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잠 / 최일걸
칼잠을 자 본 사람은 알고 있다
삶이 얼마나 마모되어야
잠이 번득이는 날을 세워 칼에 이르는 건지
녹슨 양철지붕 같은 밤,
어떤 폭압이 저들을 협소한 공간에 몰아넣어
포화상태에 이르게 한 걸까
꿈마저 바닥을 드러낸 사람들이
바로 누울 수도 없는 생의 갈피갈피를 비비며
칼갈이를 하지만,
단 한 번도 칼잡이를 꿈꿔보지 못한 그들은
서로의 체온을 주고받아 온돌이 되어
아랫목을 넓혀 가며
아궁이 보다 깊게 서로의 속을 헤아린다
부지깽이 같은 손으로
서로를 다독거리다 보면
군감자 보다 더 따스해서
입김 호호 불며
한 덩어리가 된 삶을 나누어 먹는다
겹겹의 칼날을 이룬 그들이
허기의 단속을 피해
곤한 잠으로 풀어지려면
무허가의 밤은
도대체 얼마나 울음을 삼켜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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