냄새가 납니다

비누로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그 냄새는 그 남자가 지쳐 쓰러질 때마다

일으켜 세우는 신비한 힘입니다

그 손은 욕심 없는 정직한 손입니다

이 나라 만백성을 먹여 살리고도

생색 한번 안 낸 위대한 손입니다

그 손이 요즘 들어

희고 부드러운 손 앞에서 주눅 들어

자꾸 주머니 속으로 숨습니다

아내의 가슴을 보듬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거친

그 남자의 손이 가엾어 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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