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 김혜주
텅 비어 있는 눈빛은 슬펐다. 아무도 눈 맞춰 주지 않는 허공을 서성대고 있는 시선은 그래서 더 애잔했다. 그녀의 눈빛이 그랬다. 쌍꺼풀이 진 큰 눈에 눈물 한 방울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의 그 막막한 눈빛. 꽉 닫힌 문 앞에 서서 속절없이 빠져버린 문고리의 흔적을 장님마냥 더듬고 있는 눈빛. 그런 그녀를 만난 것은 병실이었다. 그녀는 하얀 시트 위에 석고상처럼 굳은 육신을 뉘고 있었다.
몇 날을 두통에 시달리다 동네 병원을 찾았다. 치료를 했으나 차도가 없자 의사는 더 정확한 검진을 위해 큰 병원에 가기를 권했다. 감기가 오래가는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데 왼손에 마비가 오는 것 같았다. 그제야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갔다. 검사 결과는 가벼운 뇌출혈. 그날로 입원을 했다. 신경외과 병동에는 대부분 중증 환자들이 많았다. 간호사가 안내하는 병실로 들어서다 그녀의 눈빛과 마주쳤다. 내 자리는 그녀의 옆이었다. 그녀는 전신 마비 환자였다.
너덜 해진 차트 첫 장에 기록된 그녀의 나이는 서른아홉. 그것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느닷없이 찾아온 내 병을 감당하기도 어려웠지만 옆에 나란히 누운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것은 더 힘들었다. 손등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 나는 모로 누워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병실 안은 죽음 같은 고요가 흘렀다.
이른 저녁 식사 시간. 간병인 아줌마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그녀의 콧속으로 연결된 줄에 커다란 주사기로 물을 몇 번 밀어 넣더니 미음 주머니를 연결해 놓고는 사라졌다. 멀건 미음이 그녀의 코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슬픔도 아픔도 다 잊었다는 듯 그녀의 눈빛은 아득하기만 했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내 이름이 적혀 있는 식판이 덩그러니 침대 위에 있었다. 다 식어버린 국 한술을 입으로 떠 넣는데 어김없이 왼쪽 입술 사이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당황스러워 휴지로 얼른 닦고 다시 숟가락을 드는데 국인지 눈물인지 온통 얼굴은 범벅이 되었다.
살아가자고 차가운 미음을 몸속으로 밀어 넣는 그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몸의 아픈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 그녀와 내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다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의 눈빛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말들을 내게 걸어왔다. 아픈 사람에게는 국 한 그릇도 슬펐다. 하지만 나는 그 눈빛 때문에 식어버린 국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녀의 눈빛이 환해졌다.
손끝 하나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그녀는 말라가는 가을빛이었다. 단 하나 비상구인 그 눈빛으로만 무형의 문자를 쏟아 내고 있었다. 딸아이를 만나면 안간힘을 쓰면서 눈동자를 꿈틀거리기도 했다. 주말이면 아침부터 아이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지만 인기척이 나면 반사적으로 시선이 병실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가 지쳐 갈 때쯤. 지방에서 일을 끝내고 바삐 왔다는 남편과 딸아이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손 내밀어 잡아 볼 수도. 이름을 불러 볼 수도 없었던 그녀의 눈빛은 강물처럼 울고 있었다. 죽는 일도 사는 일도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닫혀있는 육신의 문 앞에서 그 어떤 선택권도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어느 날 밤이었다. 모든 상황이 정지된 병실의 어두운 밤을 뒤흔드는 소리가 있었다. 그녀가 왼발을 까닭 없이 떨면서 침대 모서리를 연속적으로 치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나도 여전히 한 쪽이 불편했지만 가만히 그녀 곁으로 갔다.
“내가 하는 말 잘 듣고 눈을 깜박거려 봐요. 저절로 떨리는 거예요?”
그녀는 눈을 깜박거렸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마비 환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꼭 필요한 감각은 죽어 있으면서 그녀의 의지로도 막을 길 없는 떨림. 그녀의 눈빛도 흔들렸다. 나는 대책 없이 움직이는 그녀의 발목을 잡고 내 귀에 있던 이어폰을 그녀에게 꽂아 주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어쩐 일인지 그 떨림은 잦아들었다. 무너진 막장 속처럼 길을 잃고 멈춰있던 그녀의 몸. 그 깊은 곳 응어리진 멍울들이 조금씩 풀어지는 듯했다.
어두운 밤하늘에 손톱달이 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간신히 그녀의 베개를 들어 창 쪽으로 얼굴을 돌려주었다. 오랫동안 한곳만 바라본 그녀가 밤하늘을 보더니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별도 보였다. 음악을 들으면서 창밖 밤 풍경을 내다보던 그녀의 얼굴은 오랜만에 편안해 보였다. 그녀의 눈빛은 아직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여러 날이 흘렀다. 나는 차츰 감각이 돌아오고 두통도 사라졌다. 병실에 나란히 누워있던 두 사람에게 소통의 통로는 눈빛뿐이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자유로웠다. 닫혀 있었던 것은 육신의 장애였을 뿐이지. 우리의 의식이 닫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병실 창으로 휘어져 있던 나뭇가지에 새가 앉았다. 사는 일이 날아든 새처럼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 회진 때 의사선생님은 내게 퇴원을 결정했다. 먹는 약으로 바꾸고 외래로 진료할 수 있도록 예약을 해 주었다. 집으로 갈 수 있어 좋았지만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짐을 꾸리면서 본 그녀의 눈빛이 쓸쓸해 보였다. 그녀 또한 얼마나 가족 곁으로 가고 싶었을까. 무슨 말을 하려고 입술을 움직이는데 그녀의 입에서는 엷은 신음 소리만이 들렸다. 병실을 나서려고 돌아서려는데 그녀의 손가락 하나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솟았다.
그녀는 화석같이 굳어 있던 여자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던 막막한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 몸속에서 우러난 자생력으로 손가락 하나를 움직였던 것이다. 그것은 잘 가라는 그녀의 인사이었으리라.
눈빛이 때로는 백 마디의 말보다도 그 어떤 행동보다도 더 많은 것을 말할 때가 있다. 눈빛은 그녀와 나 사이에 흐르는 따스한 소통의 강이었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자문魚子紋 / 김보성 (0) | 2023.11.05 |
---|---|
처마/김응숙 (2) | 2023.10.29 |
재봉틀의 포란/조미정 (2) | 2023.10.19 |
풀들에게 경의 표한다 / 김애자 (1) | 2023.10.19 |
멍석/조미정 (1) | 2023.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