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말미에서 보내온 편지/이정희
어름사니는 끝내 이승을 하직했다.
시월도 마지막 날, 바싹 마른 채 죽어 있는 어름사니를 보았다. 머리카락이 빠진 것처럼 엉성한 집에서, 주인도 없는 사체가 간단없이 떨린다. 높새가 거미줄 치는 초겨울, 복색도 현란한 무당거미의 죽음이 아찔하다. 제집에서 죽었는데도 첫서리에 시드는 나뭇잎처럼 꺾였다. 어찌된 사연일까. 눈 질끈 감은 뒤에도 허공에 결박된 채 외줄을 타곤 하더니, 썰렁한 죽음 뒤로 어름사니의 하루가 엇갈린다.
그는 광대다. 특별히 줄을 타는 어름사니다. 혼자서는 움직이질 못하니 바람이 그네를 태운다. 퀭하니 들어간 눈은 허공만 응시하고 철거된 집 하나가 바람을 끌어안는다. 한 줌도 못 되는 주검의, 위험한 노래 한 소절 누가 엮었나? 인생도 어릿광대처럼 한바탕 연극이었던 것을. 살 동안에도 슬프지 않은 척 불행의 늪에서도 웃어야 하리. 물갈퀴는 아랑곳없이 언제나 우아했던 물오리처럼.
바우덕이 축제에서 본 어름사니도 거미처럼 줄을 타고 있었다. 합죽선 모아 쥐고 곡예를 펼친다. 무거운 발걸음을 깃털처럼 가볍게 내디딜 때는, 거미가 어름사니 흉내를 내는지 어름사니가 거미를 따라 하는지 모르겠다. 어름사니 또한 죽을 때도, 거미처럼 추락하지는 않겠지. 붉은 꽃 던지고 푸른 꽃 던져도 차디찬 봉오리만 새기던 얼음꽃밭처럼.
어름사니는 얼음 위를 가듯이 조심스럽게라는 뜻이다. 다르게는‘얼음판에 조롱박 밀듯이’라고도 했다. 얼음이 깨질까 봐 차분한 발걸음을 조롱박이 미끄러지듯 살짝살짝 차버린다. 허공에 집 짓는 거미는 새털구름의 무게까지도 가늠한다. 바람이 툭툭 꽃잎을 차버리듯이 무게 중심은 필요했다. 오늘 본 거미도, 죽었지만 떨어지지 않고 멀쩡했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낚시꾼이라고 불렀다. 꽁무니에서 은빛 실 꺼내서는 그물을 던졌다. 파리가 들러붙고 잠자리가 걸린다. 불시착하는 곤충은 그대로 죽어 나갔다. 낚시라면 물가에서 고기를 잡는다. 거미가 친 그물은 서발 막대 휘둘러도 걸릴 게 없는 허공이지만, 구름이 섬으로 떠오를 때 보면 물새가 울어 예는 강기슭 풍경이 자연스럽다.
바람의 입질이 시작되면 구름이 텀벙 내려왔다. 낚시 또한 밑밥을 깔고 미끼를 달아 고기를 잡지 않던가. 허탕을 칠지언정 세월을 낚고 소망을 낚을 동안 아득히 푸른 허공도 베어 먹을 수 있다. 낮에는 푸른 실 드리우고 밤에는 비단실 감아 별 반짝이는 허공에 수를 놓는다.
바람이 늘어뜨린 동아줄 밟고 가면 너를 만나게 되리. 해거름이면 서쪽 하늘 달려가 붉은 눈물도 한 방구리 담아낼 것 같다. 강물보다 깊은 침묵을 깨고 한 발 두 발 죽음의 길로 발을 내딛던 그의 정체는 뭐였을까. 거미와 한통속일 수밖에 없는 배경을 꺼내면서 그 운명이 참으로 안쓰러웠건만…….
동아줄은 5m 안팎이다. 얼핏 봐도 대여섯 걸음밖에 되지 않는데 위험한 노래 즈려밟고 갈 테니 천리보다 아득했으리. 두 개의 기둥에 걸린 외줄은 깊은 산 계곡에서 출렁다리를 가듯, 천 길 낭떠러지에 걸친 외나무다리 같기도 했겠다. 잔뜩 실리는 것은 우물보다 깊은 침묵이었을 뿐, 발치의 무게는 깃털처럼 민들레 씨앗처럼 흩날렸으리.
갑자기 챙챙책책 꽹과리 소리가 낭자하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발판인데 무심결인들 보게 되면 휘청대고 말 테니 더 이상 어름사니가 아니었다. 허공에 집을 짓는 거미도 그럴 경우 바닥에 떨어진다. 어름사니가 어름사니일 수 있는 것은 그물도 집도 아닌 공중누각의 줄 때문이다.
누군가는 전생에 목수였을 거라고도 했다. 미레자로 먹물을 퉁기면 하루에도 허공의 집이 수십 채는 올라갔다. 나무를 다듬고 깎아내는 대패질보다는, 먹물을 떨어뜨려서 점을 찍고 컴퍼스를 넓혀나가는 게 더 적성이었을 거야.
고추잠자리 앉아 있던 붉은 지붕과, 건들마 쉬어가던 추녀 끝에도 올라갔다. 심심파적으로 짓는 것 같아도 옷이든 머리든 걸리기만 하면 여간 낭패가 아니다. 비눗물에 담가 두어도 끈적이기만 할 뿐, 한번 들러붙은 벌레는 그것으로 끝이다. 자신도 마침내는 끈적이는 그물망에 갇혀버렸지 않은가. 그때는 전혀 몰랐을 테지만.
거미줄만 보면 질색하는 장수가 있었다. 하루는 전쟁터에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다급한 마음에 산기슭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미가 동굴 입구에 막 줄을 치는 중이었다. 이어서 적군이 추격해 왔으나 거미줄을 보고는 그냥 통과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는 평생 고마워하며 살았다는데.
여기까지만 들어도 대단한 건축가임에는 틀림없다. 자신은 목수라 해도 집 지을 때는 벽돌공과 기와장이 미장이도 있어야 했다. 연장만 봐도 톱이니 끌과 대패 등 다양했으나, 쫓기고 추격하는 짧은 동안에도 집을 짓는다. 당연히 적군은, 동굴에 숨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어떻게 지을지 구상할 필요도 없고“금 나와라 뚝딱”처럼‘집 나와라 뚝딱’하는 식이다. 어지럽다. 바람이 불면 허공의 집이 물결처럼 흔들린다. 산꿩만 울어도 끊어질 것 같은데, 아무렇지도 않고 태연자약했다.
보는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는데 구름을 불러들이고 허공을 누비던 어름사니처럼, 먹이 뒤에 숨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먹이는 잔뜩 걸리게 하면서도 풍류는 풍류대로 즐겼다. 하루살이의 하루를 두부처럼 잘라먹거나 잃어버린 기억을 반추하면서. 그나마도 바싹 마른 사체가 무덤도 아닌 무덤에 안치되었으니 부질없다. 그물이라 해도 벼리가 없었다면 온전한 풍류객이 되었으련만 욕심이 눈을 가릴 동안 물빛처럼 화려한 궁전은 덫으로 바뀌었다. 침입자라면 빠져나갔을 텐데 물결도 같고 활주로도 같은 은빛 궁전에 그대로 안주했으리.
어름사니든 무당거미든 열두 가지 재주꾼이 저녁거리가 없다는데, 곡예를 끝내고 내려오는 어름사니의 하루가 천근만근 무겁다. 더는 올라갈 수 없는 지상의 꼭짓점에서 재주를 펼치고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하는 어름사니든, 수십 채 집을 짓고도 종당에는 거꾸로 매달려 죽는 거미든 고단한 삶은 다를 게 없다. 악몽을 꿀 때마다 가위가 눌린 채 눈을 뜰 수 없던 기억처럼 현실로 돌아오기가 두려웠던 게지.
바람의 음표를 따라가면 그리운 누군가의 사연쯤은 받아 적을 법한데 왜 자꾸 미끼가 걸려드는지 몰라. 바람의 입질로 모여든 소금쟁이가 있고 북쪽 하늘의 철새들 노래가 들리면 가을도 무릎께 차올랐다. 켜켜로 쌓인 가랑잎은 된바람 토악질에 아우성인데, 목을 맨 것도 효수된 것도 아니고 풍장이 된 시체 한 구가 외롭다.
동심원을 닮은 과녁판에 침묵이 쌓인다. 죽음에 결박된 어름사니의 고백이 가슴을 친다. 벌레 잡는 거미든, 구경꾼들 앞에서 밧줄 타고 허공을 누비던 어름사니든 그 순간은 혼자였노라고. 사니가 최고의 경지를 뜻한다면 천하의 재주꾼인데도 줄에 걸려 죽은 거미 한 마리. 어찌할거나. 속상하지만 우리 또한 살얼음판을 가듯 긴장하는 어름사니 인생이었던 것을.
바람에 거미가 또 한 번 출렁인다. 썰렁한 풍경은 거미를 더 이상 어름사니로 보아주지 않았다. 수많은 집을 짓고 뽐내던 그 날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얼마나 예쁜 집이었던가. 보슬비 뿌리는 날 구슬은 천연 예술품이었건만, 거미의 죽음을 탐색하면 추억의 미라가 된 아픔이 서렸다. 제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다더니 제가 쳐 놓은 그물에서 변을 당할 줄이야.
그래도 줄을 타고 있을 때는 행복했으리. 추락의 위험을 안고 살지만 그런 중에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비법을 터득한다. 발밑으로는 천야만야 낭떠러지여도, 철새들 목청에 귀 기울일 때는 무한정 푸르렀던 어름사니의 하루. 발걸음이 영혼처럼 가벼운 것도 줄타기에 오로지하는 그 때문일까. 거미는 죽었으나 또 다른 어름사니의 꿈이 허공도 아닌 허공에서 피어날 테니.
느낌이 수수롭다. 줄타기가 끝나면 우리는 또 얼음같이 차가운 물을 동이에 차름차름 담아낼 수 있겠다. 거미도 어떻게 달빛처럼 새하얀 줄인지 알 수 없으나, 깊은 밤 초록별과 지새는 달에서 가난한 행복을 접목해 보았으리. 어름사니의 밧줄 또한 추락과 긴장을 꼬아 만든 줄이었지만, 허공의 집을 대입하면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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