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傳/조미정
바지는 직립보행의 종족이다. 몸통이 두 갈래로 갈라져 평생 걷고 달려야 하는 숙명을 안고 태어났다. 씨줄과 날줄로 얽은 혈관 속에는 질주 유전자가 흘러 한시도 제자리에 붙박여 있지 못한다. 본능적으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쉼 없이 걷느라 가랑이는 낙타처럼 쉴 때조차 먼 곳을 바라본다.
불도저 같던 남편이 어쩐 일일까? 멀리 출장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는지 아침부터 걷기를 주저한다. 지금쯤 대문을 성큼 나섰어야 함에도 서두르기는커녕 혼잣말까지 구시렁거린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바지 기장이 짧아졌다는 넋두리다. 그럴 리 없다며 부엌에서 일하다가 말고 쿵쿵 달려갔다. 바지는 진짜로 반 뼘 가까이 키가 줄어들어 발목 위에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멀쩡히 입고 다녔던 단골 바지였다. 무심코 세탁기로 돌려놓고서는 바지통이 그대로여서 괜찮은 줄 알았다. 물세례를 흠뻑 받고 쪼그라든 바지는 두 손으로 탁탁 펴 보고 밑으로 당겨 보아도 여전히 볼썽사나웠다.
남편은 요즘 부쩍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그저께는 껌껌한 방에 혼자 앉아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더니 느닷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화면에는 세상에서 가장 뜨겁다는 다나킬 사막을 삐걱삐걱 건너는 낙타의 행렬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등의 혹이 하나뿐인 단봉낙타였다. 돌덩이로 변한 소금판 수십 개를 등짐 지느라 무릎마다 피딱지가 들러붙은 몰골에 중년의 한 사내가 겹쳐 보였던 걸까. ‘남자답게’를 입버릇처럼 외던 양반이 울보로 변한 것은 피붙이 같던 동료가 심근경색으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였다.
한때 바지는 남성성의 상징이었다. 초원을 달리던 기마 민족이 최초로 입은 후부터 남자에게 없어선 안 되는 의복으로 귀한 대접을 받아 왔다. 앞뒤로 베일 듯 칼주름을 세워 자존심을 드높였고, 양다리를 쩍 벌리고 앉으면서 당당함을 배웠다. 덕분에 강산이 수십 번 변해도 바지는 강하고 의젓하다는 명제를 오랫동안 고수할 수 있었다.
고대에는 여자들도 바지를 입었으나 처신부터 달랐다. 몸가짐이 조신해야 한다는 풍습 탓에 치마의 부속물로 다소곳이 감추고 있었다. 근세에 이르러 짧은 치마 밑에 밑단을 고무줄로 조인 바지를 처음 입었을 때는 조롱과 멸시를 감내해야 했다.
반면, 남자는 대놓고 호기를 부렸다. 바람이라도 불면 헛기침과 함께 목도리도마뱀처럼 바지통을 힘껏 부풀렸다. 짐짓 으스대는 꼴이 우스워 콧방귀를 뀌면서도 밉지는 않았다. 부피 부풀리기는 치마폭을 따를 수 없었으나 행여 기가 죽을까 최고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조금만 얼래고 다독여도 아이처럼 단순해지고 공자처럼 관대해지는 바지다. 이제 우쭐거리는 허풍조차 엿보기란 쉽지 않다.
가장이라는 등짐을 지고 밤낮으로 뚜벅거렸던 지난날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아무런 걱정 없이 살던 어느 날, 남편은 연대 보증을 잘못 서 준 여파로 수십 년 근무하던 직장까지 그만두어야 했다. 펜대만 굴리던 삶의 모양도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공사판 막노동꾼에서부터 중소기업 영업 이사까지 십여 년 동안 그가 누비지 않은 오지란 거의 없었다.
집 밖으로 나설 때마다 남편은 매번 똑같은 의식을 치른다. 현관 벽에 써 붙인 좌우명‘마부작침(磨斧作針)’을 향해 고개 숙인 다음 또 한 번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맨다. 척박한 인생 사막을 건너다보면 감내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자리에 앉을 때는 바짓가랑이를 일일이 추켜올려야만 조금이나마 편하게 무릎을 구부릴 수 있었다. 다리미로 다려 빳빳하게 줄을 세워 놓아도 퇴근할 무렵엔 구겨지고 후줄근해져 돌아오기 일쑤였다. 여름에는 바람이 술술 통하는 치마를 입고 싶었던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때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각오로 흘러내리기를 거부했으리라.
아서 밀러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외판원 윌리 로먼은 평생 일한 직장에서 해고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망나니 아들에게 보험금을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막다른 벽에 부딪혔을 때 사랑하는 이가 내민 손만큼 힘 되는 것이 있을까마는 가족의 외면 속에 출구가 없었던 남자를 떠올리자니 겁이 덜컥 났다. 힘든 일이 있냐고 물어도 괜찮다며 마냥 순박하게 웃던 남편이었다. 속으로 진물이 철철 흐르는 줄도 모르고 남과 비교하며 닦달한 일, 무관심했던 일, 돌아누웠던 일 등이 줄줄이 생각나 가슴께가 아려왔다.
문제는 시접이다. 접혀 있는 바짓단을 한껏 내려도 껑충해진 기장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감친 부분을 조심스럽게 뜯어봐도 가슴만 더욱 까맣게 타들어 갈 뿐이었다. 닳고 닳아 색 바래진 자락이 시접 안의 천과 대비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경계는 살았던 삶과 살지 못한 삶, 혹은 현실과 꿈, 과거와 미래의 간격처럼 너무도 극명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네 옷 수선집을 찾았다. 늙수그레한 수선사는 확실히 노련한 인생 선배였다. 슬쩍 들추어만 보고서도 그럴듯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다른 천을 덧대면 되지!” 명쾌한 처방이 떨어지자마자 바지는 신속하게 수술대로 옮겨졌다. 바느질 땀이 낱낱이 해체되어서는 부족한 시접 부분을 비슷한 천으로 수혈하기 시작했다. 드르륵드르륵! 재봉틀이 구를 때마다 움츠리고 쏠아졌던 마음도 한 뼘씩 껑충 키를 늘려나갔다.
바지는 제 안에 많은 시접을 품고 있다. 허리춤의 좌우에 턱 주름을 잡아 볼륨을 주고, 바지통은 네 개의 쪽으로 나누어 옆선으로 이어 붙였다. 바지 끝도 접어서 충분히 밑단을 둔다. 가장으로 살다 보면 참아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짊어진 짐이 무거워 비틀거릴 때마다 속으로 삭이지 말고 당당하게 품을 보정해 보라고 그렇게 여유분을 둔 것은 아닐까.
바지란 누군가가 전력투구한 생의 열정이요 표식이다. 삶의 서부 전선에서 피 튀기며 싸우는 용감한 전사이고, 생사고락을 함께 나눈 애틋한 동반자이기도 하다. 닳고 허름해졌다 해서 쉽게 버릴 수 없는 이유다. 제 몸에 딱 맞게 수선된 바지를 입고 남편은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세상의 사막으로 힘차게 걸어 들어갈 것이다. 발 딛는 곳은 데일 듯 뜨겁고 산더미 같은 등짐도 여전하다. 하지만 모래 폭풍이 또다시 삶의 모습을 생경하게 바꾸어 놓거나 바지 기장이 짧아질 일이 있을 땐 내가 기꺼이 그의 넉넉한 시접이 되어 주리라.
집으로 향하는 등 뒤로 수선집의 재봉틀이 큰소리로 달그락거린다. 밤하늘엔 어제보다 조금 더 덧대어진 상현달이 높이 떠 있다. 종일 사막을 횡단하느라 고단했을 남편을 위해 오늘 저녁에는 좋아하는 고등어시래기조림을 칼칼하게 졸여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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