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김응숙
몸피 얇은 것들이 찾아들었다. 하루살이며 나방이었는데, 진즉에 진을 치고 기다리던 거미줄에 걸리기도 했다. 그래도 처마 깊숙이에 먼지 같은 알을 까고 새끼를 쳤다. 비가 오는 날이면 민달팽이나 지렁이가 덜 젖은 땅을 찾아 기어 나왔다. 그들은 처마 밑 벽에 몸을 붙이고 비를 그었다.
그날도 가을비가 왔다. 슬레이트 지붕이 다닥다닥 닿아있는 언덕빼기 동네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 집은 신작로로 들창이 난 길갓집이었다. 그 처마 밑으로 바싹 마른 아이들이 찾아 들었다. 예닐곱 살, 열두 살로 보이는 형제였다. 황급히 뛰어나왔는지 작은 아이는 맨발이었다.
동네 중턱에서 고함과 비명이 따라왔다. 가끔 있는 일이었다. 술만 마시면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가장이었다. 우산을 쓴 아버지가 싸움을 말리러 간 사이 나도 벽에 몸을 붙이고 처마 밑에 섰다. 내 또래 큰아이의 들썩이는 어깨가 곁눈으로 보였다.
산발한 아이들 어머니가 찢어진 옷을 추스르며 내려왔다. 무슨 이유인지 집으로 들어가자는 아버지의 권유를 한사코 마다했다. 들창으로 헌 담요와 갓 찐 고구마 몇 개를 건넸다. 마치 고구마에서처럼 그들의 몸에서도 하얀 김이 났다. 술에 취한 가장이 깊은 잠에 빠질 때까지 그들 모자는 서너 뼘도 안 되는 슬레이트 처마 밑에서 찬비를 피하고 있었다.
처마는 비나 햇볕으로부터 집을 보호하려고 밖으로 빼내거나 덧댄 지붕이다. 제 몸을 간수하고 남은 여분의 영역이다. 드나들며 날씨를 살피거나 옷을 툭툭 털기도 하는 얼마 안 되는 공간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잠깐이나마 땡볕을 피하고 장대비를 그어가야 할 때가 있다. 밖에는 언제나 지독한 현실이 기다린다. 남의 집 처마 밑에서라도 잠시 쉬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갈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나도 한 선생님의 처마에 기댄 적이 있다. 야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이었다. 우리 집안 형편을 빤히 아는 담임이 첫 학기 등록금을 내주셨다. 제자가 처한 상황이 안타까워 힘껏 내민 선생님의 처마였을 것이다. 그러나 채 일 년도 다니지 못한 고등학교였다. 공장을 전전하며 독학했다. 세상의 빗줄기가 차가울수록 선생님의 처마가 깊었음을 느끼곤 했다.
기꺼이 누군가에게 처마를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한 지인은 십 년마다 기부금을 배로 늘리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한 달에 삼만 원에서 시작한 금액이 지금은 십 수만 원이 되었다. 재해가 날 때마다 전화로 소액을 기부하는 친구도 있다. 금액이 적어 부끄럽기도 하지만 십시일반이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낸단다. 이렇듯 작은 처마가 모여 재난도 극복할 큰 처마가 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가업을 이어가는 한옥 냉면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얼마 전 기와가 내려앉고 비가 새서 주인은 파란 콜타르로 지붕을 덮었다고 했다. 주차를 위해 마당을 콘크리트로 포장해 놓았다. 한쪽에 있던 화단도 없어졌다. 안주인은 그곳에 있던 화초들을 화분에 심어 처마 밑에 들여놓았다. 달리아며 장미, 채송화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옹기종기 처마 밑에서 생을 이어가는 화초들이 정다워 보였다.
요즘은 처마가 있는 집이 흔치 않다. 낮은 건물도 지붕 주위로 물받이 통을 쭉 둘렀을 뿐이다. 게다가 아파트에는 아예 처마가 없다. 문만 닫으면 네모난 큐브가 된다. 사람의 생각도 사는 형태를 닮아가는가 보다. 다들 자기주장이 뚜렷하기는 하지만 여분이 없다. 안과 밖, 너와 나 사이에 처마가 없어졌다.
비 오는 창밖으로 직각을 쌓아가며 올라가는 아파트 건축현장이 보인다. 누군가 우산을 쓰고 서둘러 그 앞을 지나간다. 겨우 제 몸 하나 가릴 뿐이다. 괜히 허전해져 주위를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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