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석/황진숙 가을로 온 작물들이 멍석에 부려졌다. 알싸한 태양초로 거듭나기 위해 고추가 제 속으로 햇살을 굴린다. 상수리는 한 자밤의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부피를 줄인다. 짓찧어져 가루가 될지언정 쌉싸래한 맛을 남기고자 껍질을 떠나보낼 준비 중이다. 거둬들인 낱알들은 밀고 당기는 고무래질에 엎치락뒤치락 말라간다. 네모반듯한 두부로 세상을 물컹하게 읽고 아삭한 콩나물로 식탁을 장악하려는 콩들이 뒤섞여 소란스럽기까지 하다.여물고 나서도 물기를 내놓으며 단단해져야 된바람에도 성할 터이다. 저들이 짓무르지 않도록 멍석이 볕살을 당기고 바람을 불러들인다. 엎어지고 뒹굴며 맘껏 널브러지도록 바닥에 묵묵히 깔려있다. 더러는 곳간으로 들이지 못한 곡식을 덮는 이불자락으로 밤새 한뎃잠을 잔다. 헛간 귀퉁이에 세워지는 ..