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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 저 여자 / 배한봉

에세이향기 2023. 12. 12. 03:20

자운영, 저 여자 / 배한봉

 

 

우포늪 둔치 만개한 저 여자

일생의 바닥 축축하다, 참고 견딘 오욕이

참 오래도록 삶을 삭혔겠다

스물여섯 신혼의 단꿈 채 익기도 전에

돈 벌어 오겠다며 집 나가

딴 살림 차린 사내 때문만은 아니리라

고딩잽이* 삼십 년

목숨이란 것도 늪 바닥만큼이나 시리고 깊은 것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자라

이제 대학교 졸업반 된 딸아이가

흰 날개를 저어 더 큰 세계로 날아오르기만 기다리는

저 여자, 설한雪寒의 바람 미쳐 날뛰어도

검은 잠수복을 입고 늪 가운데 서서

찬밥덩이 김치 몇 쪽으로 씹어 삼키며

너럭지** 가득 고딩이를 잡아 담았다지

어둠 밀려올 때서야 빙점의 물 헤치고 나오면

살 속 뼛속 서릿발 같은 통증이

우당탕탕 관절을 무너뜨려 한참이나 눈보라 속에

시커먼 죽음의 실타래를 풀어놓곤 했다지

오도독 이를 갈며 아아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다 되뇌던 삶의 바닥

늪보다 깊은 그 심연 퍼 올리다

왈칵 쏟아버린 하늘의 붉은 마음이

저 자줏빛 꽃구름 아니겠느냐

절망의 바닥을 기어본 사람만이 피울 수 있는 꽃

축축해서 등 마를 날 없는 우리 삶에도

한 번은 자줏빛 환한 꽃구름 필 날 있을 거라 말하는 걸까

붉은 너럭지를 밀며 우포늪 봄빛 속에

숨비소리 같은 긴 휘파람 풀어놓는

저기 저 오늘따라 유난히 얼굴 붉은 자운영

 

* 우렁이 잡이를 이르는 경남지역 말.

**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둥글넓적한 그릇. 큰 대야 또는 함지박을 이르는 경남지역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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