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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멍석/조미정

에세이향기 2023. 10. 18. 14:58

멍석

 

멍석 한 장이 시렁 위에 얹어져 있다.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곰삭은 세월이 떨어져 나와 햇살이 뿌연 헛간 속을 둥둥 떠다닌다. 한 생애의 빼곡한 사연이 둘둘 말려있는 듯하다. 그냥 버리기 망설여진다. 오며가며 매콤한 눈길을 던지다가 마당에 꺼내 펼쳐놓는다. 변변한 살림살이 하나 없어 설렁하더니 낡은 멍석 한 장 깔았다고 집 안 가득 온기가 들어찬다.

멍석은 새끼로 날을 세우고 사이사이에 촘촘히 끼워 넣은 볏짚을 위아래로 얽어매어 만든다. 전날 밤에 물에 푹 불려 야들야들해진 볏짚으로 새끼부터 꼰다. 멍석의 날줄이 되는 부분이다. 설렁설렁 손바닥을 비비면 될 것 같아도 막상 새끼를 꼬아보면 만만치가 않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풀어지거나 골이 숭숭 팬다. 그럴 때마다 재빨리 몇 가닥의 볏짚을 솎아 넣는다. 그래야 끊어지지 않고 길게 이어질 수 있다. 동짓달 손톱달이 메마른 감나무 끝에 걸리면 본격적으로 멍석 짜기가 시작된다. 지금까지 여유롭던 마음은 사라지고 한 올 엮을 때마다 뭉툭한 손마디에 지그시 힘이 들어간다. 손가락은 얼얼하고 어깨는 뻐근하다. 씨줄과 날줄이 엮여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이 어우렁더우렁 부대끼며 살아가는 부부의 일 같다.

그즈음의 나는 예기치 못한 삶의 변화로 심보가 뱅뱅 꼬여 있었다. 남편이 빚보증을 잘못 서서 하루아침에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간 직후였다. 이리저리 손을 벌려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는 면했지만 남은 빚을 갚느라 날이 갈수록 살림살이가 궁핍해졌다. 어떤 때는 먹고 사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외줄을 타듯 출렁이는 동안 몸과 마음은 거친 북데기에 쓸린 듯 생채기가 났다.

물질이 정신을 지배할 수 없다고 하지만 거듭되는 생활고에 시달리다보면 돈독하던 부부 사이도 흔들린다. 남편과 나 사이에 전에 없던 골이 패기 시작했다. 멍석은 날줄이 제대로 내리뻗어 가지런한 모양을 잡고 있어야 그 사이로 씨줄인 볏짚이 잘 엮여져 반듯한 모양이 된다.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남편이 헝클어진 날줄 같았다. 나는 물기가 바짝 마른 볏짚이었으리라. 등을 쓸어주기보다 닦달을 하며 뚝뚝 부러졌다.

남편이 새 일자리를 찾아 연고도 없는 다른 지방으로 떠난다고 했다. 몹시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기보다 상처가 아물어 딱지가 앉을 때까지 떨어져있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며 내 두 손을 꼭 잡는 남편이 미덥지 않아 슬며시 등을 돌렸다. 기껏 만들어 놓은 멍석마저 맥없이 풀어져 뿔뿔이 흩어진 가족이 될까 불안한 밤이었다.

탄탄한 날줄을 세우기 위해 남편은 안간힘을 썼다.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공장 자재창고에 달린 쪽방에 기거하며 한 푼이라도 생활비를 아꼈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펜대를 잡던 손은 목재를 지고 나르느라 나무그루터기처럼 부르텄다. 그런데도 자신보다 내 건강을 먼저 걱정하였다.

그냥 두고만 볼 수가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던 나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엇이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남편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나서서 일을 하려니 막막하기만 했다. 이것저것 체면을 생각해 가리는 게 많아서였을 것이다. 남편은 남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았다. 삶의 꼭짓점에서 보기 좋게 굴러 떨어진 것은 나나 매한가지인데 가족을 위해서라면 꺼리는 일이 없었다.

알고 보니 남편은 뚝심 많은 날줄이었다.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새끼에 볏짚을 제때 솎아 넣으며 제 자리를 만들어나갔다. 정작 씨줄이 되지 못한 것은 나였으리라.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주저앉아 남편 탓만 하였다. 돈 한 푼 없어 발을 동동 구를 때에도 직접 나서서 일을 하기보다 친지들의 도움에 의지할 때가 더 많았다. 남편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버둥거리지 않는다고 꾸짖는 사람들이 야속해 내가 먼저 등을 돌리기도 했다. 몸과 마음에 병이 들어서였다는 말은 어쭙잖은 변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멍석을 짜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찾아오는 감정의 기복이 볏짚이 촘촘하게 엮이지 못하는 이유다. 날줄로 세운 새끼의 길이가 모자라 처음 생각했던 크기보다 작아지거나 잘못 엮어 다시 풀어야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맥이 빠지는 일도 여러 번 반복하다보면 요령이 생긴다. 적절하게 힘을 조절해 한 올 한 올 바짝 당겨서 하니 굵기도 고르거니와 조금씩 반듯하게 모양을 잡아간다.

멍석은 부부가 함께 만들어 내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한 올 한 올 엮어야 한다. 한 때 제대로 된 멍석 한 장 가지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적도 있고, 거친 세상 풍파에 얹혀 뜻하지 않은 생의 멀미에 혼쭐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서로 손잡고 꿋꿋이 세월을 엮다보면 두툼한 한 닢의 멍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만든 멍석은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좀처럼 멋이 나지 않는다. 갓 만든 멍석처럼 때깔이 고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수십 년 간 다져지고 손때가 배어들어 특유의 깊은 색을 낸다. 그런 멍석이 마음에 든다. 인생도 그러할 것이다. 한번쯤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을까. 인생사 흥망성쇠가 있듯 한 길만 보고 달려왔더라도 어느 시점이 되면 한번은 꺾어지고 무너질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은 씨줄과 날줄이 고를 이루어 더욱 팽팽하게 얽히는 데 있으리라.

시골집 허름한 멍석을 들여다본다. 한눈에 사람을 끄는 힘은 없어도 보면 볼수록 정감이 난다. 버리지 않기를 잘했다싶다. 세월의 두께가 더 얹어지면 멍석은 삭아서 불쏘시개로 아궁이에 들어가거나 두엄더미 속에서 흙으로 되돌아갈 테지. 그래도 우리네 멍석은 오늘도 힘차게 삐뚤빼뚤 올을 엮는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오전 내내 소쿠리 가득 붉은 고추를 따서 멍석으로 실어 나르던 남편이 어이! 하고 힘차게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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